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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다웠습니다. 조금만 이불을 걷어차도 썰렁한 기운이 들다보니 일찍 일어났습니다. 사무실에 나가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책이라도 볼 생각에 어두운 거리로 나섰습니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얼어붙은 거리를 배회하다가 얼어붙은 쓰레기봉투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운데 맨 몸으로 겨울을 나야하는 날짐승들과 들짐승들은 어떻게 살까 싶었습니다.

 

북한산자락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7시 30분, 조금만 더 있으면 해가 뜰 것 같아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올해들어 새해 첫날에 이어 두번째 해맞이입니다. 인공의 빛이 많은 도시에 살다보니 몸이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민감하질 않습니다.

 

해가 떠오릅니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오늘의 태양이 어김없이 떠오른다는 것, 그것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새해 첫날에는 떠오르는 해를 보겠다고 그렇게들 아우성이더니 다음날부터는 무심하게 대합니다. 일등만 기억되고 이등은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의 흐름 때문일까요?

 

새해 첫날 맞이했던 태양보다 더 붉은 빛, 사무실 옥상이 그리 높질 않아서 텅빈 겨울숲 나목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해를 맞이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참으로 좋습니다.

 

옥상에서 내려오는 길, 유리창에 물기가 어려있습니다. 유리창 하나 사이로 극과 극의 세계, 안 쪽은 따스한 기운이 있어 물방울이 맺혀있고 바깥쪽은 꽁꽁 얼었습니다. 실내가 추었다면 성에가 끼었겠지요.

 

어릴적, 겨울이면 머리맡에 놓아둔 걸레가 꽁꽁 얼었지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려면 창에 하얗게 서린 성에를 호호 녹이거나 손톱으로 긁어내야 했습니다. 겨울이면 요즘처럼 늘 눈이 쌓여있는 것이 일상이었고, 햇살만 따스하면 동네 개구쟁이들은 모여 썰매도 타고, 구슬치기도 했습니다.

 

썰매는 겨울에 타는 것이라고 하지만 추운 겨울에 하필이면 구슬치기 놀이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터진 손등이 아물기 시작하면 봄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 시절 많이 추웠어도 추운 걸 모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일출, 그 붉은 빛이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물들입니다. 바다만 물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물방울도 붉게 물들여주는 햇살의 마음, 선인과 악인에게 차별없이 자기의 빛을 나눠주는 마음, 춥거나 덥거나 한결같이 어둠을 사르고 떠오르는 마음, 태고적부터 매일 아침과 저녁 뜨고지면서도 언제나 아침엔 수줍어 얼굴을 붉히고, 저녘엔 슬퍼 얼굴을 붉히는 태양의 마음은 늘 신선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마음입니다. 그냥 의도하지 않으면서 존재함으로 수많은 생명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자신이 한 일인지도 모르는 것이 자연입니다. 이런 자연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은 사람이라면 자기보다 약하거나 힘이없다고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 해맞이를 하다가 우연찮게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담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찍을 때도 알지 못했습니다. 모니터로 확인하다가 마치 달표면을 보는 듯, 추상화를 보는듯한 사진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냥 사진만 올려 놓으면 무슨 사진인지 모를 것 같은 난해한(?) 사진을 보며 소중한 것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태그:#일출, #성에, #한파, #물방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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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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