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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는 삶도 있는 구나' 라는 생각이 내내 들면서 단숨에 읽은 책이 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마음은 누구보다도 큰 노부부의 삶을 담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라는 책이다. 주인공은 경상북도 상주에 살고 있는 오정면, 문달님 부부다. 이 부부는 1987년 동남아시아 농민 대회 참가 차 필리핀에 갔다가 빈곤과 질병, 마약에 시달리는 동남아 일대 원주민들의 삶을 목격하면서부터 이들 부부의 특별한 여행은 시작됐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부> 겉표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부> 겉표지
ⓒ 김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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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마지기 논에 농사를 지어 6남매를 모두 대학 공부시키고도 빚 한 푼 져본 적 없는 근면한 아버지인 오정면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일흔이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1년 농사가 끝나면 배낭 하나 들춰 메고 아내 문달님 여사와 함께 동남아시아 곳곳의 오지 원주민 마을을 찾아 나선다. 할아버지 부부는 그곳에서 유기농업 기술을 전파시키고 병이 심각한 아이들은 국내로 데려와 자비를 들여 수술을 시켜 보낸다. 이 일을 18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왜 굳이 남의 나라 사람들을 돕느냐고 물을 때면 노부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와 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지만 정글 속 원주민들은 그 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어려움에 처한 채로 살아가야 한다. 그 곳은 극도의 가난과 여러 가지 질병의  위험이 도사리는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호적도 신분증도 없이 하루가 다르게 황폐화되고 있는 정글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문명의 혜택을 조금이나마 나누어주고 싶다."

노부부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챙기는 것이 각종 피부연고제. 두통약, 모기약 등 상비약 수준에다 티셔츠, 모기장, 손톱깍이, 볼펜 정도란다. 우리에게는 아주 흔한 물건이지만 이런 물건은 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준다니 그들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은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이지만 생각이 무척 깨어있다. 용기와 추진력은 젊은이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18년을 한결같이 가난한 나라를 찾아가 봉사활동을 할 수 수 있을까? 딸 셋을 대학교 운동장에서 합동으로 결혼식 시키고, 신혼여행은 단체로 지방여행을 보냈다.

심장병 말기 판정을 받고 죽어가던 아이를 우리나라로 데려와 수술을 시켜 건강을 되찾게 한 일, 농약의 폐해를 알고 안전하고 유익한 먹거리를 만들어내고자 29년째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노부부의 생활은 정말 본받을 점이 많다. 합동결혼식을 흔쾌히 받아들여준 딸들도 대단하다. 요즘은 화려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외국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버지의 큰 뜻을 딸들도 물려받은 것 같다.

지난 연말 신문에서 10년째 전북 전주 노송동 주민자치센터에 성금을 놓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의 이야기를 읽었다. 2000년 58만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억8천여만원을 기부했다고 했다.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그는 "어머님께서 안 쓰고 아껴 모으신 돈입니다.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으면 합니다"라는 쪽지와 함께 성금을 놓고 갔다는 기사를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를 떠올렸다.

요즘 세상은 이웃 간에 정이 없고 각박하다고 한다. 이런 '얼굴 없는 천사'나 오정면할아버지를 통해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것 같다.남의 고통을 알고 그 고통을 나누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경인년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자전거, 잠바, MP3 등 내가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그 물건을 가져간 사람은 '잃어버린 사람의 고통을 알까'라는 생각을 하며 아직도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미련이 있다. 2010년 1월을 맞으며 남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오정면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상주는 우리 아빠의 고향이기도 해서 꼭 한번 찾아가 그 할아버지를 뵙고 싶다. 그 할아버지의 삶을 생생히 보고 배우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 / 오정면 글 / 대산출판사 / 8500원

김가람은 고등학생 시민기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자 - 가슴 따뜻한 노부부의 아주 특별한 여행

오정면 지음, 대산출판사(2005)


태그:#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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