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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1주기가 되는 20일 저녁 7시 30분, 남일당 현장에서는 1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유가족들은 장례를 치른 지 약 열흘 만에 다시 모였다. 이들이 상복을 벗고 추모행사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여전히 검은색 옷을 입었지만 그동안 다들 산뜻하게 머리도 다시 하고 엷게 화장도 했다.

 

이날 행사는 1년 전 이날 세상을 떠난 철거민들을 애도하는 자리지만, 그동안의 투쟁을 정리하고 함께 했던 사람들끼리 격려하면서 '시즌2'를 준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용산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장례는 치렀지만 여전히 용산참사의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뉴타운·재개발 정책의 근본적 개선 등 과제들이 남아있으므로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범대위가 조직을 개편한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1년 전 이날, 남편 신원 확인하느라 발 동동 굴렀는데..."

 

1년 전 물대포가 쏟아졌던 용산 현장에는 이날 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유가족과 철거민, 시민들 300여 명은 우산을 쓴 채 자리를 지켰다.

 

이미 남일당은 영정을 정리하는 등 분향소 정리에 들어갔다. 범대위 활동가와 1년을 상주하던 경찰버스도 사라졌지만, 거리에 붙어있던 현수막도 많이 철수됐다. 대신 건물 입구에는 용산 유가족들의 부활도가 내걸렸다.

 

무대에 선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는 "장례가 끝나고 그동안 어디 마음을 붙일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주마등처럼 그동안의 시간이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안 됐지만 여러분이 너무 보고싶었다"면서 "지난 1년 동안 우리 유가족들을 밀어주고 끌어주셨으니 앞으로 동지들이 무죄 석방될 때까지 함께해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씨 역시 "(장례 마치고) 열흘 만에 다시 마이크를 잡으니 또 마음이 착잡하다, 1년 전 오늘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남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다"면서 "얼마 전 공개된 수사기록에서 보듯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수호 범대위 공동대표는 유가족들과 천주교 신부들은 물론 범대위에서 활동한 다양한 시민들을 일일이 부르며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다시 어깨 걸고 싸우자"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떠나야 하지만, 서울에서만 재개발의 현장이 500군데 넘는다"면서 "용산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주민과 세입자를 위한 재개발정책을 만드는 날까지 계속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대위는 한달 뒤인 오는 2월 24일 지난 1년을 평가하고 향후 사업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추모문화제에 앞서 남일당 현장 무대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어졌다. 그동안 용산을 거쳐간 동안 용산을 거쳐간 다양한 문화예술인들도 다시 모인 것이다.

 

오후 3시부터 용산 유가족들의 사연을 기록한 만화책 출판기념회가 열렸고 용산 추모 연극과 노래, 풍물, 굿, 줄타기가 이어졌다. 한켠에서는 만화가들의 캐리커쳐 그리기, 용산 사진관 및 사진전시회도 펼쳐졌다.

 

만화책 <내가 살던 용산>을 편집해온 보리출판사의 이용석씨는 "원고와 거리를 둬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회사에서 많이 울었고 만화가들도 그리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면서 "원고를 다 본 뒤에는 차마 영정사진을 볼 수가 없더라"고 말했다. 책을 받은 유가족들은 자신의 사연을 읽으면서 다시 눈물을 흘렸다.

 

문화예술인이 용산에서 보낸 1년은? "연애하다가 이별을 통보받은 기분"

 

비가 내리는 20일 오후, 용산참사 1주년을 맞는 남일당 건물 앞에는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와 시민 70여 명이 모였다. 그림과 사진, 라디오 활동으로 용산 현장을 지킨 문화예술인도 눈에 띄었다.

 

남일당 건물 앞 천막 안에서는 만화가 몇명이 시민들의 캐리커처를 그리고 있었다. 만화가 이동수씨는 용산 현장에서 캐리커처와 크로키를 그려왔다. 그는 용산에서 보낸 1년에 대해 "인간의 삶에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80년대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도 용산참사와 같은 일은 비일비재했다, 지금도 개선되지 않은 문제인데도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이 과연 행복인지 돌아봐야 한다, 세입자를 거리로 쫓아내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와 같은 사람들의 활동은 용산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유가족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바로 옆 인도에는 네다섯 명의 사람들이 용산참사 당시의 사진을 몸에 메고 있다. 용산참사 1주년을 맞아 '작은 사진전'을 열고 있는 사진가들이다. 1년 동안 지켜본 용산의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직접 거리에 나선 것이다.

 

이 '샌드위치 홍보맨'들은 길을 가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등 뒤로 걸린 사진을 내보였는데, 이 중 하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얼마 전 장례를 치렀는데 바로 1주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산에 관해 찍었습니다. 찍는다는 것은 지켜봤다는 것이지요. 지켜보기만 했던 사진가들이 가슴에 조금씩의 빚을 안고 작은 사진전을 진행합니다. 사진을 찍은 사진가들이 직접 사진 전시를 도와주는 벽이 되어서 자리에 계신 분들을 만납니다."

 

용산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온 사진가 양희석씨는 '용산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씨는 "국민들은 장례식이 치러졌으니 용산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용산으로 상징되는 문제들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레아 촛불미디어센터를 지키던 독립미디어활동가 조약골씨는 이날 오후 5집 앨범 <노래와 라디오로 담아낸 용산참사 355일_ 용산에 가면 시대가 보인다>을 발매하고 쇼케이스 공연을 펼쳤다. '레아'는 애초 고 이상림씨가 운영하던 호프집인데, 참사 이후 범대위 활동가들과 문화예술인들이 투쟁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조씨는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다가 이별을 통보받은 기분"이라는 말로 용산에서의 1년을 정리했다. 곧 레아에서 철수해야 하는 그는 '이제 현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과 관련, 조씨는 '용산참사를 주제로 앨범을 발매하면서 '어디서 부르고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불려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며 "철거민, 유가족, 용산 범대위, 그리고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태그:#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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