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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프원의 애완견, 트라이콜리 '해모'는 목양견의 습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움직이는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보면 도망가는 양으로 인식하고 큰 소리로 짖곤 합니다.

 

때로는 그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거나 위협이 될 수도 있으므로 주인으로서는 참 조심스럽습니다.

 

오늘 아침, 아들과 함께 아침을 먹다가 지나가는 자전거를 보고 짖고 있는 해모를 보면서 아들 영대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해모를 좀 짖지 않도록 교육시킬 수 없니?"

"해모를 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사람에게 말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럼 말 수를 좀 줄이도록 하면 좋지 않을까?"

"해모는 아빠보다도 훨씬 적게 말해요. 간혹 한 번씩 말하는 개에게 그 조차 못하게 하라구요?"

"그럼, 때를 가려서 좀 말하게 해라. 신문 배달하는 분의 오토바이 때문에 새벽에도 짖는데 곤히 잠든 사람에게는 성가신 일이잖니?"

"해모는 짖는 것이 '일'이예요. 그럼 새벽이라고 도망가는 양을 보고도 입을 닫고 자신의 일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들과의 대화는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해서 단 한 뼘도 아들로 부터 양보를 받아낼 수 없었습니다. 영대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은 몇 해 전에 모티프원에 계시면서 저희 가족과 교우했던 독일의 포슬린 작가인 한스 바우어Hans Bauer선생님입니다. 그 분은 해모의 짖는 소리가 선생님의 고요한 침잠을 방해하지 않았느냐, 는 저의 질문에 '개가 짖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라고 답했던 분입니다.

 

 

아들의 개와 말 등 동물에 대한 애정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말이 타고 싶어 승마장을 방문해서 마구간을 치워주며 마음껏 말 타기를 승낙 받았고, 2년 남짓 말을 타며 승마기술을 익혔습니다.

 

 

아들의 지난 10여 년간의 장래 희망은 수의사가 되어서 유기견들을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5년 전 자신이 좋아하는 대형견을 분양받기 위해 초등학교에서 6년간 용돈을 모아 저축한 돈을 모두 쏟아 넣었고, 그렇게 분양받은 블루멀 콜리를 데려오는 날, 잠도 자지 않을 만큼 흥분된 마음이었습니다.

 

이 생후 40일된 블루멀 콜리를 모짜르트의 음악처럼 집안을 행복하게 한다고 '짜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1개월을 영대와 함께 생활하던 짜르는 희귀견을 노린 양상군자梁上君子에 의해 한 늦은 봄 안개 낀 새벽, 헤이리의 다른 3마리 희귀견종들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우리집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영대의 낙담을 달랠 길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던 영대의 누나는 긴 공고문을 써서 헤이리의 회원게시판에 올렸습니다.

 

"모티프원에서 강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주리 2006-05-08

●이름 | 짜르

●성별 | 암컷

●품종 | 블루멀 콜리

●잃어버린 시기 | 5월 8일 자정 ~ 새벽

 

안녕하세요. 저는 모티프원의 둘째딸 이주리 라고 합니다. 오늘 저희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려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강아지 이름은 '짜르'이고, 암컷이며 2개월 됐습니다.

 

블루멀 콜리라는 종이고, 집 정원의 강아지 집에 묶어놓고 키웠습니다. 밤에 강아지를 집 앞에 묶어놓고 아침에 보니 없어졌습니다. 저는 파주에 살지 않고, 서울에 삽니다. 오늘 집에 전화하니까 동생이 잠긴 목소리로 얘기하더군요. 짜르를 잃어버렸다고……. 오늘 하루 종일 울었답니다.

 

얼마나 슬픈지 압니다. 영대가 어떻게 짜르를 키우게 됐는지 아니까요. 짜르는 순전히 제 동생 때문에 키우게 됐습니다. 제 동생이 강아지에 관심이 되게 많습니다. 헤이리로 이사 가기 1년 전부터 짜르를 키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했죠. 처음에 안 된다고 하시는 부모님을 밖에서 축구하는 시간도 줄이고, 공부도 많이 하며 노력해서 강아지를 키워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남동생은 강아지를 좋아하면서 수의사라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짜르를 키우기 위해 저희 집에 강아지에 관한 책만 해도 몇 십 권이 됩니다. 모두 제 동생 책이죠. 책을 그렇게 읽으라고 해도 읽지 않던 제 동생이 강아지에 관한 책은 통째로 외울 정도로 옆에 끼고 살았습니다.

 

드디어 헤이리에 오고, 당장 제 동생은 강아지를 먼저 샀죠. 짜르를 데리고 온 날 제 동생은 이렇게 행복한 기분은 처음이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봤죠. 하루 종일 싱글벙글 입이 귀에 걸렸었습니다. 헤이리에서 짜르를 키우면서도 항상 짜르 생각만 하고, 달력에는 짜르의 백신주사 맞는 날과 심장사상충 주사 맞는 날을 꼬박꼬박 써놨습니다. 이제 짜르가 조금 컸으니 책에서 읽었던 훈련도 시켜야겠다고 좋아했죠. 그런데 오늘 짜르를 잃어버렸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사 오기 전에도 항상 걱정했던 일인데……. 정말 앞이 막막합니다. 혹시라도 짜르를 보신분이나 데려가신 분은 정말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짜르가 얼마나 저희가족에 중요한 존재인지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제발 돌려주세요. 그냥 보니까 귀여워서, 키우고 싶어서 데려갔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짜르는 저희 가족에게 정말정말 중요한 존재입니다. 제발 돌려주세요. 정말 부탁드립니다. 혹시 짜르를 보셨거나 데려가신 분은 연락주세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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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그 개를 잃어버리고 영대는 1개월을 앓았습니다. 영대의 가장 큰 걱정은 아직 미성숙한 짜르를 데려간 사람이 혹시 이 개가 대형견인지를 알지 못하고 키우다가 아파트에서 키울 수 없으므로 길거리에 내다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즉 유기될 가능성에 애달파했습니다.

 

결국 짜르를 되찾는 것에 실패한 영대는 다시 같은 부모로 부터 얻은 블루멀 콜리를 분양받았습니다. 이름은 모티프원의 보배라는 의미로 '모프'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모프와 함께 하면서 영대는 짜르 잃은 슬픔을 잊는 듯 했습니다. 영대는 학교에 등교할 때면 매번 제게 2가지 당부를 했습니다. 모프는 운동을 좋아하므로 꼭 산책을 함께 할 것과 정해진 먹이만을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의 두 가지 당부 중에서 한 가지를 무시했습니다. 제가 어릴적 시골에서 키우던 개들은 어린아이의 똥부터 잔반 등 모든 것을 다 먹었던 기억 때문에 모프는 무엇이든 다 먹을 수 있어야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마음씨 좋은 분이 남은 돈가스를 거두어서 동네 개들에게 나누어주곤 했습니다. 영대는 절대 그것을 먹이지 못하도록 내게 누차 경고했지만 산책중에 이웃집개와 그것을 나누어 먹는 것을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사달이었습니다. 어린 모프는 그 다음날 영대가 등교한 뒤부터 심하게 앓았습니다. 한시간쯤뒤 숨이 가파졌고 저의 처는 청향재의 한미란 사모님과 함께 금촌의 동물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두시간 뒤, 처는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는 것입니다. 모프는 후송되는 차속에서 그렇게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병명은 장염이었다고 수의사가 말했습니다. 장염은 개에게 치사율이 높은 아주 위험한 병이라는 것입니다. 아직 미성숙한 모프에게는 상했을 수도 잇는 돈가스 잔반은 더욱 치명적이었습니다.

 

저는 참 아득했습니다. 모프를 잃은 슬픔보다 이 사실을 영대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저는 이미 뻣뻣해진 모프를 차에서 내려 2층의 아들방에서 내려다보이는 느티나무 아래에 수목장으로 묻었습니다. 주위의 잔돌을 주워서 거칠게 십자가를 만들고 갯쑥부쟁이를 한 움큼 꺾어서 그 위에 두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청향재의 송효섭 교수님이 강의나가는 길을 멈추고 침통한 표정으로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참 외로운 조문이었습니다. 저의 처와 한미란 사모님은 슬픔을 가눌 길 없어서 집에서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해가 뉘엿한 때에 돌아온 아들에게 이 사실을 고하는 것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모프가 죽었다."

"거짓말!"

"정말이야. 장염이란다."

"놀리지 말아요? 모프는 어딧어요?"

"느티나무 아래에 가보아라. 네 방에서 보이는 그곳에 묻었다."

 

십자가가 표시가 된 그곳에 가보고서야 아들은 내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교복도 벗지 않고 꿇어앉아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쯤은 어깨만 들썩일 뿐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일어나드니 십자가 아래에 모프의 밥그릇에 먹이와 물을 갖다 놓고 다시 한 시간을 울먹였습니다. 그냥 둔다면 밤새 울음을 그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제가 크게 역정을 내고서야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아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너무 늦지 않은 밤에 귀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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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이런 마음 아픈 일들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이제 더 이상 개를 들이지말자는 저의 제안은 단호한 아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위안하는 유일한 길은 다른 개로 모프에 대한 기억을 희석시키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모프의 형제들 중에서 트리이 콜리를 들였습니다. 그것이 해모입니다. 다행히 해모는 별 탈 없이 잘 성장하여 성견이 되었고 성격도 유순해서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앞집 청향재의 숙녀인 러프콜리 솔이와 사랑에 빠져서 8마리의 자식도 얻었습니다. 그 새끼들은 한미란 사모님의 특별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3마리를 잃었고 다른 개들은 전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영대는 해모의 혈육 한마리을 갖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 해모를 닮은 한 마리를 받아들였습니다. 해모의 딸인 헤라는 미쳐 다 성장하기도 전에 또다시 새끼를 얻었으므로 해모는 이제 어엿한 손녀들을 둔 5살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해모와 솔이와의 정분 때문에 앞집 청향재와는 사돈지간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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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영대가 수의사가 되겠다는 자신의 장래 꿈을 바꾼 것은 작년입니다. 대학의 수의학과에 다니는 한 형으로 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 나서부터이지요.

 

"수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한 학기에도 수백 마리의 동물실험을 해야 한다. 실험동물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영대는 동물의 고통을 경감하고 치료하기위해 자신이 수백 마리의 다른 동물을 희생해야한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아들이 지나치게 동물에 집착하는 것에 우려를 하기도 했지만 긍정적인 면에 더 방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개와 교감하면서 사람이 아닌 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따뜻한 관계와 배려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사람과 식물과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영대가 해모를 정성으로 돌보면서 사랑을 쏟고, 해모 또한 그 사랑을 충분히 감지하고 감읍해 하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영대와 해모가 함께 달리고 때로는 걷는 모습을 지켜보면 조화로운 질서의 아름다움을 대하는 기분입니다. 오늘 아침의 논쟁에서 아들의 논리에 밀리고 말았지만 동물을 동반자로 여기는 영대의 마음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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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과
홈페이지 www.motif.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애완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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