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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십 대에 산이 좋아 산에서 살다시피 했던 장한 청년이 세상의 가장자리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천 개의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주기로 결심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지에서 찍은 사진을 전시하는 파주시 중앙도서관의 '김형욱사진전, 함께하면 하늘이 보인다'(1월 13일-2월 13일, 파주시중앙도서관 1층 전시실)가 열렸습니다. 개막식에 참여했던 지인들은 파주교자칼국수에서 맛깔난 칼국수와 만두로 요기를 하고 박희주 감독님 사무실로 갔습니다.

 

6년 만에 최고로 추운 한파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엄동에 활활 타는 연탄난로 옆에 둘러앉았습니다.

 

새벽산행이 사장님을 눈물 나게 하다

 

일행 중 한 분이 요즘 매일 감사하면서 사신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매일 새벽 산에 오르고 있습니다. 집 뒤의 야산에서 내려다보는 설경이 도회지의 길거리에서 보는 눈 쌓인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습니다. 가까이 있었지만 쉰이 넘도록 느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아름다움도 내 마음이 허락해야 보이는 듯싶습니다. 어제 새벽에는 그 산에 다시 오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이 산에 오를 수 있는 건강이 있고 이렇게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었습니다."

 

이 분은 평생 제조업을 하는 사장님이셨고 그 분야에서 업계의 선두를 달리던 분이셨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불과 7년 전만 하더라도 60억이 넘는 재산가였습니다. 하지만 취미로 참여했던 한 조기축구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이 이 분을 시련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여윳돈이 있다는 것을 안 축구회의 몇몇 사람들이 모의해서 계획적으로 이 분의 돈을 횡령에 가까운 방법으로 가로챈 것입니다. 사람을 믿었던 그 분은 결국 모든 돈을 잃고 말았고 자신의 사업체도 남의 손에 넘겨야 했습니다. 갑자기 당한 이 황망한 경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몇 년간은 분노와 좌절로 지내야 했습니다.

 

새벽마다 산에 오르면서 새로운 의욕을 되찾았고 지금은 한 사업체의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처지지만 의욕을 되찾자 새로운 시도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운을 차린 스스로가 대견하고 아직 멀쩡한 육신이 감사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자신이 대하는 하루하루가 모두 기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즘 그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감사합니다',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안도

 

남도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이 그분의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200만 달러를 날렸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농간에 당하고 말았습니다. 물건을 납품하고 대금을 받기로 한 날 그 회사를 방문한 직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대금을 지급해야 할 그 회사의 사무실이 텅 비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화급하게 그 일본회사 사람들의 출국정지를 요청했지만 이미 출국한 뒤였습니다. 저는 그 타격으로 결국 부도를 낼 수밖에 없었고 모든 사업을 포기하고 한국의 공항에 내렸을 때는 제가 지방의 집으로 되돌아갈 여비조차 없었습니다.

 

서울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하룻밤을 자고 그 친구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귀향길 열차 속에서 그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가족들과의 생계가 막역할 테니 약간의 돈을 보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뒤 통장을 확인하니 3백만원이 입금되어있었습니다. 이 돈이야말로 앞으로 제 삶을 꾸릴 유일한 수단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면벽의 마음으로 상당한 시간 숙고의 시간을 가지면서 사업을 하던 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 시간들은 마치 하늘로 난 긴 동아줄을 타고 오르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로만 오르는 형국이었지요. 부도가 나서 저는 그 줄을 놓치게 되었고 추락을 하자 마침내 발이 땅에 닿았습니다. 끈을 놓고 두발로 땅위를 걷는 그 마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전하고 편안했습니다. 저는 여유를 되찾고 일본의 채무자를 찾아갔습니다. 어렵게 찾아간 그의 사무실도 사업이 부도났음을 알리는 공고만 벽에 붙어있었습니다. 채무자를 만나 그의 딱한 사정을 듣는 순간 채권을 회수해야겠다는 굳은 다짐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오히려 그 건물 지하의 이자까야에서 술을 한 잔 사드리고 귀국했습니다."

 

그 분은 지금 친구의 3백만원을 종자돈 삼아 남도지방의 산 깊은 곳에 4천평의 청매실농원을 장만하고 매실장아찌를 만들며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행복을 즐기고 있습니다.

 

딸에게 3종 종합선물세트를 받다

 

매화꽃이 피는 4월, 우리 일행이 함께 매실농원을 한 번 방문하겠다는 말로 그 분의 새로운 출발을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딸을 시집보낸 분이 서둘러 결혼을 시킨 사연을 얘기했습니다.

 

"제 딸은 플루트를 전공했지만 연주보다 남의 아름다움을 가꾸어주는 일에 더 큰 소질이 있음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서울에 독립해서 거주하며 인기 연예인들의 코디네이터로 여러 해 일했고 이어서 강남의 큰 뷰티숍에서 총괄매니저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딸로부터 엄마에게 저녁을 한 턱 내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딸이 알려준 강남의 호화스러운 레스토랑으로 나갔습니다.

 

그 자리에는 미리 귀띔을 하지 않은 청년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딸은 교재한 지 이제 햇수로 2년에 접어든 오빠라고 소개했습니다. 제가 검정할 기회가 없었던 그 사람 앞에서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약간의 불편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딸은 멋진 카페를 알고 있으니 커피를 한잔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딸이 앞장선 그 카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에스프레소 한 모금의 향이 아직 코끝을 떠나지 않은 때에 딸이 말했습니다. '임신 2주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시 커피 잔으로 뻗던 저의 손이 그 자리에서 멎었습니다.

 

더욱 불편해진 침묵 뒤 보여줄 곳이 있으니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딸이 안내한 곳은 인근의 한 아파트였습니다. 현관을 들어서자 딸이 말했습니다. '이 오빠와 살림을 합한 지 2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현기증을 가까스로 주체하며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믿었던 딸에게 한동안 큰 배신감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자신들만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설득시키는 것조차 제 몫이 되었습니다. 자못 기대가 컸던 딸을 흥정한번 못해보고 넘겨주게된 섭섭한 마음을 숨기고 딸을 퇴직시킨 다음 태교학교에 입교시키고 그 사이에 저는 서둘러 결혼 날짜를 잡았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꿈속인양 지나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딸의 그 일방적인 선언들이 오히려 제게 선물이었구나 싶습니다. 제가 사윗감을 찾아내야하는 품을 팔지 않아도 되었고 과년한 딸이 생각보다 일찍 손녀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크게 능력을 발휘하는 사위도 부족함 없이 제게 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딸로부터 '남친, 임신, 동거'의 악몽 같은 3종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그 날을 오히려 제가 큰 행복을 선물 받은 날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따님은 출산 후 다시 자신의 현업에 복귀하여 결혼 전의 일들을 열정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음약자처(飮藥自處)로 보낸 조카

 

연세가 제일 많은 다른 분이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그저께 기막힌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연출 일을 하는 재능 있는 처조카가 음독을 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아마 스스로 비용을 조달해서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잘못된 모양입니다.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리자 여자 친구도 떠나가는 일이 벌어졌고 그 겹친 시련을 견디지 못한 것이지요. 조카를 음약자처(飮藥自處)로 보낸 처는 지금 어떤 위로로도 감당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본시 심약했던 제 처뿐만 아니라 저 또한 그녀석의 영혼이 내게 들어온 것 같은 환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처뿐만 아니라 저까지도 발이 땅에 닿지 않은 것 같이 마음이 흔들립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야 다시 처의 마음이 아물지 모르겠습니다."

 

이 어른은 평생 교직에 계셨던 분이므로 사업하는 사람의 경제적 기복을 경험하지 못한 분입니다. 이름 있는 화가이기도 한 이분이 평생을 통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면 한 종합대학의 미술대학의 설립을 주도해줄 것을 요청받았다가 나중에 대학의 방침이 바뀌어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분은 평생 잔잔한 삶을 살아오신 분이므로 찻잔속의 풍랑조차 견디기를 힘들어 하시는 분이므로 이번에 맞은 신고의 시간은 부부에게 상상키 어려운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정초에 쓰레기수거차량에 분리된 쓰레기를 내다드리면서 환경미화원에게 처가 통상적인 인사를 드렸습니다.

 

"올해도 큰 복 받으세요!"

 

수거차량의 뒤에 오르던 미화원이 답했습니다.

 

"복이 별거인가요? 지금처럼 제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으면 그게 큰 복이지요."

 

그분에게는 작년처럼 올해도 환경미화원일을 계속하는데 문제가 없을 만큼 건강한 것이 더 없는 큰 복을 이미 받은 것으로 여기고 계셨습니다.

 

헤이리 저의 이웃 한 분은 잘못된 배관 때문에 겨울 한파가 올 때면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주의를 기울려도 매년 배관이 얼어서 갖은 수단으로 녹여야하는 노고를 매년 되풀이 했습니다. 올해도 그 연례행사는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그 분과 술자리를 하는 자리에서 불쑥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 무엇인지아세요? 얼었던 수도관에서 처음에는 한 방울, 두 방울 물방울이 떨어지다가 그것이 물줄기로 변하고 마침내 쫙 물이 쏟아지는 것이에요. 저는 최근 이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지 못했어요."

 

저의 처가 퇴근 후 제게 긴한 고백처럼 말했습니다.

 

"제가 며칠 전 출근길에 차의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딱한 사연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난한 가정의 부인이 임신 후에 난소암선고를 받았지만, 생명을 지울 수 없어서 목숨을 무릅쓰고 아이를 낳았답니다. 리포터가 그 댁을 가보니 아이를 낳고도 난방비를 마련할 수 없어서 이 추운 겨울에 아기가 있는 방이 바깥기온과 다를 바가 없더래요.

 

그래서 5만원을 송금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한선을 정한 필수적인 생활비의 일부이므로 근무 중 짬을 내어 1층의 ATM기로 가서 2만원만 넣고 돌아섰다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뒤돌아서 3만원들 더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저의 월차일에 특근을 신청했습니다. 그날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당신 일을 돕는 것도 행복하지만 하루쯤 그 아이를 위해 일한다면 더욱 행복할 것 같아서요."

 

저는 30년 전 500병상이 넘는 한 후송병원에서 의무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거나 병원으로 후송되어 올 때 즉시 대응해야하는 병원의 필수부서의 진료5분대기조로 많은 응급환자를 맞았습니다.

 

여러 경우의 환자처치를 지켜보면서 사람의 외과적 상처에 대해 의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의외로 적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많은 경우 무균상태로 상처를 꿰매어주고 나면 그 후부터는 2차 감염을 방지하는 조치를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일이었습니다. 새살이 돋아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우리 몸의 복원력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의 외과적 상처뿐만 아니라 정신적 상실도 스스로의 복원력을 통해 다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중요한 것은 복원력의 발휘가 탄성의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상실감을 경험하는 이웃들에게 그 탄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격려를 해주는 것입니다. 관심과 격려는 좌절에서 벗어나는 효험 높은 소독제이며 소염제입니다. 상대의 소리 없는 호소를 알아차리고 그에게 얘기를 거는 것, 그리고 눈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과
홈페이지 www.motif.kr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행복, #파주교자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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