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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등줄기 산맥인 태백산맥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소백산맥 줄기에 솟은 속리산(俗離山,1058m). 충청북도 보은군과 괴산군,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최고봉인 천왕봉(1058m)을 중심으로 비로봉, 문수봉, 관음봉, 문장대, 신선대, 입석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 12일, 나는 하루 동안이나마 시끌시끌한 세상에서 벗어나 그저 산행의 즐거움에 젖어 있고 싶은 마음으로 속리산 산행을 나섰다. 오전 8시 10분께 마산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화북분소(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11시께. 속리산을 오르는 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문장대(1054m)를 향해 걸어갔다.

 

화북분소에서 문장대까지의 거리는 3.3km. 포근해진 날씨에 계곡을 타고 경쾌하게 흘러가는 물소리가 순간순간 겨울을 잊게 했다. 이 산에 '속세를 떠난다'는 뜻을 지닌 속리(俗離)라는 이름을 붙인 사연 또한 흥미롭다. 신라의 진표율사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밭 갈던 소들이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불법을 구하는 듯한 소들의 모습을 본 농부들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속세를 버리고 진표율사를 따라 입산수도하였다는 이야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다.

 

낮 12시 20분께 등산객들로 북적북적하는 문장대에 도착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바위가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로 불렸던 곳으로 세조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문장대(文藏臺)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어느 날 꿈에 나타난 귀공자의 말을 듣고 그가 신하들을 데리고 문장대를 찾았다. 이곳의 거대한 바위에 올라서니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명시한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세조가 감동하여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는데, 그 뒤로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는 거다.

 

몇 개의 철계단을 올라 5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로 되어 있는 문장대 위에 서면 속리산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이 빈말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가슴이 탁 트이면서 삶의 걱정거리도 멀리 사라져 갔다. 그래서 그런지 눈길 가는 데마다 마치 무릉도원을 보는 듯했다.

 

산객들이 복작거리는데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생성된 것인지 웅덩이들이 군데군데 패여 있어 사실 편히 쉬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사진만 몇 장 찍고 이내 내려와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아 점심을 먹은 뒤 신선대(1026m)를 향했다. 신선대 휴게소에 이른 시간은 오후 1시 25분께. 진순이라는 개가 그곳에 살고 있다. 개를 좋아해서 그런지 산행 길에 개를 만나게 되면 참 반갑다.

 

그곳서 일행을 만나기로 약속을 해서 당귀차를 마시면서 진순이 얼굴도 더 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얼마 후 일행이 와서 법주사 쪽으로 하산을 같이했다. 10분 정도 걸어갔을까, 멀리 조선 중기의 명장 임경업 장군이 일으켜 세웠다고 전해지는 돌이 보였다.

 

임경업 장군이 속리산에서 6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장군의 기상을 닦고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자신의 체력을 시험하기 위해 경업대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올라가 커다란 돌을 일으켜 세워 보려 했으나 아직도 힘이 모자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체력을 단련하기를 1년, 마침내 7년째 되던 해에 반석 위에 돌을 세우는데 성공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이다. 돌을 세웠다 해서 그곳을 입석대(立石臺)라 부르고 있다.

 

아름다운 문화재가 수두룩한 법주사로

 

오후 3시께 미륵신앙의 요람인 법주사(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에 도착했다. 국보, 보물 등 문화재가 많아 평소 찾고 싶었던 절집이었다. 세월의 흔적처럼 이끼가 내려앉은 벽암대사비(충북 유형문화재 제71호)가 먼저 나를 반겼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세운 것으로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이우가 글씨를 썼다. 보은 출신의 벽암스님은 인조 2년(1624)에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린 법주사를 중창한 분이다.

 

좌우로 낮은 돌담이 있는 금강문을 거쳐서 천왕문으로 들어서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전체 높이가 기단부에서 상륜(相輪)까지 24m 정도 되는 팔상전(국보 제55호)에 이르게 된다. 화순 쌍봉사의 3층 목조탑이 1984년에 화재로 소실된 후로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목조탑이란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법주사 팔상전은 너무나 아름다워 내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팔상전이란 이름은 부처의 일생을 8폭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八相圖)를 모셔 놓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인 석연지(石蓮池, 국보 제64호) 또한 절제된 화려함 속에 우아함이 피어나는 자태로 참으로 아름다웠다. 석연지는 말 그대로 돌로 만든 작은 연못이다. 그 물에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한다.

 

미륵신앙의 중심 도량인 법주사의 성격을 잘 말해 주는 미륵불이 있다.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이 바로 그것으로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높이 6m 정도 되는 큼직한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는 마애불로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촘촘하게 새겼고 둥근 눈썹, 뚜렷한 눈두덩, 꽉 다문 두꺼운 입술에 귀가 어깨까지 길게 내려와 있었다. 특이하게도 반듯하면서 넓은 어깨에 비해 허리가 유난히 잘록하다. 화사한 연꽃 위에 걸터 앉아 있는 그 마애불을 바라보고 있으니 위엄이 철철 넘쳐 나는 왠지 바위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 이외에도 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대웅전(보물 제915호)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과 대웅전 앞에 있는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을 비롯하여 주철로 주조된 대형의 주물 솥인 철확(보물 제1413호), 지대석 위에 큰 향로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독특한 희견보살상(보물 제1417호),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등 법주사에는 굵직한 문화재가 많다.

 

우리 일행은 마산으로 가는 길에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을 보러 갔다.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아래로 처져 있는 가지에 걸리자 자신의 가지를 쳐들어 무사히 지나가게 했다는 유명한 소나무이다. 수령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 이 소나무는 본디 우산을 편 모양새로 몹시 아름다웠다 한다. 그런데1993년 폭풍으로 안타깝게도 한쪽 가지가 부러져 버렸다.

 

자연이 물려준 속리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법주사에 남겨진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속리산 법주사 일원이 올 12월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삶이 무겁게 느껴지면 나는 또 속리산을 찾을 생각이다. 그리고 법주사에 가서 더러운 흙탕물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연꽃의 의미를 곱씹어 보리라.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경부 또는 중부고속도로→청원 J.C→속리산 I.C→화서 I.C→25번 국도→49번 국도→문장대 입구 안내표지판 좌회전→주차장
*(대구,부산)경부고속도로→상주 I.C(중부내륙고속도로)→보은 방면(25번 도로)→휴게소 기점(문장대 방면) 우회전(49번 도로)→화북(문장대 입구 안내표지판) 좌회전→주차장
*(광주)호남고속도로→회덕 분기점(경부고속도로)→옥천 I.C→보은 방면→산외면 방면→장각 방면→용화 방면→(문장대 입구 안내표지판)→주차장 


태그:#속리산문장대, #법주사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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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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