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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처음 세상 빛을 본 책 한 권이 2010년이 된 현재 프랑스의 모습을 얼마나 잘 반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프랑스어권인 가봉에서 5년여간 청소년 시기를 보내기도 했고 그 이후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기까지 꾸준히 프랑스 사람, 프랑스 삶을 늘 접한 사람에게서 듣는 프랑스 이야기는 일단 귀기울여볼 만하겠다.

 

프랑스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아니지 싶다. 그렇다고 잠시 들렀다 가는 길손의 눈으로 프랑스를 바라본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프랑스에 오랜 기간 있었다고 해서 프랑스를 아름답게 포장하여 예쁜 것만 보여주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다만, '똑같은 것은 싫다'란 말에서 보듯, 프랑스인이 다양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꽤나 강조하고 싶은 것 같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곧 취향이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취향이란 인간과 동물을 구분짓는 중요한 잣대요, 인간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취향이야말로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는 자유로운 선택이고, 자유로운 선택의 의지를 생각과 행동에 반영하는 것은 문명인의 기본조건이다."(13쪽)

 

미국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지만, 프랑스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흔히 일컫는 '인종'에 따른 분류로만 보아도 그렇고 무엇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것을 권장하는 현상을 봐도 그렇다. 영국과도 다른 면에서, 프랑스는 과거 세계 각지에서 식민지를 추진하였고 지금도 그 영향은 적잖이 남아 있다. 프랑스어의 영향력만 봐도 결코 영어에 뒤지지 않는다.

 

프랑스 역사나 정치를 다룬 책이 아니다. 프랑스 여행서도 아니다. 또, 프랑스 예술을 다룬 책도 아니다. 가장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은 프랑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인지에 대해 쓰고자 했다. "한국 문화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서적 토양이라면 프랑스의 정신은 나의 머리를 지배하는 햇빛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지은이 조홍식은 다섯 항목으로 짠 <똑같은 것은 싫다>(창비 펴냄)에서 프랑스인에 대해 들려준다.

 

동양문화권에서 한국이 그리고 서양문화권에서는 프랑스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중앙집권 주도 성향이 강하다고 말하는 그는 체면과 양심이라는 두 낱말로 두 나라를 바라보기도 한다.

 

"나는 한국과 프랑스 사회를 비교 관찰하면서 체면과 양심이 양국의 사회를 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랑스인이라고 해서 체면을 따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해서 양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인들은 체면에 민감하고 프랑스인들은 양심에 의해 제어된다.

 

(중략) 믿음과 신념에 기초한 양심체계는 프랑스처럼 중앙집권적인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표출된다. 카톨릭 세력이 전통과 권위를 대표하는 보수 정치세력으로 결집되는 한편, 계몽주의 세력은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진보 정치세력으로 나타난다. 프랑스 정치의 기본구조라고 할 수 있는 좌우익의 대립은 이같은 카톨릭 보수주의와 계몽적 진보주의의 대립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간의 투쟁이 어찌나 치열한지, 프랑스에서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정치와 종교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이다."(195-198쪽)

 

'사랑'는 주제를 단 1장에서, 지은이는 프랑스라는 말에서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자유롭고 개방된 사랑 방식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으로 이 책의 시작을 알린다.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가족 구성 형태에 있어서 그들 역시 '보수'와 '진보'라는 두 시각이 모두 드러난다는 것이다.

 

다양성이나 자유 혹은 개성이라는 말이 주는 매력 있는 모습만이 프랑스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가 모든 면에서 다 좋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사고체계가 어우러져 사회적 충돌 역시 빈번하면서도 그것들이 모두 프랑스를 이루는 요소들이라고 말하는 그들 태도는 분명 기억해 둘만 하다.

 

"나는 정치를 지배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익보다는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거나 시민들이 시위를 벌일 때 이들을 움직이고 행동하고 선택하게 하는 동인은 자신의 물질적 이해타산과 계산보다는 정신적 믿음과 감정에 있다고 여긴다. 물론 그렇다고 물질적 이익이 정치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정부가 세금을 올려 자신의 소득을 빼앗아가면 싫어하고 복지제도를 통해 다양한 혜택을 주면 좋아하게 마련이다. 다만 이익적 차원과 감정이나 신념의 차원을 놓고 비교해보았을 때 감정이나 신념이 앞서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는 말이다. 프랑스 정치는 이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믿음과 감정, 그리고 신념이 강력하게 표출된다."(238쪽)

 

무엇이 프랑스다운 것일까? 프랑스인이란 어떤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까? 인종, 사상, 생활 방식 등 곳곳에서 똑 같은 한 가지보다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를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곤 하는 프랑스인. 그네들과 살았고 이제는 그들을 조금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게 된 조홍식은 우리에게 프랑스인은 다양성, 개성 그리고 무엇보다 신념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프랑스인다움은 다양성이나 개성이라는 말보다는 신념이라는 말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신념과 신념이 만나는 곳 바로 거기서 때때로 위험한 충돌을 뛰어 넘는 연대 정신이 피어나는 일도 있겠거니 싶다. 예컨대, 세상이 뒷걸음질 한다 싶을 때 말이다. '똑같은 것은 싫다'는 말 한 마디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프랑스 읽기가 충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책을 덮는 순간에도 되짚어보게 되는 말은 바로 신념이다.

덧붙이는 글 | <똑같은 것은 싫다> 조홍식 지음. 창비, 2000.


똑같은 것은 싫다

조홍식 지음, 창비(2000)


태그:#똑같은 것은 싫다, #프랑스, #조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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