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로드>는 로드무비이며 동시에 인류에게 경고를 던지고 있다.

<더로드>는 로드무비이며 동시에 인류에게 경고를 던지고 있다. ⓒ 더로드


인구 8만 5천에 불과한 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세이셸공화국은 115개의 작고 예쁜 섬과 매혹적인 바다, 각종 희귀한 동식물의 보고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유명한 관광국이다. 하지만 현재 해수면이 상승, 거친 파도가 국토를 잠식하고 해안가의 주민들은 고지대로 이주하고 있다.

또한 남태평양 중앙의 도서국가인 투발루 역시 같은 현상으로 국토 포기를 선언한 지경이다. '유엔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지난 백년 간 지구의 온도는 0.74도 상승했고, 금세기 안에 최대 4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지구온난화가 빙하를 녹여 급격한 해수면 상승을 불러왔고, 2100년까지 1m 이상 높아져 전 세계인구 10%인 6억 명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이처럼 상황은 심각하고 구체적으로 인류를 옥죄고 있지만, 인류는 당장 우리 집 마당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며 팔짱을 낀다. 때문에 절반의 성공이라고 포장됐지만, 근본적 입장차를 확인한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은 한편 각국의 무지와 이기심을 확인한 자리였던 건 아닐까.

과연 인류종족은 병들어가고 있는 지구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혹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나만은…'이라는 불확실성에 기대고 있진 않을까. 분명한 건 지구는 점점 견디기 힘겨워 하고 병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슈퍼맨이 막을 수 없는, 냉혹하고 암울한 지구의 미래

 <더로드>에는 참혹한 인류미래가 그려져 있다.

<더로드>에는 참혹한 인류미래가 그려져 있다. ⓒ 더로드


 살기 위해 인간사냥을 다니는 인류의 미래모습

살기 위해 인간사냥을 다니는 인류의 미래모습 ⓒ 더로드


영화 <더 로드>(The Road, 1월7일 개봉)는 모든 문명과 환경이 파괴 된 지구의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다. 하지만 파괴자체 과정을 그리거나 혹은 잿더미가 된 사회를 되살려내는 슈퍼맨이 나타나진 않는다. 다만 가혹할 정도로 현실적인 인류미래가 담담하게 그려졌다.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때로 가슴이 뻐근할 지경이다.

미래 어느 시점. 지구는 죽음의 땅이 되어 버렸고, 대부분의 사람 역시 그러하다. 영화에서 그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다만 내내 어두운 하늘과 비, 흔들리는 땅 등으로 자연재해에 의한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역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설명되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 그들은 무작정 남쪽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영화는 솔직하다. 폐허가 된 대지에서 만나는 이들은 더 이상 반가움의 대상이 아니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 아닌 또 다른 인간은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살기 위해 사람을 먹는 사람들, 사람만은 먹지 않지만 이기심만은 어쩔 수 인간.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는 존재가 아닌 경계와 공포다.

그렇게 먹기가 싫거나, 먹힘을 당하기 싫은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죽음은 도피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한 방편이기도 하다. 가혹할 정도로 어둡고 숨쉬기 힘들만큼 탁한 세상. 그렇지만 아버지(비고 모텐슨)는 아들(코디 스밋 맥피)에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그것이 그가 믿고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아버지가 들려주는 삶의 속삭임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버지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버지 ⓒ 더로드


극 중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다. 추위와 배고픔, 희망 없는 길에서의 회한 따위는 그에게 사치일 뿐이다. 하루를 위해 필요한 잠자리와 음식은 늘 고통이지만 품에 잠든 아들의 숨소리가 그를 위로한다.

그리고 험하고 얼어붙은 세상에 아들을 내보내기 위하여 그는 끝없이 대화하고 강해지기를 주문한다. 때문에 마음씨 여린 아들에겐 의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진심이야말로 아들에게 주고갈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인 것이다.

이는 널리 알려진 소설가 이순원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떠올리게도 한다. 대관령 고갯길을 걸으며 아들과 나눈 길과 저 너머의 오래된 집에 대한 이야기들. 아버지가 그 길 위에서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에 대한 솔직한 속내들…. 장르와 국적은 다르지만 낯선 세계를 준비하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면에서 묘하게 닮아있다.

혹은 영화의 원작소설을 쓴 코맥 매카시의 심정일 수도 있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열 살 남짓의 어린 아들이 있다고 한다. 여행 중 아이가 잠든 동안 호텔창가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다 문득 먼 훗날 모든 것이 다 타버린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자 잠든 아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소설이 탄생했다고 한다.

스크린으로 옮아간, 원작의 기괴한 울림

 <더로드>는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관람해도 좋을 영화다.

<더로드>는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관람해도 좋을 영화다. ⓒ 더로드

이 영화에는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하게 등장하던 액션이나 큰 반전은 없다. 때문에 이전 지구멸망을 다룬 영화에서 보이던, SF적 요소나 화려한 CG를 기억했던 이들이라면 기대와 다름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스크린 속 먹먹하고 어두운 세계는 줄곧 목덜미를 갑갑케 하고, 영화 저변에 흐르는 기괴한 분위기는 지금껏 겪지 못했던 숨 막힘과 쿵쾅거림을 전해준다. 이는 빼어난 원작 소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내에도 개봉됐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이기도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는 독특한 인물 묘사, 시적인 문체, 상상 이상을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미국 현대문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작가다.

그가 책에서 그려냈던 길에는 비루한 인류의 미래가, 그곳에 살아남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의 섬뜩함이 서려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 저 길 끝에 아지랑이로 피어나 감동을 전해준다. 바로 그 길이 인간이 걸어야 하고 나아가야 할 길(Road)이다.

책에 이어 영화로 옮겨진 묵직한 울림은 과연 인간들에게 일말의 자각이라도 줄 수 있을까. 혹은 더 늦기 전에 작은 행동이라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예술과 문학이 인류에 전하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 아니 그 전, 인간은 과연 지구에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깨달을 수 있을까.

더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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