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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쩜반폭(16)군을 지난 7일 '정동다문화 어울림학교'(서울시 중구 소재)에서 만났다. 반폭 군은 수줍은 미소를 지닌 여느 청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베트남인 어머니는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재혼 후 이혼하였고, 현재 한국 국적이다. 반폭 군은 어머니의 이혼 후 2008년 9월 한국에 들어와 '외국인등록증'을 지닌 합법적 '외국인'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반폭군은 이번 방학 때 어울림 학교에서 한국어와 국어, 영어, 수학 등 공부를 할 예정이다. 베트남에서는 아침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공부해야 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3시 10분까지만 공부해서 좋다고 한다. 지난 5일에는 학교 연계 봉사활동도 했다며 해맑게 웃었다.

 

반폭 군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친구들이 나한테 욕을 많이 했어요. 내가 말할 때 친구들이 웃었어요.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베트남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친구들이 잘해줘요"라고 말했다. 지금은 한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친한 친구들도 많다고 한다.

 

한국에 온지 2년,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가 어떻게 다른지 물어봤다. 반폭 군은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게 한국 사람들이 한복을 입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에 있을 때는 한국 관련 사진과 화보에 있는 사람들이 온통 한복을 입고 있었다고. 아열대 지방인 베트남에서는 볼 수 없는 눈을 한국에서는 볼 수 있다는 점, 오토바이가 많은 베트남과 달리 지하철이 잘 발달되어 있는 점도 신기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기술이 베트남보다 좋고 선생님들이 설명을 많이 해줘서 좋다는 반면,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더 친절하다고 말했다.

 

반폭 군은 한국에 계속 살면서 한국 국적도 취득하고,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열심히 공부해요. 지금 생각은 한국어와 영어를 많이 배우는 거예요. 한국어 수업은 잘 들어서 나중에 통역사가 되고 싶어요." 그러면서 수업을 할 때 선생님과 친구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비자문제 해결되면 제일 먼저 군대에 가고 싶어요"

 

아무랄(가명,20)군은 1997년 입국해 일하던 부모를 따라 2003년 여름 몽골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앞서 반폭 군의 경우, 어머니가 한국국적이라 국내 거주가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현 고용허가제에서는 '이주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도록' 법으로 금하기 때문에, 아무랄 군은 다른 사람의 아들 신분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다시 몽골로 돌아가 학생비자를 취득해 현재 S대학에서 한국어 어학수업을 듣는 '합법'신분이다. 하지만 미등록 몽골인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존댓말을 또박또박 구사하고 생김새도 한국인과 다르지 않은 그에게서 외국인이란 느낌보다 한국말을 어눌하게 구사하는 여느 한국 대학생 느낌을 받았다. 햇수로 8년 째에 접어든 그의 한국생활. 그는 "다양한 볼거리와 배울 거리,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몽골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의 돈을 벌 수 있는 게 한국생활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한국에 살다보니 이제 무언가를 생각할 때 머릿 속에서 한국말로 떠오르게 됐고, 몽골밥보다 한국밥이 더 입맛에 맞단다.

 

그보다 2년 더 일찍 한국에 들어온 곤츠(가명,20)군에 비하면 아무랄 군은 운이 좋은 편이다. 곤츠 군은 2001년,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무랄 군과 비슷한 경로로 몽골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현재 부모는 모두 강제출국 당했고 홀로 한국에서 미등록 생활을 이어간다. 본인의 선택으로 들어온 한국이 아니었지만 10년 째에 접어든 그에게 이제 한국은 삶의 터전이다. 생김새와 말투뿐 아니라,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전에 들어온 한국이라 그의 삶의 가치관 역시 영락없는 한국 젊은이다. 한국의 '정'이 좋다는 곤츠 군은 중학교를 중퇴한 이른 나이에 공장 일부터 시작해 이삿짐센터, 공사장, 마트 일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해 돈을 벌었다.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 몸으로 한국을 겪어봐서 그런지 그의 눈빛에는 한국에 대한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었다.

 

그는 "처음에 일한 공장에서는 한국인들끼리만 밥을 먹고 회식을 했다"며 "정육점에서 일 할 때는 도매점에서 꼭 나쁜 부위의 고기만을 떼주었고, 월급이 밀리는 건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곤츠 군이 미등록 신분이기 때문에 신고하지 못할 것을 노린 것이다. 존댓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그이지만 나이가 어린 한국 청소년들의 반말도 참아야 했다. 그는 "몽골인이란 것을 밝히면 월급도 적게 받고 언제나 무시당하기 때문에 이제는 굳이 출신지를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려운 한국생활이지만 그가 지금까지 진정 바라온 것은 한국에서 차별없이 살 수 있는 합법적 권리였다. 사회생활을 하다 친해진 한국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군대이야기가 나올 때면 언제나 소외감을 느꼈다는 곤츠 군은 "비자문제만 해결된다면 제일 먼저 군대에 가고 싶다"며 "한국말 하는 것, 비슷한 얼굴 뿐 아니라 진짜 한국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므랄 군은 현재, 낮에는 어학원에서 한국말을 배우고 저녁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지하철 역사에서 스크린 도어 설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의 생활은 편하고 오래 살아서 몽골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적지만 부모님과 함께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며 몽골로 돌아갈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아므랄 군은 "미등록이라도 우리가 하는 일은 한국인들이 하기 싫어하고 안 하려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국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용하기만 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어울림학교 박평화 교무주임은 "2000년대 초 다문화가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을 때는 이주 학생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폭력 등에 많이 노출됐지만 지금은 차별에 대한 제재가 많아졌고 급식비 지원, 방과 후 학교 지원 등 정부의 다문화지원 사업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며 "하지만 미등록 이주 학생들의 경우 외국인 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급식비를 내거나 인터넷 가입 등을 할 때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경우 학교 교육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그는 "등록이든 미등록이든 아이들은 모두 똑같다"며 "한국을 좋아하고, 살고 싶어 하던 미등록 아이들이 외국인등록번호를 요구 당할 때마다 위축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주노동자방송국 MWTV(1월 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지선, 정장희 기자가 공동작성하였습니다.


태그:#다문화, #이주청소년,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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