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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던 지난 10일에 여성문화유산연구회가 주관한 '여성의 눈으로 서울을 걷자' 답사는 '명동 성당 예수상' 앞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의 답사코스는 정동 일대로 정동 길에 남아있는 근대의 흔적을 만나보되 격동기 근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자는 것이다.

명동성당은 유명한 곳이긴 해도 성당 안까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어리버리한 태도로 예수상을 찾는데 바로 입구에 아주 단아하고 조촐해 보이는 예수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다. 우람하고 커다란 조각상이 아니라 우선 마음이 놓였다.

안내를 맡았던 수녀님의 조근 조근한 말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 안내를 맡았던 수녀님의 조근 조근한 말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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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일행은 성당의 본관 뒤쪽에 있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샬트르 수녀회의 프랑스 수녀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게 된 시기는 1888년이었다. 우리나라에 먼저 들어와 있던 블랑 주교가 최초의 고아원을 세우고 그녀들에게 도와 줄 것을 간청했다고 한다.

4명의 수녀들은 배를 타고 제물포를 통해서 들어왔는데 한양까지 들어올 때는 가마를 타고 왔단다. 당시 사람들이 외국 여성이 임금이 사는 한양에 들어온 다는 것은 부정 타는 일이라 생각해서, 신분을 감추기 위해 7월 삼복더위에 네모 상자 안에 갇혀서 정동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수녀들은 프랑스에서 여기까지 49일간의 배로 온 배멀미보다 가마 멀미가 더 힘들었다고 회상했단다.

프랑스 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사진첩에서 발견된 자료. 우리나라 사회복지 사진으로는 가장 오래된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 수녀님과 아이들 프랑스 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사진첩에서 발견된 자료. 우리나라 사회복지 사진으로는 가장 오래된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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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자리에는 당시 고아원이 있어서 수녀들은 지금의 정동근린공원 안에 있던 정동 사제관으로 가서 짐을 풀었다고 한다. 당시의 수녀들은 선교활동보다는 우선 교육, 의료, 보육활동을 비롯한 사회복지 활동을 시작했다.

사제관은 러시아 공사관과 담을 맞대고 있었다. 러시아 공사관에는 손탁이라는 독일 여성이 궁중출입을 하면서 외국인을 접대하는 요리를 맡고 있었고, 나중에 고종에게서 지금의 이화여고 정문 입구 쪽으로 추정되는 곳의 땅을 하사받아서 호텔을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다고 하는 '손탁호텔'이다.

그녀는 수녀들과 친해졌고, 고아원을 운영하며 자급자족해야 했던 수녀들에게 공사관의 빨랫감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수를 놓은 것으로 바자회도 열어주고, 고종이 주관하는 연회에서 음식이 남으면 수녀들을 통해서 고아원에 전했다고 한다.

박물관은 당시의 손탁 여인을 '은인'으로 묘사해 놓고 있다. 샬트르 수녀회의 수녀들이 입국한 지 일주일 만에 순교자들의 후손이었던 다섯 명의 처녀들이 입회하여 한국인 첫 수녀들이 되었다고 한다. 자료로 전시되고 있는 일부 사진들은 당시 프랑스 공사로 있던, 신경숙 소설의 <리진>에 나오는, 바로 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사진첩이다.

당시 수녀회와 고아원의 은인으로 묘사되고 있는 손탁 여인과 손탁호텔 사진
▲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 당시 수녀회와 고아원의 은인으로 묘사되고 있는 손탁 여인과 손탁호텔 사진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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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여행자님들"로 시작된 안젤라 수녀님의 조근 조근한 설명은 근대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수녀들이 살고 있는 곳은 일반인들이 들여다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수녀회 역사관을 세웠고, 수녀들의 삶을 아주 조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는 말을 한다. 이곳은 언제든지 와서 둘러보고 사진도 찍으란다.

신경숙 소설 <리진> 속에 나오는 블랑 주교, 콜랭 공사, 고아원의 역사가 근대의 기록이 되어 그곳에 있었다. 소설 속의 추상적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 속에 정말 존재하는 시대로 다가왔다. 순교의 시간을 찾아 이 땅에 온 수녀들의 숭고한 정신은 종교를 떠나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여행 하십시오. 정동길은 비오는 날에도 돌아보기 좋은 길이랍니다."

안젤라 수녀의 인사를 받으며 성당을 나와서 롯데백화점 쪽으로 걸었다. 길을 건너서 롯데백화점을 오른 쪽에 두고 길을 걷다보면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이 나온다. 호텔의 정문을 가로질러 나가면 호텔 뒤편에 '환구단'이 꼭 호텔의 후원처럼 들어앉아 있다.

환궁우에서 바라다 보이는 대문과 호텔 커피숍, 꼭 호텔의 후원 같은 느낌이다.
▲ 환구단 석조 대문 환궁우에서 바라다 보이는 대문과 호텔 커피숍, 꼭 호텔의 후원 같은 느낌이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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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 고려 때부터 시행했었고 설치와 폐지를 되풀이하다가 조선 세조 때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 뒤 고종 때 와서 다시 설치가 되었고,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면서 다시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고종은 이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일제 때 이곳에 조선호텔이 들어서면서 일부가 헐리고 정문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지금은 3층 8각 정자 '황궁우'와 '돌북', '석조 대문'만이 남아있다. 석조 대문의 계단에 있는 답보에는 용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바로 황제의 나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용무늬인데 덕수궁과 이곳에만 있다고 한다.

용무늬 답보와 석조 대문 사이로 보이는 3층 8각의 환궁우
▲ 환구단 용무늬 답보와 석조 대문 사이로 보이는 3층 8각의 환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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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지으면서 철거한 환구단 정문은 40여년을 우이동 어느 곳에 있었고 한다. 그 정문을 옮겨와 복원시켜놓았다. 정문은 꽃단장하고 돌아왔으나 시골처녀가 도시처녀가 되어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그곳에 어울리지를 못하고 있었다. 너무 생뚱맞도록 단청색이 화려해 보여 환궁우 하고도 어울리지 않았고, 주변의 현대식 건물하고는 더더욱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노는 듯했다. 이제 제자리로 찾아왔으니 조만간 어울리는 풍경이 되어 가겠지. 정문 앞에는 시청광장이 있고, 맞은편 길 건너에 덕수궁 대한문이 보인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정동길이 이어지고 그 어름에 정동제일교회가 나온다. 1885년 아펜 젤러 목사가 한옥을 구입하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 정동교회의 효시란다. 지금 남아 있는 붉은 색 교회 건물은 명동성당과 함께 당시로서는 혁신적 건축양식이라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근대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선교활동보다는 의료와 교육, 봉사 활동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아펜 젤러 목사가 세웠다는 정동제일교회. 당시 명동성당과 함께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한다.
▲ 정동제일교회 아펜 젤러 목사가 세웠다는 정동제일교회. 당시 명동성당과 함께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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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지나쳐 계속 정동길을 걸어 오르면 이화여고가 나온다. 정문으로 들어가니 입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손탁호텔터' 표지석이 보인다. 학교 안 입구에 있는 이화 박물관옆 길을 걸어 들어가면 왼쪽으로 보이는 공터에 '유관순 열사 빨래터'라는 우물이 나오고 계속 그 길을 따라 걸어서 작은 언덕을 올라 내려가면 유관순 기념관 건물이 나온다. 열사의 동상도 보인다. 기념관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니 로비에 열사가 활동했던 당시의 사진들이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화여고 안에 세워져 있는 유관순 열사 동상. 투박한 모습의 얼굴이 오히려 안도감을 준다.
▲ 유관순 열사 동상 이화여고 안에 세워져 있는 유관순 열사 동상. 투박한 모습의 얼굴이 오히려 안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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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열사 기념관 전시실에는 환구단의 옛 모습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 환구단 옛모습 유관순열사 기념관 전시실에는 환구단의 옛 모습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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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의 초상에 대한 논란이 있단다. 원래는 얼굴이 투덕투덕하지 않고 단아한 상인데 고문에 의해 얼굴이 부어서 무섭게 보이는 것이란다. '열사가 그런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후손들을 보면서 잘한다고 칭찬하실까?' 뭐 그런 객쩍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열사를 기억해야 할 우리들은 얼굴이 아니라 그분의 행동하는 양심적 지식인의 태도일 것이다.

정동공원 안에 있는 당시 수도원 터, 프랑스를 떠나온 수녀들이 이곳에 처음으로 둥지를 틀었다.
▲ 정동근린공원 정동공원 안에 있는 당시 수도원 터, 프랑스를 떠나온 수녀들이 이곳에 처음으로 둥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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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고를 나와서 길을 건너 앞의 예원학교 담을 끼고 조금만 올라가면 러시아 공사관이 있었던 정동근린공원이 나온다. 그곳은 프랑스에서 떠나온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들이 낯선 한국 땅에 발을 들이고 처음 둥지를 튼 곳이기도 하다. 오늘의 답사는 이곳에서 마무리되었다.

근대 태동의 산실이라 할 정동길에서는 여성들의 발자취를 조금은 만난 느낌이다. 이국땅에서 순교자의 삶을 산 수녀님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 놓은 유관순 열사, 격동의 근대를 치열하게 살았을 또 다른 여성 선각자들에게 머리 숙여 지는 시간들이었다.


태그:#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역사박물관, #유관순기념관, #정동길, #정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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