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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새 1년. 지난해 말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고 지난 9일 장례도 치렀지만, 서울 곳곳에 아직 '용산'이 있다. 3년째 철거사업이 진행 중인 상도동의 눈 덮인 산동네에도, 밀어붙이기식 개발에 항의하며 주민이 자살한 마포구 용강동에도, 우여곡절 끝에 이주협상을 타결해 뿔뿔이 동네를 떠나는 왕십리에도 있다. <오마이뉴스>는 참사 1주기를 맞아 수도권의 대표적인 철거 현장을 찾아보고 재개발정책의 대안도 고민해봤다. [편집자말]
서울시 동작구 상도 4동 11구역 산 65번지 일대는 철거가 대부분 진행되어 30여 가구만 남아 있다.
 서울시 동작구 상도 4동 11구역 산 65번지 일대는 철거가 대부분 진행되어 30여 가구만 남아 있다.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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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기승을 부리던 맹추위가 조금 풀린 16일 오전에도 '상도4동 11구역 세입자 철거민 대책위원회'(아래 세입자 철대위) 사무실로 쓰이는 장아무개(70) 할머니 집의 수도꼭지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두세 평 남짓한 장 할머니의 안방에는 방석 하나 정도에만 온기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정말 걱정이에요. 부디 잘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달랑 전세금 700만 원 가지고는 갈 데가 아무데도 없어요."

지난 1987년 전세 350만 원에 이 동네에 들어온 장 할머니는 십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결혼한 외아들을 분가시키면서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다.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미로처럼 엉켜 있는 상도 11지구는 동작구 상도4동 산 65번지 일대로 원래는 300여 가구가 살고 있었지만, 2007년 5월 서울시가 이 지역을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철거가 진행되어 현재는 30여 가구만 남아 있다. 이 중 세입자 철대위에 가입한 가구는 모두 11가구다.

세입자 철대위 관계자는 "이들 대부분이 고령자 가구인데다, 평균 전세 보증금이 500~600만 원에 불과해 이곳에서 쫓겨나면 당장 길바닥에 나앉을 형편"이라고 말했다. 세입자 철대위가 철거에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도 이 지역의 토지가 민간사업자 소유여서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밀어붙이기식 개발, 무자비한 철거 폭력... "노인들이 길바닥에 나앉을 판"

토지 소유주들로 이루어진 조합이 결성되는 일반적인 재개발의 경우 토지 소유주들은 물론 세입자도 주거이전비나 임대주택 입주권 등의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민영주택사업의 경우 세입자들이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원래 이곳 토지의 소유주는 조선 태종의 큰아들 양녕대군의 후손들로 구성된 재단법인 '지덕사'로 가옥주들은 그동안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살아왔다. 지난 2006년 지덕사가 민간주택 건설회사인 S사에 이 일대의 땅을 대부분 팔았는데(일부 토지는 계속 소유), S사는 매입 후 무허가 주택들에 대한 '부당이익금 반환 및 건물 퇴거·철거 소송'을 진행했다.

비록 무허가이긴 하지만 매매와 전·월세 계약도 자유롭게 이루어져온 터여서 50년 가까이 집을 짓거나 세를 얻어 살아온 주민들에게 재개발은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2007년 5월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이 동네를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그해 12월 20일 재개발조합 설립인가가 났고, 이 일대 5만9114㎡(1만7882평)에 대한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됐다.

이 사업에 따라 이 지역에는 용적률 236.69% 이하, 층고 17층 이하 범위에서 56㎡(17평형-임대) 161가구, 79㎡(24평형) 176가구, 109㎡(33평형) 366가구, 161㎡(49평형) 159가구 등 모두 862가구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그런데 서울시의 정비구역 지정 후 동작구청에서 재개발사업을 진행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이익이 줄어들게 된 S사는 동작구청이 추진하는 재개발사업을 인정할 수 없다며 세입자들과 구청을 상대로 12개의 민사소송과 5개의 행정소송을 냈다.

가옥주들이 주도하는 조합방식으로 개발될 경우 사업 시행자가 의무적으로 무허가건물 세입자에 대한 이주대책 및 임대아파트 건축 등을 제공해야 하지만, 사업 시행사가 주도하는 민영개발이 되면 개발이익이 더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반발로 사업진행이 늦어지자 작년 4월에는 S사 대표가 재단법인 지덕사 측 이사들과 원주민들로 구성된 재개발 추진위원회를 설득하기 위해 모두 43억 원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서울시 동작구 상도 4동 11구역으로 올라가는 골목 입구
 서울시 동작구 상도 4동 11구역으로 올라가는 골목 입구
ⓒ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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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철거는 진행되었다. 민영개발의 경우 법적인 요건만 충족되면 강제철거 등을 통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업기간을 단축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철거를 맡은 J환경개발은 자진해서 이사를 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을 하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인 후 마구잡이식 철거를 강행했다. 철거용역반원들이 들이닥쳐 폭언과 함께 다짜고짜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던 것.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60~70대 노인들이 건장한 청년들에게 멱살을 잡혀 패대기쳐지거나 마구 두들겨 맞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학교에 갔던 초등학교 1학년 딸이 하교 후 없어진 집 앞에서 목 놓아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철거 폭력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가구당 100만 원 정도의 이주비를 받고 정들었던 동네를 떠났다. 세입자 철대위 관계자는 "떠난 주민들 대부분이 또 다른 철거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마구잡이식의 철거는 또 다른 위험도 불러왔다. 작년 4월 서울시 의회 이수정 의원(민주노동당)은 서울시내 뉴타운‧재개발 지역 3곳에 대한 석면오염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상도4동 11구역의 토양샘플에서 백석면이 검출됐다. 철거업체가 안전조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건축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석면이 공기와 토양을 오염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폐암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석면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1급 발암물질 석면 공포까지... "대안은 순환형 재개발"

그렇다면 상도4동 11지구 세입자들은 언제까지 석면의 공포를 맛보며, 무자비한 철거폭력과 싸워야 하는 할까?

세입자 철대위 측은 '순환형 재개발'만이 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즉 임대아파트의 입주권을 보장하고 입주할 때까지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 등을 제공하는 등의 세입자 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용산 참사'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에 철거민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개발정책의 가속화로 수십 년간 살아온 마을에서 쫓겨나 또 다른 철거지역으로 옮겨가는 대규모 '개발 유랑민'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들이 옮겨갈 값싼 주택지가 거의 사라져 결국은 주거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없는 사람이 단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장할머니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태그:#재개발, #상도 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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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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