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의 존재, 부모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알줄 알았는데 아직도 어머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불효자이다.
▲ 어머니 어머니의 존재, 부모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알줄 알았는데 아직도 어머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불효자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꺼내 시행착오를 거친 후, 필름카메라의 감각을 조금은 되찾아 가는 요즘입니다. 구식이 되어가는 필름카메라로 오래 된 것들 혹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담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노인들, 자연으로 치면 시들어가는 것들이나 잘 익은 열매, 사물로 치면 자기의 쓰임새를 다하고 상품가치를 잃어버린 것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다시 만지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디지털카메라의 속도에 익숙해 있던 손가락 속도도 늦어집니다. 필름 한 롤 36장을 담는데 대략 3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필름카메라의 주제를 어느 정도 구상한 후, 첫 모델은 어머니였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아버님과 다투시고 화가 나서 옥상으로 나오시어 화분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자꾸만 웃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머님의 표정이 왜 궂어 있는지를 알았고, 저는 "연세가 그렇게 드셨는데도 여전히 싸우시냐?"며 핀잔을 주듯 이야기했습니다.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꽃눈있으니 봄이면 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 마른 장미 어머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꽃눈있으니 봄이면 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내게 핀잔을 주며 "아들이라고 저렇게 어머니 마음을 몰라, 당신은 안 늙을 줄 알아?"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불효자입니다. 호랑이 해에 태어나 불혹의 나이도 넘기고, 이제 곧 지천명의 나이를 바라보는 세 아이의 아버지인데도 여전히 어머님의 마음 제대로 읽지 못하는 불효자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자식들에게 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 당신들 생각이나 하시지 뭐하러 자식들을 아직까지도 챙기시느라 그러시냐고 마음에 못을 박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지껏 자식노릇 제대로 하지도 못했으면서 자식노릇 제대로 한다고 착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차마 지지 못하고 말라버린 이파리도 어머니의 마음을 닮은 것은 아닐까 싶다.
▲ 마른 이파리 차마 지지 못하고 말라버린 이파리도 어머니의 마음을 닮은 것은 아닐까 싶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최근 들어 어머님이 부쩍 저의 퇴근시간에 신경을 곤두세우십니다.
직장 상사와의 갈등으로 아무래도 직장을 옮겨야 할 것 같다는 말과 기어코 직장 상사와 한판했다는 소리를 들으셨나 봅니다. 나는 나대로 그 문제때문에 곤두서 있는데 어머님이 일찍 퇴근하고 돌아온 나에게 "왜 이리 일찍 왔니?"하시니 괜시리 화가났습니다.

"어머니, 그냥 어머니 남은 여생 어떻게 행복하게 사실까하는 생각만 하세요. 다 큰 자식새끼가 제 앞가림 못하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도 며칠을 끙끙 앓았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속이 상하셨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것이 아무리 다 큰 자식이라도 아이같은 것인데, 그렇게 쏘아댔으니 마음이 불편하셨을 것입니다.

저 마른 꽃 어딘가에도 차마 떨구지 못한 씨앗을 품고 있을 것이다.
▲ 마른 꽃 저 마른 꽃 어딘가에도 차마 떨구지 못한 씨앗을 품고 있을 것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아직도 어머니의 마음 속에는 자식들에게 차마 주지 못한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아니, 이 땅과 이별하는 그 순간까지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눈이 제법 왔습니다.
병원에 다녀오셔야 한다며 외출준비를 하십니다.
오랜만에 연휴를 맞이하여 쉬는 아들 몰래 다녀오시려고 조심스레 준비를 하시는 어머니, 눈길에 넘어지시기라도 하면 더 큰 일이라고 하니 못이겨 아들과 집을 나서십니다.

진료 받으시는 것도 지켜보고, 약국에 가서 처방전으로 약도 샀습니다. 겨우 그 정도 했는데 어머니는 너무 좋아하십니다. 내친 김에 몸보신 좀 하시라고 단고기집에 가서 탕을 사다드렸습니다. 올해는 좀 효도 좀 하며 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추운 겨울, 저 붉은 열매는 배고픈 새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닮았다.
▲ 붉은 열매 추운 겨울, 저 붉은 열매는 배고픈 새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닮았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삶에서 노년기는 자연에 비교하면 열매가 숙성된 시기요, 그 안에 들어 있는 씨앗이 잘 영근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젊은 시절 혹은 삶의 정황에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설령 나쁜 것이라도 단단히 그 씨앗이 영글어서 더는 변할 수 없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잘 익은 열매로서의 삶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지요.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건성으로 "그래야지요"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불효자로 살았던 것이 후회되는지 모른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그저 먼 훗날의 이야기처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내가 더는 청년도 아니며, 중년도 한참 끄트머리이고, 이제 곧 '노땅'이라는 소리를 들을 나이가 다 되어간다 생각하니 어머님께 효도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구나 실감이 납니다.

다 타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닮았다.
▲ 연탄재 다 타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닮았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래요.
연탄재처럼 저렇게 온 몸을 다 불사르며 자식새끼들을 보살피신 것이 부모님의 사랑이겠지요. 그리고 그 시절에는 요즘과 달라서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다 쏟아부으면, 나중 노년의 삶은 자식들에게 기대도 되는 것이 당연하던 시기였지요.

그런 시대를 살아오셨으면서도 아직도 자식들에게 기대 살지 않으시려는 부모님, 그것을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살아오다가 이젠 자식들이 커서 하나둘 품을 떠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사랑,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 새해에는 효자노릇을 하고 싶습니다.


태그:#어머니, #필름카메라, #불효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