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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가장 볼 곳이 많은 도시, 로마는 외국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로망이다. 길가의 모든 건물이 고대 로마로부터 이어진 유적이고 땅을 파면 홍수로 뒤덮였던 과거의 신전이 발굴된다. 그런데 이 로마를 더 매력적이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코를 간질이고 혀를 감동시키는 피자와 파스타다. 그리고 이 로마의 먹거리에 명성을 드높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약간 끈적거리는 새로운 느낌 속에 입안에서 살살 녹는 그 것. 그것은 바로 젤라또(Gelato)다. 푹푹 찌는 이탈리아의 여름날에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젤라또는 특히 로마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이제는 로마를 걷는 여행자라면 로마의 유명한 젤라또 가게를 찾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여행코스가 되었다. 나의 기억 속에도 손 한가득 젤라또를 들고 행복하게 그 맛을 음미하는 이탈리아 꼬마의 모습이 로마의 아이콘처럼 남아 있다.

젤라또는 아이스크림과 의미를 혼동해서 쓰기도 하지만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보통 먹는 아이스크림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젤라또는 아이스크림과 맛이 조금 다른데 그것은 내부에 공기를 함유하는 양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공기의 양이 더 적게 포함된 젤라또가 자연히 더 끈적끈적해서 입에 달라붙는 맛이 더 있다.

로마를 여행하는 사람, 그리고 맛집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두어야 할 젤라또 가게들이 있다. 전통과 함께 살살 녹는 맛을 자랑하는 젤라또 가게는 판테온 근처의 지올리띠(GIOLITTI), 바티칸 박물관 입구에 있는 올드 브릿지(OLD BRIDGE), 테르미니 역 근처의 지 파시(G.FASSI)다. 이 젤라또 가게들은 로마 젤라또의 삼총사다.

이탈리아의 젤라또 가게 중 최고의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가게이다.
▲ 지올리띠 젤라또 가게. 이탈리아의 젤라또 가게 중 최고의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가게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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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마 판테온의 정문에서 직진하여 걸었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계속 걸어가면 로마 젤라또 중 최고의 명성과 맛을 자랑하는 곳이 눈앞에 나타난다. 교황이 다녀간 이래로 로마에서 가장 맛있는 젤라또로 명성을 이어 온 지올리띠. 로마 최고의 젤라또이니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젤라또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젤라또의 정상, 지올리띠는 판테온 신전에서 멀지 않았다. 지금은 지올리띠만큼 맛있는 젤라또 가게들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지올리띠 가게의 명성은 두텁기만 하다. 가게 자체가 명물이 되어 로마 젤라또 탐방객들의 우선 답사 코스가 되었다.

굳이 열심히 찾으려 하지 않아도 한국 여행자들이 향해가는 골목길을 따라가자 자연스럽게 지올리띠 가게가 나타났다. 처음 길을 찾아가는 약간의 긴장감에서 해방되자 눈앞에는 가게 위의 커다란 지올리띠 알파벳이 보였다. 좁은 골목길에 위치해 있지만 가게 위에 마치 우리나라 간판처럼 커다랗게 가게 이름이 박혀 있다. 어린이 크기만한 녹색의 가게 이름 알파벳이 고풍스럽다. 괜한 기쁨이 드는 곳이다.

생각보다 가게 내부는 컸다. 천장 위의 샹들리에는 굳이 이 가게의 역사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자랑스럽게 드리워져 있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어떻게 젤라또를 주문해야 하는지 약간 난감했다. 나는 방금 전에 젤라또를 주문해서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넘치는 젤라또를 한 아름 쥐고 만족해하고 있는 젊은 총각에게 젤라또 주문 방법을 물어보았다.

계산대에서 먼저 젤라또 종류별로 값을 지불하고 주문대로 간다.
▲ 지올리띠 계산대. 계산대에서 먼저 젤라또 종류별로 값을 지불하고 주문대로 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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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올리띠 가게 입구의 카운터에 종업원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다. 나는 먼저 카운터에 가서 나와 아내, 딸이 먹을 젤라또 콘의 종류를 골랐다. 젤라또의 가격은 젤라또 종류가 아니라 젤라또가 담길 콘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작은 콘은 2.5 유로이고 큰 콘은 3유로 짜리다. 나는 젤라또 큰 콘 3개 가격을 지불했다.

카운터에서 받은 영수증을 들고 젤라또가 진열된 쇼케이스 앞에 가서 섰다. 젤라또를 담아주는 직원들은 전통복장을 입고 가게의 전통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종업원들 옆으로 젤라또를 담을 젤라또 콘들이 천장까지 높게 쌓여 있다. 열을 지어 대기 중인 이 콘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젤라또가 이 가게에서 팔려나가는지 알 수가 있다. 나와 내 가족은 수십 종류의 젤라또를 내려다보면서 골라먹는 재미에 빠져 들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로 줄이 제법 길었다. 나는 내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쇼케이스에 진열된 젤라또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고민했다. 젤라또의 종류는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적혀 있었다. '쌀이 들어간 리쪼를 먹을까? 딸기를 먹을까? 수박? 자두? 살구? 블루베리? 바나나? 요거트? 파스타치오? 그 흔한 초코나 바닐라?'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젤라또를 신속히 골라야 한다.
▲ 젤라또 주문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서 젤라또를 신속히 골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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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들은 수많은 관광객들로부터 한꺼번에 주문을 받고 있었다. 줄을 서더라도 자기가 먹을 젤라또 종류를 말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으면 종업원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다. 많은 것들이 느리게 돌아가는 이탈리아지만 이렇게 유명한 젤라또 가게에서는 가만히 서 있으면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먼저 주문을 해 버린다.

나는 젤라또 쇼케이스를 재빨리 둘러보았다. 한 사람당 3개씩 고를 수 있으니 모두 9개의 젤라또를 주문해야 했다. 나는 젤라또를 선정하고 한 종업원에게 내가 젤라또 주문을 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눈빛을 쏘아 주었다. 나는 빠르게 종업원에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일일이 젤라또를 가리켰다.

뭐니 뭐니 해도 지올리띠의 최고 인기 젤라또는 '리쪼'다. 쌀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인 리쪼는 이름대로 젤라또 안에 쌀이 들어가 있고 쌀 이외에 크림치즈와 같은 다른 재료도 들어간다. 리쪼는 젤라또 가게 중에서도 지올리띠의 리쪼가 가장 유명하다. 나는 가장 우선적으로 리쪼를 주문했다.

과일맛 젤라또가 제일 맛있다는 말을 들었던 나는 딸기를 추가하고 망고도 주문했다. 9월말까지만 맛볼 수 있다는 수박 젤라또는 딸 신영이가 주문했다. 신영이는 명성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초코와 바나나를 추가했다. 아내는 살구, 요거트, 바닐라를 주문했다.

리쪼와 딸기, 망고가 입 안에서 녹아들어간다.
▲ 지올리띠 젤라또. 리쪼와 딸기, 망고가 입 안에서 녹아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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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또를 담는 콘은 크지 않지만 콘마다 모두 3종류의 젤라또를 산만큼 쌓아준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사먹는 콘 아이스크림에 머리가 3개 달려 있는 것 같다. 나는 순간적인 나의 판단이 아주 잘못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명성이 자자한 젤라또를 아쉬움 없이 먹기 위해 큰 콘의 젤라또를 선정했지만 그 양은 한 끼 식사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별로 크지 않은 젤라또 콘의 크기만 보고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것도 바로 전에 피자와 파스타로 점심을 먹었던 나의 가족에게 젤라또 양은 엄청난 것이었다. 작은 콘의 젤라또 양도 충분할 만큼 젤라또는 콘 위에 듬뿍 담기고 있었다. 이 맛있는 젤라또를 양이 많다고 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하얀 리쪼의 크림치즈가 그 명성만큼이나 깔끔하고 깊게 입 속에 퍼지고 있었다. 딱딱하게 얼어버린 리쪼의 쌀 알갱이는 젤라또 사이에서 굴러다니며 씹히고 있었다. 핑크빛으로 색상이 아주 짙은 딸기는 정말 딸기를 먹는 것 같이 신선하다. 실제 망고보다 더욱 단맛의 망고도 입속에서 사각거리고 있었다. 딸의 것을 뺏어먹은 수박 젤라또의 감칠 맛은 명성대로 천하일품이었다. 요거트 젤라또에서는 약간 샤베트의 맛도 났다.

젤라또 쇼케이스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지만 왠지 가게의 의자는 많은 자리들이 비어 있었다. 우리는 차분하게 원형의 식탁 위에 앉아서 젤라또를 계속 베어 물었다. 자세히 보니 이 젤라또 가게는 케이크와 커피도 판매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앉으려면 자릿세를 내거나 음료수를 주문해야 했던 것이다. 모른 척하고 의자에 앉아서 먹고 있는데 역시나 카페 종업원이 와서 이 자리는 카페의 자리라고 설명을 해준다. 나는 몰랐었던 척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판테온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며 젤라또 맛을 음미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먹는 젤라또가 역시 맛이 더 시원하다. 나는 젤라또의 맛을 더 시원하게 음미하게 위해 더욱 햇볕 아래로 나가 섰다.

산과 같이 높이 쌓인 젤라또에서 녹은 물이 콘의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손등까지 적셨다. 젤라또는 양도 많지만 아주 빠르게 녹아내렸다. 나는 순간 머리를 쳤다. 이탈리아의 꼬마들이 젤라또를 먹으면서 혀로 젤라또의 가장자리를 집중 공략하며 낼름낼름 삼키는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이유가 잘 흘러내리는 젤라또의 가장자리를 먼저 처분하고 차분하게 젤라또의 맛을 즐기기 위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늦었지만 나도 흘러내리는 젤라또를 혀로 낼름낼름 핥으며 달콤함을 맛보았다. 하지만 이미 손에 번진 젤라또가 여간 찜찜한 게 아니었다. 콘을 감싼 얇은 화장지로 손을 닦아봤지만 흘러내린 젤라또 양에 비하면 어림도 없었다.

나는 거리에서 화장실을 찾다가 결국은 점심을 먹었던 레스토랑의 화장실로 갔다. 레스토랑 화장실의 손 씻는 곳은 세면대 아래의 페달을 발로 눌려야 물이 나왔다. 손을 씻고 나오려다 보니 한국 아가씨가 들어와서 어떻게 물이 나오는지 헷갈려 하고 있었다. 나는 발밑의 페달을 힘껏 밟아야 물이 나온다고 가르쳐 주었다. 방금 전에 터득한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으니 여행은 사소한 일이라도 방금 전에 경험한 사람들이 가장 도움이 되는 법이다.

나는 손에 묻은 젤라또를 모두 닦아냈지만 지올리띠 리쪼의 그 은은하고 달콤한 맛은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젤라또가 맛있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젤라또를 먹어서 맛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맛있는 건지는 나 자신도 헷갈렸지만 그 맛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가게는 작지만 로마 3대 젤라또 가게 중의 한 곳이다.
▲ 올드 브릿지 젤라또 가게. 가게는 작지만 로마 3대 젤라또 가게 중의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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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결국 나는 또 하나의 젤라또 명문, 올드 브릿지 젤라또 가게(OLD BRIDGE GELATERIA)를 찾아갔다. 바티칸 투어를 하거나 바티칸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르는 곳이다. 나의 가족도 바티칸 지식투어가 끝나고 다시 개인 여행자의 신분을 회복하자마자 이 가게를 찾아 나섰다.

이 가게는 정말 구멍가게 같이 좁고, 앉아서 젤라또를 먹을 장소도 없었다. 하지만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긴 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 작은 가게가 이 자리에서만 무려 120년 동안이나 젤라또를 팔았다고 하니 여행자들은 이 가게의 전통에도 한 표를 던진 것이다. 가게의 가격표를 보니 젤라또 가격도 다른 곳에 비해 아주 싼 편이다. 원통형 콘에 담아주는 젤라또 가격이 2~2.5유로이다.

나는 나의 젤라또를 주문하기까지 긴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각국의 여행자들 사이에 섞여서 북적거림을 즐기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는 종업원 3명이 나란히 서서 주문을 받고 있고 그 앞으로 관광객들의 줄이 3열로 이어져 있었다. 여행 성수기에 이 가게 고객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많은 고객이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이 가게는 한국 여행자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가게이다. 워낙 많이 이곳에 들르는 한국 여행자들이 종업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 것이다. 그래서 종업원들은 젤라또 종류와 주문에 관련된 간단한 한국말을 할 줄 안다. 이곳의 젊고 쾌활한 총각 종업원들은 먼저 반말부터 시작한다.

"뭐 먹을래?, 생크림 공짜, 젤라또 맛있어."

한국 사람들은 한국말로 주문한다.

"수박, 체리, 레몬! 크림 많이!"

나는 너무 유창한 한국말로 급하게 주문했던 모양이다. 가게 종업원이 천천히 주문해 달라고 정중하게 이야기한다. 콘 사이즈를 말하고 아내와 나, 신영이가 먹을 젤라또를 주문했다. 나는 젤라또 위에'콘 빤나'라고 하는 맛있는 하얀 생크림을 얹어달라고 부탁했다. 지올리띠도 그랬지만 이곳에서도 콘 위로 콘보다 더 큰 젤라또가 과분수 같이 가득 담겼다.

역시 수박 젤라또의 맛은 훌륭함이었다.
▲ 올드 브릿지 젤라또. 역시 수박 젤라또의 맛은 훌륭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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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게에서도 우리는 색상과 맛이 부드럽고 잘 익어 있는 과일 젤라또를 집중적으로 주문했다. 나는 딸기, 레몬, 복숭아 맛의 젤라또를 콘 위에 쌓았다. 신영이의 젤라또에는 핑크색의 체리 알갱이가 박혀있는 체리 쥬빌레가 섞였다. 양도 만족스러울 만큼 많지만 맛도 일품이다. 그전에 미처 맛보지 못한 맛이었다.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젤라또를 먹으며 떠났던 로마. 나의 가족은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고 해가 진 저녁 시간에 다시 로마로 올라왔다. 그 날은 이탈리아를 떠나기 전날이었다. 남부 이탈리아를 우연히 같이 여행했던 한국 여행자들이 그 늦은 저녁시간에 로마의 유명한 젤라또 가게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 가게는 테르미니 역 근처에 있다고 했다. 나는 아내, 딸과 함께 우리도 따라갈지의 여부를 생각해보다가 몸이 천근만근이어서 그만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가게는 로마 젤라또 3대 명문 중의 하나인 지 파시(G.FASSI)였다.

왜 그 때 지 파시를 향하여 방향 전환을 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가보지 못한 곳, 맛보지 못한 맛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그 가게의 젤라또는 어떤 맛이었을까? 여행은 즐거운 추억으로 이어지지만 아쉬움의 연속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탈리아, #로마, #지올리띠, #올드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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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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