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당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석 점거를 이어가고 '연말'이라는 시한은 다가오는 가운데, 한나라당 쪽에서는 '회의장 변경' 시나리오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예결특위 회의장에서의 의결이 어렵다면 회의장을 바꾸면 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단 국회법에는 회의장소 변경 가능 여부와 절차에 대해 따로 규정해놓은 조항이 없다. 다만, 국회에서 이뤄지는 표결 절차와 관련해 장소를 규정한 것은 국회법 110조와 113조에 나타나는데, 이 조항은 민주당이 "회의장 단독 변경은 의회민주주의의 파괴"라고 주장하는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110조 '표결의 선포' 1항은 "표결할 때에는 의장이 표결할 안건의 제목을 의장석에서 선포하여야 한다"고 규정했고, 113조 '표결결과 선포'는 "표결이 끝났을 때에는 의장은 그 결과를 의장석에서 선포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들은 16대 국회 때인 지난 2002년 3월 7일 개정됐다. 개정 전 110조는 "표결할 때에는 의장이 표결할 안건의 제목을 선언하여야 한다", 113조는 "표결이 끝났을 때에는 의장은 그 결과를 선포한다"였다. 개정되면서 각 조항에 '의장석에서'라는 부분이 추가된 것이다.

 

'민주+자민련'의 잦은 날치기에 한나라당이 앞장서 만든 표결 장소 규정

 

이 개정내용의 출발점은 2001년 11월 27일 오세훈 의원의 대표발의로 여야 79인이 공동발의한 '오세훈 개정안'이다. 110조와 113조에 표결선포와 표결결과선포 장소 관련 내용을 추가한 이 개정안은 당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올라온 여러 국회법 개정안들과 함께 위원장 대안으로 종합돼 여야 합의 처리됐다.

 

국회의장의 당적 이탈과 의원 개인의 자유투표를 보장하는 내용을 함께 담고 있었던 '오세훈 개정안'은 110·113조 개정에 대해 '날치기 처리 방지 제도화'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 개정안은 제안이유에서 "공정한 의사진행과 비정상적인 안건처리 방지"를 강조했다.

 

의장의 표결선포 및 표결결과 선포 규정에 장소를 추가한 것은 표결 장소를 고정해 날치기를 제도적으로 방지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필요가 강하게 반영된 조치였다.

 

15대 국회 때인 1999년 1월 수적으로 열세였던 민주당과 자민련이 합동으로 회의장 문을 걸어잠근 채 '사흘 연속 날치기'라는 초법적 행위를 저지른 바 있고, 16대 국회 문을 열고 난 직후인 2000년 7월에는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지위 보장을 위해 민주당과 자민련이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운영위원회에서 날치기 통과시킨 사례가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으면서도 여당인 '민주당+자민련'의 날치기 가능성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표결 장소를 규정하지 않는다면, 중요법안을 언제 또 기습 날치기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1969년 9월 14일 새벽에 일어난 '3선 개헌안 날치기 통과'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은 야당 의원들을 피해 국회 3별관으로 본회의장을 옮겨 의사봉 대신 주전자 뚜껑을 두드려 '3선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110·113조에 표결 선포 및 표결결과 선포 장소를 추가한 '오세훈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회의장소를 함부로 바꾸지 못하게 만드는 명백한 '날치기 방지 법안'이었고, 한나라당 소속뿐 아니라 날치기를 제도적으로 방지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하던 여당 의원들의 지지까지 얻었다.

 

간사협의로 회의장 변경 가능, 그러나 표결절차 있다면 이동 불가

 

국정감사 때 국회에서만 상임위를 열지 않고 피감기관으로 옮겨서 하거나, 상임위 차원의 공청회도 회의장 협소 등의 이유로 더 넓은 장소로 회의장을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경우는 표결절차가 필요하지 않은 의사일정으로, 국회법 110·113조의 적용을 받지 않고 그나마도 여야 간사 간 협의를 통해 결정된다.

 

가장 최근 상임위 회의장소를 옮겼던 예는 17대 국회 때인 지난 2008년 2월 1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될 때의 일이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상정저지를 위해 통외통위 회의실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김원웅 위원장은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간사단의 협의를 거쳐 회의장을 국회의사당 제3회의장인 245호로 변경해 비준동의안을 상정했다. 이 사례도 표결절차가 필요하지 않아 110·113조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국회법 49조 2항이 "위원장은 위원회의 의사일정과 개회일시를 간사와 협의하여 정한다"고 규정한 것을 들어 회의장소 변경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의사일정처럼 여야 간사 간 협의를 통해, 혹은 여야 간사 간 협의가 여의치 않으면 위원장의 결단으로도 회의장소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저지에 가로막혀 있는 2010년도 예산안의 예결특위 통과는 명백히 표결절차가 수반된 의결행위라는 점에서 분명히 국회법 110조와 113조의 적용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국회법 110조와 113조가 표결 선포와 표결 결과 선포 장소를 명백히 의장석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렇게 법안을 개정하게 된 취지가 '회의장소 변경을 이용한 날치기 표결 방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회의장 변경을 통한 2010년도 예산안 단독 처리'는 불가능해 보인다.

 

16대 국회에서 '오세훈 국회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79인의 명단 중에는 심재철 예결특위 위원장도 끼어 있다. 심 위원장의 행보가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다.


태그:#회의장 변경, #예산안 처리, #국회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