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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문정현 신부(오른쪽)와 문규현 신부가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문정현 신부(오른쪽)와 문규현 신부가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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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저녁 7시 용산 남일당 현장의 마지막 생명평화미사에 모인 용산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평화를 빕니다"라고 외치는 문정현 신부에게 함성으로 답하면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문정현 신부가 용산에서 지낸 것이 이날로 어느새 284일째. 문 신부도 그동안 참 많이 울었다.

이날도 이충연 전 용산4구역철거민대책위원장이 구속집행정지로 일시 석방돼 아버지인 고 이상림씨 영정에 분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엉엉 울었고, 지난해 5월 18일에는 오체투지를 하면서 용산까지 기어온 문규현·전종훈 신부, 수경 스님을 보면서 아이처럼 울었다. 용산참사 협상이 타결된 지난해 12월 30일에도 문 신부는 유가족들과 부둥켜안고 꺼이꺼이 소리 높여 통곡을 했다.

그리고 맨정신으로 유가족을 만나는 게 괴로워서 최근 며칠을 술로 보냈다. 이날 오후 기자를 만나서도 문 신부는 여러 차례 "이제 다 끝나버렸어,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라고 말했다.

"진상 규명을 했어? 책임자 처벌을 했어? 그래도 재개발·뉴타운 정책 재검토까지는 갔어야지. 정운찬 총리가 말한 게 어디 사과야? 추석 때 (분향 와서) 읽은 입장하고 다른 게 하나 없어. 나쁜 사람들, 그 고통을 주고 이걸 해결이라고…. 저들의 잔악함에 치가 떨려."

싸움 잘하는 '깡패신부', 그는 울보였다

이충연 전 용산4구역철거민대책위원장(고 이상림씨 아들)이 구속집행정지로 일시 석방된 가운데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용산참사 현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분향을 드리고 있다.
 이충연 전 용산4구역철거민대책위원장(고 이상림씨 아들)이 구속집행정지로 일시 석방된 가운데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용산참사 현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분향을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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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마지막 미사에 참석한 시민 500여 명은 얼어붙은 아스팔트 길바닥에서 시린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2시간 가까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강단에는 두툼한 외투 위에 사제복을 입은 신부 30여 명이 앉아 있었다.

이렇듯 미사의 끝은 창대했으나, 그 시작은 심히 미약했다.

용산참사 때 숨진 철거민 다섯 명을 기리는 생명평화미사, 일명 '남일당 성당'은 문정현 신부 한 명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으로, 나아가 공식적인 천주교 교단으로 점점 세를 불려나갔다. 나중에는 이웃 종교인 개신교에서도 매주 목요일마다 촛불 예배를 지냈다.

문 신부는 지난해 3월 28일 혼자 용산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던 상황에 대해 "와 보니까 여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들 내가 누굴까 싶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유가족들과 신뢰를 쌓는 데도 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10개월째인 지금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문 신부님이 있어야 마음이 든든했다, 신부님은 정말 하늘이 보내신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느님이 문 신부를 보냈을 당시 용산은 매일매일 몸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였다. 천막 하나 설치하고 문화제 한 번 할 때마다 충돌이 있었다. '5명이나 죽었는데 설마 정부도 뭔가 사과를 하고 대책도 내놓을 것'이라는 초반의 기대가 깨지면서 유가족들도 지쳐갔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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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찰들도 차마 미사까지 막지는 못했고, 유가족과 철거민들에게는 남일당 성당이 일종의 해방구가 됐다. 사제들은 크고 작은 싸움에서 철거민들의 인간방패로 나섰고, 이들의 부상이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해 경찰력의 탄압은 줄어들었다.

용산에서 다친 신부들은 모두 문정현 신부에게 고마워했다. 문 신부는 "사제는 고통받는 곳에서 자신의 몸을 대는 사람이다, 후배(남일당 성당에서 그는 최고령의 '큰형님'이다)들이 여기서 그런 정체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 고통을 주고 이걸 해결이라고... 치가 떨려"

이번 투쟁에서 그는 가장 아끼는 후배를 잃을 뻔했다. 동생 문규현 신부는 지난해 10월 22일 단식 11일 만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 문정현 신부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아, 틀렸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동생이 정말 죽을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다행히 문규현 신부는 3일 만에 의식을 되찾고 퇴원 후 전북 전주 평화동성당 사제관으로 돌아갔지만, 지금도 형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제대로 요양을 하라"고 동생을 야단친다. 그는 문규현 신부의 근황을 설명하다가 "오늘 여기 온다던데"라고 하더니 잠시 전화를 걸었다.

"어디냐? 어허, 네가 여길 오는구나. 오면 더 있지 말고 바로 내려가라. 나는 며칠 술타령하고 살았다. 대추리 떠날 때와 똑같아. 죽겄다, 죽겄어."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사흘 앞두고 6일 저녁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마지막 생명평화미사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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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는 기자에게도 여러 차례 현재 용산의 상황과 자신의 심경을 "대추리 때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긴 싸움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한 성과가 똑같고, 이대로 지기 싫어서 더 투쟁하고 싶은 마음가짐도 똑같다.

"포기하거나 도망가고 싶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성과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다 (하느님이) 부르시면 가는 거고."

협상이 끝나기 며칠 전인 지난해 12월 22일 용산 현장에서 기자를 만난 문 신부는 "해 넘기고 1주기 넘기고 끝까지 견디면 결국 누가 지치겠어? 우린 그저 버티기만 하면 이겨"라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몇 년이고 더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문정현 신부는 협상이 타결될 때, 유가족들이나 철거민들을 설득하지도 않았다. '깡패신부'로 유명한 강성의 운동가지만 그의 투쟁은 유가족들이 싸우는 딱 그만큼이다. 그는 "여기까지가 우리가 가진 힘의 한계이고 우리 사회의 실력"이라고 평가했다.

그 많던 추모 인파는 다 어디로 갔을까

김수환 추기경과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모였던 그 추모 인파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갔을까. 이토록 용산이 아픈데 어떻게 사람들은 이곳을 외면할 수 있을까. 그는 용산을 생각하면 이 사회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허전하고 괴롭다.

그는 일단 전북 군산의 집으로 돌아가서 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지낼 예정이다. 대추리 투쟁에서 그랬듯이, 이번에도 "마음을 잡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 소일거리가 하나 생겼다. 문 신부는 예전부터 꼭 갖고 싶었던 뻥튀기 기계를 마침 이날 장만했다.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가 부부가 함께 트럭 장사를 할 때 쓰던 기계를 선물한 것이다.

뻥튀기 말고는 다음 행보도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문정현 신부는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천주교에서도 직책을 맡지 않고 몸을 가볍게 해두고 있다"면서 "울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 옆에서 함께 우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문 신부에게는 매향리나 대추리나 용산이나 모두 의미가 같다. 이 사회에서 가장 아프게 우는 곳이다. 앞으로 그가 세울 성당에서도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다음 성당에서는 사제가 직접 구수하게 뻥튀기를 구워내는 '뻥'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 4월 29일 저녁 '용산참사 100일 범국민추모제'가 유가족, 종교인,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되어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등 종교별 추모의식과 문화공연 등이 열렸다. 추모제에 참석한 문정현 신부가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 헌화를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29일 저녁 '용산참사 100일 범국민추모제'가 유가족, 종교인,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되어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등 종교별 추모의식과 문화공연 등이 열렸다. 추모제에 참석한 문정현 신부가 희생자들의 영정 앞에 헌화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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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용산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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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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