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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장호원쪽에서 바라본  장호원교. 건너편이 충북 음성군 감곡면이다.
▲ 장호원교 이천 장호원쪽에서 바라본 장호원교. 건너편이 충북 음성군 감곡면이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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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장호원읍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을 잇는 다리가 있다. 청미천에 놓인 장호원교. 아마 나이가 듬직한 분들은 이 다리 때문에 일어난 한 가지 일쯤은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 장호원교에 얽힌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1982년 1월 5일 자로 해제가 된 통행금지 때문이다.

통행금지는 1945년 치안과 안보를 목적으로 처음 실시가 되었다. 당시에는 신정연휴, 광복절, 크리스마스 때만 해제가 되고, 그 나머지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이 제한이 되었다. 그때는 통행금지 위반이 되면 즉결심판을 받아야 할 때니, 이래저래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마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말일지도 모른다. 1982년부터는 국가안보 상으로 통행금지를 해제할 수 없는 휴전선 부근과, 해안취약지구를 빼고는 전체가 해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1979년인가 국립무용단의 창작무용극의 음악을 맡아, 조용히 곡을 쓰겠다고 잠시 장호원으로 간 적이 있었다. 당시는 이천시 장호원읍을 '이천장호원'이라고 하고, 충북 음성군 감곡면을 '음성장호원'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장날도 함께 장이서고, 그 장은 청미천에 걸린 장호원교를 연결해 섰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성군 감곡면과 도계인 장호원교. 눈을 치우니 <장호원교>라는 다리면판이 보인다.
▲ 장호원교 음성군 감곡면과 도계인 장호원교. 눈을 치우니 <장호원교>라는 다리면판이 보인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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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다보면 항상 예비사이렌이 울려

1964년부터 충청북도와 제주도가 먼저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당시 이천 장호원에서 술을 마시다가 보면, 통행금지가 가까워지는 것도 모르고 마셔대고는 했다. 당시는 '두주불사'인지라 술을 마시면 거의 밤을 새우고는 했으니. 그것도 가족을 떠나 혼자 가 있었으니, 술을 마신다고 누가 무엇이라고 할 사람도 없다. 또 그렇게 술을 마시고 들어가 보았자 작업도 할 수 없다. 항상 그렇듯 '다음날 하면 되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술을 마시다가 보면 밤 11시 30분쯤 된다. 술집 주인은 나가라고 재촉을 한다. 물론 통행금지에 걸려 봉변을 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12시가 되기 전에 예비사이렌이 불면 여기저기서 난리다. 호각소리가 나고 뛰어가는 발길들이 바쁘다. 그러거나 말거나 느긋하게 앉아서 마셔대는 술꾼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왜 그렇게 주인의 애를 태우면서도 느긋했을까? 그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청미천에 걸린 장호원교가 해답이다. 장호원교를 건너 통행금지가 해제된 충청북도로 넘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감곡에서 보면 다리 끝에 경기도임을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 경기도 감곡에서 보면 다리 끝에 경기도임을 알리는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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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군임을 알리는 조형물
▲ 음성 충북 음성군임을 알리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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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전에 냅다 뛰어 건넌 다리

에비사이렌이 불면 밖으로 나와 장호원교를 건넌다. 당시에는 이천 장호원교 입구에 초소가 있었다. 물론 도계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곳에서 위반자를 잡고는 했다. 하지만 아직 5분이 남아있으니, 슬슬 여유도 부리고는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는 생각이다.

"오늘도 또 마셨구만."
"아이고, 오늘도 고생하시네요. 다녀올게요."
"집으로 가면 되지."
"그러다가 잡히면요."

늘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때만 해도 참 마음에 여유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농을 하다가도 12시 통금사이렌이 불면, 냅다 뛰어 장호원교를 건넜다. 12시가 되면 어김없이 파출소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30분이면 걸어서 숙소까지 갈 수 있었지만, 왜 그렇게 집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장호원교를 뛰어 건넜는지 모르겠다.    
  
청미천에서 겨울을 나는 오리떼들
▲ 오리떼 청미천에서 겨울을 나는 오리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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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성군에 있는 문화재를 답사하러 나갔다가 장호원교를 건너려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괜히 혼자 웃다가 천천히 걸어서 건너본다. 양편에는 빌딩들이 들어서 옛 모습하고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고 보면 옛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청미천에 여기저기 무리지어 앉은 철새뿐이다. 벌써 30년이 훌쩍 지난 옛 일이다.


태그:#통행금지, #장호원교, #이천, #음성, #감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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