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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경 아빠랑 어둠을 뚫고 산속에 가서 물을 같이 떠 왔습니다. 엄마는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아들네미는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 기특한 아들네미 새벽 5시 30분경 아빠랑 어둠을 뚫고 산속에 가서 물을 같이 떠 왔습니다. 엄마는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아들네미는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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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물 시원하게 먹고 싶다."

어제 저녁 9시경 갑자기 아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가서 물 떠올까'하니, 춥고 밤도 늦었는데 내일 오후 5시 퇴근하면 같이 가서 물 떠오자고 하였습니다. 이걸 어째요? 이번주 수요일은 마침 모임이 잡혀 있으니 말입니다. 아내는 그러면 토요일은 신문 안 돌리니까 그때 혼자가서 떠오겠다네요.

아내가 새벽 신문을 돌리고 나면 많이 피곤하겠지요. 신문 돌리고 와서 내 출근 밥상 차리고 치웁니다. 잠시 눈 붙였다가 일어나 아이들 방학 수업으로 등교를 하므로 또 밥차리고 설거지를 합니다. 그렇게 집안 살림 하느라 오전 다 보내고 나면 점심 밥먹고 쉴 틈도 없이 오후엔 다시 신문 돌리러 가지요. 오후 신문 다 돌리고 오면 다시 아이들 챙기느라 바쁘구요. 그래서 그렇게도 마시고 싶은 산 속 물을 받아올 시간이 나지 않는 것이겠지요.

'산 속 물이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내일 새벽 아내 몰래 산 속 물을 떠다놓고 출근하려고 마음먹으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맞춰놓은 자명종이 울려 깨어났습니다. 아내는 신문 돌리러 갈 채비를 하는지 거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윽고 잠시후 현관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얼렁 일어나 불을 켜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아빠 뭐 해? 새벽부터..."

이건 또 뭐꼬? 깜짝 놀라 뒤돌아 보니 초등학생 3학년 올라가는 아들네미가 눈을 말똥거리며 서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일찍 잠들더니만 새벽에 엄마가 신문 돌리러 가려고 일어나 부시럭 거리니까 깬 모양입니다. 왜 일어났냐고 물으니까 잠이 안 온다네요.

"어제 엄마가 산 속 물 먹고 싶다고 그래서 아빠가 지금 물 받아 오려고."

아들은 갑자기 왕손가락을 치켜 세우더니

"와~ 우리 아빠 최고다."

그러더니 자기도 따라 갈거라며 후다닥 방으로 뛰어 들어가 옷을 갈아 입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호기심 많은 아들과 함께 물뜨러 갈 준비를 했습니다. 작은 손리어카에다 10리터 정도 들어가는 생수통 2개를 싣고서 문 앞에 놓아두고 아들 추울까 싶어 옷도 두껍게 입히고 장갑에 마스크까지 해서 완전 무장을 시킨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차가운 냉기가 몸 속으로 스멀스멀 파고 드는것 같았습니다. 아들은 신났네요. 아들과 나는 손리어카를 한쪽씩 잡아 끌며 길을 나섰습니다.

아들이랑 새벽에 같이 가 본 산속 물 터가 있는 골짜기를 무지골 이라 하네요. 약수터 이름은 신한약수터 이구요. 처음엔 이런 안내 표지판이 없더니만 생겼네요. 풀뿌리 민주주의 효과일까요?
▲ 무지골 아들이랑 새벽에 같이 가 본 산속 물 터가 있는 골짜기를 무지골 이라 하네요. 약수터 이름은 신한약수터 이구요. 처음엔 이런 안내 표지판이 없더니만 생겼네요. 풀뿌리 민주주의 효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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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약수터는 집에서 10분쯤 걸어가면 있습니다. 주전 바닷가 마을로 가는 큰 도로를 따라가다 작은 체육공원이 있지요. 그 길을 따라 산속으로 100미터 정도 더 들어가면 약수터가 나온답니다. 구청에서 수질검사도 해주고 특별관리하고 있는 약수터랍니다.

약수터에 도착하니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고 불이 환하게 켜져있어 어둡지 않았어요. 절반 정도는 손리어카를 끌고 갈수 있는데 절반 정도는 돌로 된 비포장길이라 물통을 들고 올라가야 합니다. 물은 졸졸 거리며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빈 물 통 속을 헹궈내고 물을 받아지게 해놓고 아들과 그 옆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울산시 동구청에서 본 약수터를 관리하고 있다는 안내문 이네요. 수질 검사를 지난 2009년 12월 18일 했으며 먹을수 있다고 해놓았습니다.
▲ 약수터 안내문 울산시 동구청에서 본 약수터를 관리하고 있다는 안내문 이네요. 수질 검사를 지난 2009년 12월 18일 했으며 먹을수 있다고 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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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새벽에 물뜨러 나오니 참 좋다. 우리 일주일에 세번 물뜨러 오자. 하늘에 별도 보이고 나무도 많고 여기다 2층 집 짓고 살면 좋겠다."

아들네미는 새벽의 그곳 분위기가 좋은가 봅니다. 언제나 늦잠자던 녀석이 간만에 새벽에 일어나 예정에도 없던 물떠 나르는 일로 아빠랑 새벽에 산 속 숲에서 하늘 별 구경하는것도 처음입니다. 아들네미 말처럼 정말 깊은 산속 맑은 물이 샘솟는 곳에다 멋진 집 짓고 살고 싶어지더군요.

차량이 다니는 큰 길에서 산속으로 100미터 가량 더 들어가면 있는데요. 절반 정도는 길을 내어 손구르마로 오고 절반 정도는 사진처럼 울퉁불퉁 바윗길이라 물 통을 들고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왼쪽 큰 사각형 모형이 바로 물이 나오는 곳입니다.
▲ 무지골 신한 약수터 차량이 다니는 큰 길에서 산속으로 100미터 가량 더 들어가면 있는데요. 절반 정도는 길을 내어 손구르마로 오고 절반 정도는 사진처럼 울퉁불퉁 바윗길이라 물 통을 들고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왼쪽 큰 사각형 모형이 바로 물이 나오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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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칸막이가 되어 있구요. 둥근 파이프를 연결하여 물이 나오고 있더군요. 졸졸졸~~~ 많지도 작지도 않게 나오고 있어요.
▲ 산 속 물 받고 있어요. 네모 칸막이가 되어 있구요. 둥근 파이프를 연결하여 물이 나오고 있더군요. 졸졸졸~~~ 많지도 작지도 않게 나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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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네미랑 하늘의 별보며 겨울 숲의 풍경을 보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물통에 물이 다 차 올랐습니다. 두 통 다 산속 물로 채운 후 물통을 양 손으로 들고 다시 손리어카에 실었습니다. 아내가 오기전에 들어가 자는 척하려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아침 6시 30분경이 되었습니다. 새벽 5시경 일어나 정신 차리고 옷 갈아 입은 후 아들과 집을 나선 게 5시 30분경이었으니 1시간 가량 소요되었네요. 문 열고 들어서니 웬걸요? 아내는 신문을 다 돌리고 들어와 내 아침 밥상을 차리고 있더라구요.

"잉? 현근이도 갔었나? 엄마는 현근이 자는줄 알았는데..."

아들이 먼저 들어서자 놀라며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내는 아들이 일찍 일어났길래 책보고 있으라 하고 신문 돌리러 나갔다고, 그래서 책 보고 있는 줄 알았노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아들이 아빠랑 물뜨러 다녀온 걸 대견해 했습니다. 나는 아내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아빠, 잘 다녀 오세요."
"오늘 피곤하겠네. 물떠와서... 조심해 다녀와요."

아내와 아들네미의 목소리에 즐거움이 가득히 흐르고 있슴이 느껴지더군요. 나도 잘 다녀 오겠다며 상쾌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오늘 사실 일할 때는 좀 피곤했습니다. 새벽녘에 1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 났으니까요. 그러나 기분은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아내가 산 속 물을 마시며 행복해 할 모습을 상상하니.

덧붙이는 글 | 우리집 마님과 결혼한지 17년 정도 접어 드네요. 총각때 우리집은 산속에 있었습니다. 월세 낼 형편이 못되었던 부모님은 산속에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살았었습니다. 아내와 우연찮게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산동네에 있는 우리집을 구경 시켰습니다.

실망 할 줄 알았는데 아내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게 이렇게 충고 했습니다.

"가난이 죄인가요? 가난은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인 것이지 창피해 할 일이 아니래요. 돈은 벌면 되고요"

그때 그 한마디에 나는 큰 감동을 먹었었지요.
그래서 가난하고 못난 날 선택해 준 아내에게 늘 고마움을 가지고 살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 때 한가지 다짐을 한게 있어요.
평생을 마님처럼 섬기며 살겠노라고.

"마님... 고맙습니다"



태그:#약수터, #울산,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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