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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7명(송용운·정상용·윤여강·김윤주·박수영·설은주·최혜원)의 선생님이 서울행정법원 법정에 섰습니다. 꼭 1년 전 이날 이 선생님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통보서를 받았습니다.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린 게 징계 사유였습니다. 7명의 선생님은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고, 17일 결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2명의 선생님은 구두로, 5명의 선생님은 최후진술문을 낭독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2009년 마지막 날인 31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사전에 양해를 얻은 4명의 선생님의 최후진술문 전문을 싣습니다. 아이들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염원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편집자말>

재판장님.

돌이켜보면 작년 10월 일제고사 때 저의 행위는 '무엇이 교육인가'에 대한 고민의 연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비교사였던 대학시절, 3년여 공부방에서 미아리텍사스촌 아이들을 가르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있다가도 공부방에만 오면 여느 아이들처럼 신나게 떠들고 자기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고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교단에 나와 아이들과 함께 한 7년, 수업시간 제가 마주했던 6학년 아이들의 얼굴은 배움의 기쁨으로 빛나기보다, 전날 밤늦게까지 이어진 학원공부와 문제풀이 수업에 이미 지치고 지루해하는 표정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교사는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하고, 학교는 어떤 공간이 되어야할까요? 그간의 경험은 저에게 '교육이란 자기 스스로를 긍정하게 하고, 순수한 배움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학교는 그러한 교육이 차별 없이 마음껏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평가 역시 이와 같은 목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생을 밤 10시까지 공부시키는 학교가 생겼습니다

 

어떤 학생이라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사의 노력이 있은 후에, 조심스럽게 행해져야 할 부분이 평가입니다. 평가 결과로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인정하되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더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노력하여 앎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평가의 목적입니다.

 

교사로서 그동안 가져왔던 교육에 대한 고민 속에서, 갑자기 닥친 일제고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나 당혹스럽고 우려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우려스러웠는지는, 작년 일제고사가 처음 실시되고 지금까지 벌어진 학교현장의 참담한 뉴스들을 보셨다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초등학생인데 밤 10시까지 문제풀이 공부를 시키는 학교가 생겼습니다. 시험을 잘 본 아이들에게 어떤 교장 선생님은 직접 교장실에서 용돈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반면 학교평균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특수반 입급과 전학을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너무나 슬프게도 이 아이들 대부분은 집도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교육부는 일제고사 실시로 부진아를 가려내 보정지도와 맞춤개별화 교육을 하겠다고 했지만, 학교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은 이러합니다. 관리 감독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적으로 무한경쟁을 유발시키는 일제고사, 그 자체가 가진 문제입니다.

 

평범한 교사로 아이들 곁에서 늙고 싶습니다

 

재판장님.

일제고사에 대한 그동안의 고민들은 교사로서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의 명령이나 지침이 아닌, 매일을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 교사로서의 소신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제 행위에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저의 해직으로 인해 많이 걱정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년 우리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일제고사 응시여부를 선택하는 것을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일제식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었고 수학경시대회도 개인의 선택에 의해 응시여부가 정해졌기에, 갑자기 시행되는 전국일제고사에 자신들이 선택권을 가지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겨울방학을 일주일 앞두고, 이 일로 담임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아야 했던 아이들은 너무나도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뇌물을 받아 사리사욕을 취한 것도 아니고 성적을 조작한 것도 아닌데, 단지 정부시책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벌어진 참담한 광경을 목도한 우리 아이들이 학교와 사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 지금 비록 학교 밖에 있지만 아이들 걱정이 많이 됩니다.

 

'우리들 때문에 선생님이 떠나시게 됐습니다. 아니, 세상이 우리들과 선생님을 갈라놓았습니다'라고 쓴 우리반 영호의 글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일 뿐입니다.

 

재판장님.

지금도 아이들은 찾아와서 선생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묻곤 합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만 하던 우리 선생님이 무얼 해서 밥을 먹고 사는지, 그게 가장 걱정이 되나 봅니다. 그런 아이들이 반가워 제가 사주는 한끼 밥도 선생님께 부담이 될까 걱정스러워 하는 어른스런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아이들 마음처럼,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행복해 하는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여기 해직된 일곱 선생님들 모두가 마찬가지실 것입니다. 평생을 교단에서 평범한 교사로 아이들 곁에서 늙겠다고 다짐했던 첫 발령 때의 약속을 지킬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상 진술을 마치겠습니다. 


태그:#해직교사, #최후진술문, #설은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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