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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소원치안센터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 왼쪽에서 두번째 경찰관이 박태정 경사이다. 취재당일 송근상 경사는 전날 야간 근무를 서고 교대를 한 상태였다.
▲ 태안군 소원치안센터 충남 태안군 소원치안센터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 왼쪽에서 두번째 경찰관이 박태정 경사이다. 취재당일 송근상 경사는 전날 야간 근무를 서고 교대를 한 상태였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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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소원치안센터에서 근무하는 송근상, 박태정 경장은 지난 20일 오전 11시경 순찰 중에 한 통의 연락을 받는다.

"남편이 자살하겠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통화가 끝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빨리 찾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습니다."

평안했던 순찰은 순간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으로 변했다. 보호자의 요청으로 남편의 최종 위치를 추적해보니 만리포 해수욕장 일대다. 멀리 경기도 성남에서 멀리도 왔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곧바로 운전대를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돌렸다. 겨울철은 여름철에 비해 바다를 찾는 관광객들이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안가로 향한 두 경찰은 빠르게 눈동자를 돌리며 주변 사물을 눈으로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해안가에는 손으로 꼽을 정도의 관광객이 있었지만 의심 가는 사람은 없었다. 관광지의 특성상 해안가에는 식당과 숙박업소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일일이 방문 수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 일단 순찰차를 타고 주변을 돌아보기로 결정한다.

마음이 다급하지만 지금으로써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미처 살펴보지 못한 공간을 좁혀 나가는 방법밖에는….

보호자로부터 남편이 타고 나갔다던 차량 번호를 기억해 내며, 혹시라도 잊혀버릴까 서로 입으로 연신 차량번호를 중얼거리며 순찰차 유리창 넘어 스쳐 지나가는 차량들을 유심히 살펴보지만 일치하는 차량은 없다.

시간이 경과될수록 마음도 초조해진다. 벌써 한 시간 즈음 순찰중이지만 누구 하나 찾고 있는 차량을 봤단 사람은 없다. 문득 박 경장의 머릿속에 '혹시 지나는 사람들이 없는 외곽지역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곧바로 핸들을 해안가 끝자락을 돌린다. 다행스럽게도 예상이 적중했다. 잘 지어진 'ㄴ' 펜션 앞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잽싸게 순찰차에서 내려 펜션으로 뛰어가 주인의 안내에 따라 차량주인이 묵고 있는 방으로 향한다.

낮 12시.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문고리를 잡고 돌려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만취한 50대 중년 남성이 침대 위에서 술잔을 들이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안도감과 함께 화가 치밀어 오른다.

방안에는 술병 너덧개가 널부러져 있다. '누구냐고', '경찰은 필요없다'고 소리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중 화장실 문을 돌리니 몇 개의 번개탄과 이불이 보인다. 다시 아찔한 기분이 밀려온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스친다.

펜션 주인에게 물으니 어제부터 이상했단다. '바닷가에 혼자 온 것도 그렇고', '말없이 술만 잔뜩 사가지고 온 것도 그렇고'... 아무튼 기분 나쁜 분위기가 풍겨 술을 한 잔 마시며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별다른 대답은 없었단다.

다시 술에 취한 중년 남성에게 함께 치안센터로 가자고 설득한다. 예상대로다. 술에 취한 사람을 설득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겨우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토닥거린 후에야 순찰차에 태워 치안센터로 향했다.

하지만 가족들이 찾아와 데리고 갈 때가지 안심할 수 없다. 화장실을 갈 때도 함께 움직이며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낸 끝에 가족들이 찾아왔다. 부인이라고 자신을 지칭한 중년 여성이 계속해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한다. 갑자기 지나온 경찰생활이 물밑 듯이 머릿속을 스쳐지나 간다.

*  이 글은 충남 태안군 소원치안센터에 근무하는 박태경 경사가 원정 자살 신고를 받고 출동해 그를 가족들에게 돌려 보낼때까지 직접 경험한 과정을 각색해 이야기로 재구성해 쓴 글입니다. 


태그:#태안군, #소원치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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