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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오보라고 생각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기자들이 확실치도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추측성 기사를 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는 보도는 사실이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다음엔 부아가 치밀었다.

 

왜 그랬을까! 나와는 특별한 추억도 없는 사람인데, 술 잔 나누어 먹은 적도 없고 흉금 없는 대화를 나누어 본 적도 없는데. 왜 그랬는지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못 다 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을 읽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해답은 책 첫 머리에 있었다.

 

"나의 실패를 진보의 좌절, 민주주의의 좌절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고는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과학도 과학이라면 인간관계를 과학적으로 따져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영웅 사관은 넘어서야 한다. 여러분은 여러분 갈 길을 가야 한다. 몽땅 덮어씌우려는 태도도 옳은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극복해야 할 자세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일이 있고 역사는 자기 길이 있다"

- 책 속에서

 

그랬다. 노 대통령이 투신했을 때 순간적으로 진보가 졌다고 생각했다. 농사꾼 아들로 태어나 육군 졸병으로 군 생활을 한 진짜 서민 대통령 노무현이 결국 무릎을 꿇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리도 풀리고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검찰과 보수언론들 공격을 모두 물리치고 멋지게 성공하길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나 또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나 육군 졸병으로 군 생활을 마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 언론, 정치권력인가? 시민권력인가? 시장권력인가?

 

책 속에는 노 대통령이 겪어야 했던 인간적인 고뇌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옷을 훌훌 벗어버린 솔직한 인간 노무현의 고민이다. 피의자 신분이 되어 언론에 오르내릴 때 국민들은 숨을 죽이고 검찰과 노무현 대통령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자연인 노무현 가슴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당시 심정을 솔직하게 기록해 놓았다.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이제는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일을 쓰는 일 뿐인 것 같다. 왜 써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다. 일은 삶 그 자체 이다" -책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괴롭혔던 말 중 하나가 '경제파탄'이다. 5년 내내 경제파탄이 아닌 적이 없었다. 집권기간 내내 노 대통령은 이 말에 시달려 왔고 변명할 기회조차 별로 없었다. 노무현은 책 속에서도 변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하게 반박했다. "경제 파탄 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다. IMF 때나 쓰는 말이다" 라고.

 

언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노무현은 민주화 이후 이미 권력화된 언론과 정부 권력간 유착 고리를 끊으려 했다. 또 언론이 누리던 특권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정부 부처 기자실 문제나 무단출입문제 를 개선하려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언론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 역설한다. 그렇다면 언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그 문제에 대해서 노무현은 오히려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곧바로 해답을 제시한다. 노무현이 원한 것은 시민들이 언론을 제대로 알게 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현재 언론이 서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정치권력입니까? 시민권력입니까? 시장권력입니까? 이것이 제가 묻고 싶은 것입니다. 제대로 된 언론이 시민 권력으로 제 자리를 잡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지 못한 언론은 시장권력의 대리인이나 정치권력의 대리인으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도록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제가 바라는 결과물입니다"-책 속에서-

 

노무현이 바라본 김대중과 김영삼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모든 것을 망쳐버린 사람'으로 냉정하게 평가했다.

 

민주주의 바탕에는 '양심'이 있다

 

2009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전직 대통령이 짧은 유서 한통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가버린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2010년이 밝았다. 지난 일은 모두 잊고 새 날을 맞이해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정리를 해야 한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정리하고 새해를 맞을까 고민하다가 꺼낸 든 것이 바로 이 책 <성공과 좌절>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인간적이고 솔직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임기 말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07년 2월27일 오후 3시 인신협(한국인터넷신문협의회)과 노 대통령과의 대화를 방청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기자들과 대화 도중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점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래서 노무현은 아직 살아있다고 본다. 인간적이고 솔직한 자연인  노무현은 죽음으로 '양심'이 무엇인지 알게 했다. 내 목숨보다 남을 더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진리를 일깨웠다. 이 정신은 오래도록 남겨질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은 죽었지만 살아있는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민주주의가 좌절하지도 않았고 진보가 실패하지도 않았다. 민주주의와 진보의 바탕이 '양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심'이 살아 있는 한 민주주의와 진보는 절대 무너질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5월에는 경황이 없어서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인간적이었고 양심적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죽음보다 더 두려워했다. 그가 남긴 유서에 인간적이고 솔직하고 양심적인 인간 노무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학고재(2009)


태그:#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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