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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2009년)는 한국 근대미술의 개척자 고희동이 '신식 문화'인 유화를 배우러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한 지 100년을 맞는 해여서 한층 의미를 더한다. 암울한 시기에 한 청년의 예술적 열정이 발화점이 되어 오늘날과 같이 풍성한 한국 화단이 형성된 것을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 이 책은 우리와 시대를 함께한 과거와 현재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그들이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 과연 그들의 예술적 가치와 성과는 무엇인지 짚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한 작가가 가진 기법이나 양식과 같은 문제를 조명하기 보다는 그들의 예술 여정을 개괄하여 주요 미술가들의 작품 흐름과 성격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집필하였다. 간략하게나마 주요 이력을 포함시킨 것도 작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한국현대미술가 100인> 발간사 중에서

<한국현대미술가 100인>겉그림
 <한국현대미술가 100인>겉그림
ⓒ 사문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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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동(1886~1965년)은 오세창(1864~1953)과 함께 간송 전형필(1906~1962)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로 종종 거론된다. 1900년 이전에 태어나(1986년) 한국 최초로 서양화를 전공, 민족의식의 발로로 '서화협회'의 주축이었던 그는 전형필의 고보시절 스승이었다고 한다.

'서화협회'는 일제강점기에 결성한 최초의 미술인 단체다. 당시 일본인 화가들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조선미술협회'를 조직, 화단을 이끌어갈 기세를 보이자 민족적 주체성이 있는 단체의 결속을 절감한 민족미술가들이 고희동을 중심으로  결성한 것이 이 서화협회다.  

서예가·화가들이 중심인 이 협회의 명칭에 '미술'이라는 글자를 넣지 않은 이유는 '미술'이라는 말이 일본이 만든 신조어라는 데 대한 거부감과 전통적인 용어를 고수하려는 원로들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1918년에 조직된 이 서화협회는 15회의 협회전을 거쳐 1937년에 총독부의 정지령에 의해 조직 활동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한국 현대 미술가 100>(사문난적 출간)은 한국미술평론가협회 34명의 필진들이 2년간 집필하여 내놓은 책이다. 고희동부터 시작된 우리의 현대미술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1945년 이전에 출생하여 광복 이전과 광복 이후에 활동한 우리의 현대 미술가들의 삶과 대표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계에서 오지호만큼 지조와 품위를 지켜낸 작가는 드물다. 무자비한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창씨개명을 끝까지 따르지 않은 일이나, 해방 후 전라도 광주 무등산 자락에 초가집을 짓고 세상을 타계할 때까지 살았던 것에서 그의 지조에 대한 일면을 읽어낼 수 있다. 다들 성공을 꿈꾸며 대도시로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던 이들과는 반대의 삶을 지향했다. 한자 사용 폐지는 우리 문화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라는 생각에 자비를 털어 '국한문혼용'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하고, 사회 각계에 한문의 중요성을 호소하는 운동을 펼친 것도 평생을 지켜온 그의 선비가 가져야 하는 품위 때문이었다.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던 오지호의 아버지는 1919년 4월 어느 날 밤 순절했다. 이 충격적인 선친의 자결은 민족주의자로서 오지호의 사상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오지호, 선비의 지조를 위해 살다(임창섭 글) 중에서

오지호(1905~1982)는 구한말에 보성 군수를 지낸 오재영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선친의 충격적인 죽음을 계기로 오지호는 서당에서의 한문 공부를 그만둔다. 그리고 전주고보를 거쳐 서울의 휘문고보에 진학하는데, 이는 그의 일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정지용, 이태준, 이마동 등 후일에 예술계를 빛낼 여러 인제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고희동을 미술교사와 학생으로 만난 것도, 나혜석의 개인전을 보고 평생 그림을 그리겠다는 열망을 태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책에는 한 번 고배를 마신 오지호가 코피 터지는 준비를 한 끝에 1926년에 도쿄미술대학에 입학한 이후 대학 3년 시절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나부>와 <이인화집>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당시 화단에 커다란 반항을 일으킨 김주경, 오지호의 <이인화집>(1938)은 최초의 원색화집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밝고 아름다운 색채를 보여줌으로써 일본적 아카데미즘 화풍을 완전히 벗어난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이인화집>(1938) 설명 중

-이 그림에 나오는 집은 오지호가 1935년부터 1944년까지 지내던 개성의 초가집이다. 화창한 봄날의 따뜻한 기운을 그대로 담아낸 그림으로, 문지방을 넘고 있는 아이는 오지호의 둘째 딸 그리고 담벼락 아래에서 졸고 있는 개는 삽살개이다....한국의 자연에서, 한국의 기후와 풍경이 만든 실무에서 자신의 의식과정을 통해 구현해 낸 그의 능력은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남향집>(1939) 설명 중

오지호가 입학할 당시 도쿄미술대학은 일본적인 아카데미즘을 표방하던 교육기관이었다고 한다. 그가 대학 재학 중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나부>에는 스승 '후지시마'의 화풍이 많이 스며있지만 졸업과 함께 그는 일본적인 아카데미즘 혹은 스승의 화풍을 완전히 벗어버린다. 이와 함께 발표된 것이 <이인화집>이니 우리 화단에 의미가 클 수밖에 없겠다.

책속에는 <시골소녀>(1928), <오월풍경>(1936)등과 함께 <이인화집>에 실린 <사과밭>(1937)과 오지호가 한때 살았던 집을 그린 <남향집>(1939), 독일 함부르크 항의 인상을 구린 <항구>(1980) 등 오지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소개, 작품이 설명된다. 오지호는 김주경과 함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 분리, 토속적인 인상파 화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무분별한 <한국현대미술가 100인>을 썩 불편하게 만나다

허백련,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이응노, 장우성, 김기창, 천경자, 서세옥, 정탁영, 이규선, 안동숙, 박노수, 송수남, 이종상, 김환기, 유영국, 한묵, 이중섭, 박고석, 장욱진, 김영주, 정규, 남관, 박수근, 박상옥, 이봉상, 장리석, 박항섭, 황용엽, 문학진, 변종아, 오승우, 류경채, 양달석, 최영림, 김흥수, 박서보, 정상화, 권영우, 윤형근, 김창렬, 하종현, 윤명로, 이강소, 서승원, 최명영, 백남준과 박현기, 김구림, 이건용, 김종영, 권진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미술가들 대략은 이렇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낯익은 이름들도 많지만, 미술을 교양쯤으로 알고 살아가는 필자에게는 대부분 낯선 이름 들이다.

어린 시절 미술부 활동을 했고 청소년기 모 신문사 주최 청소년 삽화부문 우수상을 탄 적이 있다. 이런 필자에게 미술은 이루지 못한 아쉬운 꿈이다. 이런지라 이 책이 참 끌렸다. 아련한 꿈과 함께 우리의 대표적인 미술가들 그들의 삶과 예술여정, 대표적인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과 함께.

그런데 이런 기대는 아쉽고 안타깝게도 책을 얼마 읽다가 접어버려야만 했다. 이는 또한 책을 좋아하는 순수 독자로서의 아쉬움이기도 할 터이다.

책속 모든 작품들이 흑백이라 답답했다. 또한 이처럼 대부분의 책들이 작품마다 규격과 형식을 넣음에도 뒤에 별도로 넣었다. 그래서 답답하고 불편하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책속 모든 작품들이 흑백이라 답답했다. 또한 이처럼 대부분의 책들이 작품마다 규격과 형식을 넣음에도 뒤에 별도로 넣었다. 그래서 답답하고 불편하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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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반양장본(257*188mm, B5) 크기에 556쪽이라 대략 300쪽 안팎인 일반적인 단행본들보다 훨씬 많은 내용들이다. 미술가 1인에 할애된 페이지는 대략 4~6쪽, 한사람에 대해 대략이나마 알 수 있는 분량인지라 이 책만 읽어도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 미술가들을 쉽게 정리해 볼 수 있으리라.

제목에 100인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104명이다. 솔직히 한꺼번에 알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다. 때문에 우선 대략이나마 읽은 다음 필요할 때마다 펼쳐 읽어 한사람을 좀 더 명확하게 알아가는 계기를 삼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기대를 불편하게 한다. 1번부터 104번까지, 눈에 보이는 아무런 기준도 없이 죽 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1장 혹은 1부, 동양화 혹은 서양화, 설치미술 혹은 조각 등으로 만이라도 구분하여 소개했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두 번째 아쉬움은 책속 모든 작품이 '흑백'이라는 것이다.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그다지 없지만, 미술에 있어서 색은 썩 중요하다고 알고 있다. 사실 색 때문에 끌리는 작품이나 사진들도 있다. 그러니 책속에서 만나는 흑백들의 작품들은 도무지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책의 사정이 이러니 '우리 민족의 밝고 아름다운 색채를 보여줌으로써 일본적 아카데미즘 화풍을 완전히 벗어난 작품'이라는 이인화집에 실린 <사과밭>과 '화창한 봄날의 따뜻한 기운을 그대로 담아낸 그림'이라는 <남향집>을 읽으며 얼마나 아쉽던지!

책값은 5만원이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그동안 만난 비슷한 책들과 비교해 보건대, 디지털시대에 이와 같은 흑백의 미술관련 책은 아무래도 지나친 계산만을 앞세운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쉽게만 여겨진다.

또한, 작가연보와 도판목록을 책의 뒷부분에 별도로 실었는데 참고하기 영 불편하다. 작가연보는 가나다순에 따랐지만 책속 작가들은 눈에 띄는 기준도 없이 그냥 나열하고 있어 이 둘의 순서배열이 다르다. 또한 책속 작품명 옆에 규격과 형식을 표기했더면 책을 읽으며 작품을 이해하기 훨씬 쉬웠으련만 뒷부분을 별도로 들춰야만 하기 때문에 영 불편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작품을 함께 소개하는 책들은 대부분 한사람을 소개할 때마다 내용 앞이나 내용이 끝나는 부분에 약력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작품마다 바로 규격과 형식을 넣는다. 다시 한번 정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보편적인 것마저 왜 무시했을까? 앗! 지나친 요구인가? 애정어린 요구라고 부디 받아주시길~!

'한국미술평론가 협회'가 엮은 것(저자)이라는 기대감도 없잖아 있었음을 덧붙이고 싶다.혹은 생각을 돌려봤다. '책 한권으로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고 욕심을 부렸나? 미술을 지망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책이기 때문일까?'라고. 이런 아쉬움이야 있지만, 그래도 내용면에서는 두고두고 펼쳐볼만한 가치는 있는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한국현대미술가 100인|한국미술평론가협회 (지은이) |사문난적 |2009-12-10 |정가:50000



한국현대미술가 100인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지음, 사문난적(2009)


태그:#현대미술가, #고희동, #오지호,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서화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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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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