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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타박을 많이 받는다. 나 역시 타박 받는 사람 중 하나다. 올해는 더 책을 읽지 않았다. 그래도 몇 권 읽은 책이 있어 무슨 책을 읽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이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련된 책은 하반기에 쏟아져 나왔다고 할 정도 많이 나왔다.  두 분 책을 중심으로 올해 읽었던 책 10권을 뽑았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오연호 글 ㅣ 오마이뉴스 펴냄
 
이 책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을 몇 달 앞 둔 2007년 9월과 10월에 이루어진 3번의 인터뷰 한 것을 엮어 펴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 되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600년 이상 이 땅 지배자들로 군림하면서'권력에 복종하라' '너 혼자서 무엇을 하겠느냐' '달걀로 바위치기'일 뿐이라고 세뇌했던 정치권력과 언론권력, 경제권력 곧 수구권력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노무현은 자신도 한 때는 권력자였지만 바로 그들과 한 판 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것은 지금 현재 정치권력을 갖고 있는 자와 정치권력을 내려놓고 시민권력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의 한판 싸움이었습니다. 정치권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현직 대통령 이명박과 시민권력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권력을 만들고자 했던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싸움이었습니다."(35쪽) 
 
노무현은 600년 이상을 지배했던 비겁한 교훈을 청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그럼 시민권력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노무현 죽음 앞에 슬퍼했고, 슬퍼하는 당신은 각성하는 시민권력인가? 600년 비겁한 교훈을 끝내려는 노무현의 시도에 함께 할 수 있는가? 이제 슬픔을 가슴에 묻고, 각성하는 시민이 되라! 그렇지 않으면 슬퍼하는 그 눈물은 아무런 의미없는 신세 한탄일 뿐이다.  
 
신세 한탄은 600년 이상 이 땅을 지배한 권력이 비겁하게 세뇌시킨 교훈의 결과이다. 그러니 각성하라! 깨어있는 시민이 되라. "우리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어" 시민이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노무현 재단 엮음 ㅣ 학고재 펴냄 ㅣ 48,000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에서 내려오자 바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전직 대통령'보다는 '농부 노무현' 또는 '사람 노무현'으로 살았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권세보다는 농부와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를 많은 사람들을 따랐다. 권력을 내려놓다니 어떻게 가능했을까? '현직'이 아니기 때문에? 아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권력을 자기 손아귀에 쥐는 것이 아니라 인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권력은 대통령이 아니라 인민이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왕의 권력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분배돼서 왕이 누리던 것을 일반 국민들이 누리게 되는 사회, 그것이 역사 발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소위 권력이나 특권이 일반 국민들에게 퍼져나가는 과정, 그것이 역사 발전이다.(2006년 2얼 26일 출입기자오찬, 176쪽)
 
인민에게 권력을 내주는 일, 그것이 역사 발전이라는 그의 철학에 감동할 수밖에 없다. 권력을 쥔 자가 그 권력을 인민에게 내주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권력이 아닌 사람을 택한 노무현과 그 권력이 매몰되어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참으로 비교된다. 그럼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시민들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를 알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소통이다. 
 
사람은 소통하고 살아야 한다. 지배하는 사람도 있고 지배받는 사람도 있는데, 내 희망은 이 차이가 작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 사이에 가장 큰 단절은 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 관계가 다르고 따로 사는 거다. 이런 게 오래가면 권력을 가진 사람은 잘 살겠지만 일반 국민들은 살기가 어려워진다. 권력은 높아지고 소통은 안 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자와 국민이 소통이 돼야 한다.(2006년 8월 28일 경복궁 신무문 · 잡옥채 개방행사, 192쪽)
 

<나의 길 나의 사상> 김대중 지음 ㅣ 한길사 펴냄 ㅣ 9,000원
 
통일 3원칙과 3단계 통일 방안을 묶은 책인 <나의 길 나의 사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초반부터 민족통일문제를 줄기차게 모색해온 그의 이론과 정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섭렵한 지식은 책상머리에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삶의 정황과 역사 현장에서 치열하게 연구한 결과물임을 독자들은 알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반도 통일을 단순히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읽고 있었으며 그 정세에 따라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통일이 민족 염원이라면 이루어져야 하는데 왜 해방 49년, 분단 46년(책이 나온 1994년 기준)이 되었는데도 통일에 대한 진척이 없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강만길 교수와 나눈 대담에서 우리 민족사에서 동학혁명과 갑신정변 같은 예를 들면서 "우리 민족이 개혁을 꺼리고 두려워하는 민족성을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아직까지 개혁을 거부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큰소리치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일제 때의 친일파들이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통탄하고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입니다. 아무리 관용을 했다하더라도 가장 악질적인 자들만은 배제해야 민족정기가 서고 민주주의가 자리잡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발붙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개혁에 열의가 없음으로써 해서 그들이 계속 특권의 자리를 누릴 수 있도록 용납했기 때문입니다."(30쪽)
 
15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도 적용 가능한 책이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만화 김대중 1·2·3> 백무현 글 · 그림 ㅣ 시대의 창 펴냄 ㅣ 각권 11,800원

 

많은 사람들은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매도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사람'이었다. '빨갱이'와 '선생님'이라는 양극단으로 평가받았던 그. 백무현은 김대중이 살아온 정치적 삶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 '비판적' 지지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가장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동물의 왕국>이라는 사실과, 귀여운 강아지를 혼낸 것에 단단히 화가 나 국회에서 집으로 득달같이 달려와 아내 이희호 여사에게 따졌다"는 일화를 듣고 '인간 김대중'을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동물을 사랑한 김대중이라면 어찌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겠는가. 가난한 자들, 여성들을 사랑했다. 용산철거민 참사를 보면서 가슴이 아렸다고 말했다. 그 사랑은 자기를 좋아한 사람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빨갱이'로 매도한 자들까지, 정적까지 용서한 휴머니스트였다고 백무현은 <만화 김대중>에서 그리고 있다.

 

<독재자들> 리처드 오버리 지음 ㅣ 조행복 옮김 ㅣ 교양인 펴냄 ㅣ 4만5000원

 

이 책은 20세기 독재자들 중 가장 파괴적이라고 할 있는 스탈린과 히틀러를 비교분석한 책으로 이들을 무조건 나쁘다는 식이 아니라 독재자이면서 스탈린은 2차대전 승자였고, 히틀러는 패자였는데 그 이유를 두 사람의 통치 스타일을 통해 분석했다.

 

리처드 오버리는 스탈린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히틀러는 자기 역량을 과신하고, 인종편견으로 인하여 결국 2차대전에서 승자와 패자로 갈랐다고 분석하고 있다.

 

둘은 1941년 동부전선에서 맞붙었다. 동부전선에서 소련은 전사자 867만명을 포함 사상자가 1140여만, 독일은 600만의 병력을 잃었고 결국 스탈린이 이겼다. 2차대전 발발 당시 스탈린은 경제력이나 무기 수준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히틀러보다 뒤떨어졌다. 그럼 왜 히틀러는 졌을까? 그 중 하나를 살펴보자. 오버리는 전쟁 최고사령관인 히틀러와 스탈린의 업무집행 방식 차이가 승패를 가른 요인으로 꼽는다.  

 

"스탈린은 국방위원회와 최고사령부(스타프카) 활동을 크레믈 사령부로 통합하였다. 스탈린은 정기적으로 최고위급 해결사들을 파견해 전쟁수행 노력을 감시했고 직접 보고받았고, 장군이나 관료들에게 직접 전화하여 지시를 내리거나 임무수행을 독려했다.(738쪽)

 

스탈린은 소련군 최고 명령권자이지만 자신이 군사전략가로서 한계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 같은 뛰어난 군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히틀러는 점점 더 자신이 군사전략가로 탁월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내가 군사적인 문제 온 정신을 쏟는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 그 문제에서 나보다 더 잘 해낼 사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741쪽) 

 

군사전략가보다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하였으니 그는 "중요한 결정은 전부" 자신이 직접 내리겠다고 고집까지 했으며, 지휘관을 신뢰할 수 없었던 그는 전쟁 막바지 가장 작은 단위 부대 배치까지 직접 명령했다. 작전상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던 히틀러가 이렇게 고집을 피웠으니 지휘관을 신뢰했던 스탈린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독재자들>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오버리가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역사가의 책임은 두 사람 중 누가 더 악하고 더 정신이 나갔는지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두 독재체제로 하여금 그토록 엄청난 규모의 살인을 저지르게 한, 서로 다른 역사적 과정과 정신 상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29쪽)

 

<미국의 마지막 기회> Z. 브레진스키 지음 ㅣ 김석원 옮김 ㅣ삼인 펴냄 ㅣ1만2000원

 

많은 사람들은 미국은 소련제국이 무너진 이후 세계를 지배했던 유일한 제국에서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원로 외교 전략가이자 <거대한 체스판> <제국의 선택>의 저자 Z.브레진스키가 쓴 <미국의 마지막 기회>(Second Chance)도 이에 포함된다.

 

Z. 브레진스키는 지미 카터 정부 때 국가안보 보좌관을 역임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을 비밀리에 지원했던 인물이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마지막 기회>에서 소련제국 몰락 이후 미국은 글로벌 리더가 되었지만 기회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뽑았던 세명의 대통령들이 제국을 위기로 몰았다고 지적한다.

 

그가 <마지막 기회>를 쓴 때가 2007년 초였다. 제국을 위기에서 구할 영민한 글로벌 리더를 원하는데 그가 바로 버락 오바마로 판단했고, 그를 지지했으며 바람대로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이 영민한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아직까지 미국에 대해 남아 있는 선의를 활용해야 한다.  

 

"세계 대부분이 아직도 전 지구적으로 지도적 위치에 있기를 기대하는 미국의 모습은, 자신의 책임감을 인식하고, 대통령의 수사가 신중하며, 인류가 가진 생활 조건의 복잡성에 대해 민감하고, 대외적인 관계에서 마찰을 일으키기보다는 합의를 추구하는 모습이다."(222쪽) 

 

결국 미국이 마지막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우리는 이제 제국이고, 우리가 행동할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일방주의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이 중심이 된 '대서양공동체'를 확립해야 한다고 브레진스키는 지적한다. 이렇게 하지 못하면 미국은 탈제국주의 시대 상황 속에서 오만하게 제국적 것으로 보편적으로 간주되고, 탈식민주의 시대에 식민주의라는 진창에 빠지면서 초강대국 미국의 위기는 구제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라 브레진스키는 단언한다.

 

그러나 이 영민한 글로벌 리더 오바마는 브레진스키 바람대로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을 증파에 동의했고,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코펜하겐 기후협약 과정에서 미국이 취하는 행보를 보면 인류와 지구보다는 미국 이익을 더 중시하고 있다. 오바마에게 대한 기대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지만 아직은 믿고 싶다.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 귄터 바루디오 지음 ㅣ 최은아 조우호 정향균 옮김 ㅣ 뿌리와 이파리 펴냄 ㅣ 25,000원

 

2003년 이라크 파병 논란이 한창일 때 파병을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운 논리 하나는 '석유자원' 확보였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파병 찬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논리였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석유를 얻기 위해 이라크 침략 전쟁에 뛰어들었다.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차지하려는 석유가 세계의 역사와 문화, 정치와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끼쳐왔는지 그 과정을 역동성 있게 담은 책 한 권이 있다. 석유기술자로 훈련을 받았고, 대학에서는 스칸디나비아 문학, 동유럽 역사를 공부하면서 <절대주의와 계몽주의 시대, 1648~1779>, <독일전쟁 1618~1648>, <열광에 빠져 있는 파리>를 썼던 '귄터 바루디오'가 지은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이다.

 

바루디오는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에서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전쟁의 이면에서 석유를 둘러싼 세계 강국들의 첨예한 대립, 석유 태동기부터 첨단생명과학 산업 주역으로 발돋움, 석유산업의 대규모 합병추세와 주유소에서 벌어지는 가격전쟁을 흥미있게 기술하여 읽는 이들에게 700쪽이 넘는 책을 쉬 덮지 못하게 만든다.  

 

악마의 눈물인 석유. 하지만 석유 자체가 악마의 눈물은 아니다. 석유를 이용한 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용함므로써 악마의 눈물이었다. 악마의 눈물 주체는 석유가 아니라 석유를 이용한 사람, 곧 강대국이었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 석유를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슐린, 형형색색의 염료, 첨단화학 제품 따위 생명과학을 위한 다양한 재료로 활용하고, 석유를 채굴하여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환경친화적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생명의 눈물'이 될 수 있다.

 

<조선국왕의 일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ㅣ 글항이라 펴냄 ㅣ 19,800원

 

조선 '국왕'은 삼권을 손아귀에 쥔 절대권력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임금을 '지존'이라 칭했다. 그런데 왕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라를 경영할 능력과 자질이 없는데도 지존이 된다면 조선은 생존 가능성을 위협받게 된다. 신분만 지존이 아니라 능력과 자질에서도 지존이 되어야 했다. '조선'과 '국왕'은 곧 하나로 운명 공동체였던 셈이다.  

 

조선과 하나였던 조선국왕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역사학, 문학, 국악, 풍수지리학 따위를 전공한 한국학 전문가들이 섬세한 서술과 화려한 도판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낸 <조선국왕의 일생>은 멀게만 느껴졌던 조선국왕을 가까이서 만나게 한다.

 

태어나는 것도 쉽게 태어날 수 없었던 국왕은 태어난 순간부터 엄청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세자 때부터 보양청 교육, 강양청 교육, 서연(書筵)이란 교육 과정을 거쳤다.  맹자는 왕은 덕으로써 인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었다. 즉 왕이 절대권력을 가졌지만 힘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이다. 이 덕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배움'이다. '배움' 그것은 곧 조선 국왕이 평생을 해야 할 의무요 덕목이었다. 조선국왕은 입법과 사법, 행정권까지 모든 업무를 담당할 뿐만 아니라 "신과 인간의 두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지음 | 한겨레 사진부 사진 | 한겨레출판사 | 13,000원

 

사람에게 '망각' 없다면 어떤 삶일까? 행복한 삶은 아닐 것이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을 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말처럼 망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편 중 하나다. 하지만 어떤 경험은 망각보다는 '기억'으로 영원히 자리하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든다.  

 

지난해 봄부터 여름까지 100여 일간 켜졌던 '촛불'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우리의 경험이다. 이 경험을 망각이 아니라 영원한 기억으로 되살리기 위한 책이 나왔다. <한겨레> 사진부 기자들이 찍은 10만 컷 사진 중 가려뽑고 뽑은 115컷과 촛불시민으로 함께 했던 11명이 자신이 경험한 촛불 영원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펴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다. 

 

책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직후의 경북 경주 근교 우시장의 한적한 풍경으로 시작하여 7월 12일 밤 비오는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가족의 활짝 피어난 웃음으로 맺음하하면서 전조․파도․직접․폭발․광장․민심․진화․역진․공명․계속으로 나누어 각 국면을 한 사람씩 써 내려갔다. 책상과 머리에서 나온 사진과 글들이 아니기에 사진 한 장, 글 한 편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지난 해 그 뜨거웠던 경험을 망각이 아니라 기억으로 다시 부활시키는 경험을 한다. 

 

또한 115 컷 사진뿐만 아니라 107쪽-110쪽 박재동 화백의 촛불집회 현장 스케치와 캐리커처는 집회 기간 내내 넘쳐났던 촛불소녀와 시민, 386과 유모차 부대의 창조적 유희, 생명권을 되찾기 위한 저항을 사진과 다른 시선으로 기억하게 한다.  촛불은 계속 말해야 한다. "대한민국 주권은 바로 우리, 국민으로터 나온다.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고 똑바로 국정을 운영하라!"는 외침을 끝임없이 보내야 한다.

 

<조선의 논객들 대한민국을 말하다> 서디창 우리역사모임 지음 ㅣ 왕의서재 펴냄 ㅣ 13,000원

 

"마지막 당부는 투표를 하지 않고 욕하지 말란 것이오.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잘못된 것만을 책하는 것은 바로 '누워 침 뱉기'라는 것을 알아야 하오. 뽑을 사람이 없어 뽑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뽑힌 자들이 나라를 재단하오. 그 재단하는 데 있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단 말이오. 그들의 행보는 우리의 삶과 직결돼 있음을 잊지 마시오. 그들이 세상을 망쳤다 탓하지 마오. 그런 자들을 뽑은 자신을 탓하시오."

 

조선말기 환곡(還穀), 포흠(逋欠) 따위 각종 폐단을 지적하며, 1862년 진주농민항쟁을 일으킨 유계춘이 한 말이다. 정치인을 탓하지 말고, 인민 스스로 주체가 되라는 유계춘의 말은 2009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심장을 향한 도전이다.

 

조선시대 논객 11명이 후손들 나라인 대한민국을 논하는 데 11명에는 '변절자'로 찍혀버린 신숙주, 사림 거두로 개혁의 상징인 정암 조광조, 허난설헌과 허균, 서얼출신 실학자 박제가, 진주농민항쟁 주모자 유계춘, 연암 박지원, 기축옥사 때 희생당한 '공화주의자' 정여립, 서민 구제에 앞장선 토정 이지함, 중인 출신의 개화파 선구자 오경석이 있다. 그들이 모여 토론한 내용을 담은 책이 <조선의 논객들 대한민국을 말하다>이다.

 

이들 중 민주공화정을 세우고자 했던 정여립이 말한 "민중이 이 땅의 주인이 되는 대동세상을 꿈꾸었다"면서 "기축옥사가 성공했다면 광주민주화항쟁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외침이 마음에 와닿는다.

 

또 그는 "언론이 바로 서지 못 하면 억울하게 죽어갈 이들이 늘어날 것라"면서 "언론이란, 역사를 기록한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어떤 지도자들은 "조선보다 더한" 언론 통제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허균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창조적 상상력은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 참으로 딱합니다. 창조적 상상력을 만들어낼 만한 구조가 아닙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말살하는 교육에다 상상력의 근저가 될 수 있는 독서를 하는 이가 거의 없으니 말입니다."(261쪽)

 

올해의 책을 뽑다보니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에 관련된 책이 많다. 그 만큼 두 분이 남기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탈린과 히틀러에 관한 책, 춧불, 조선논객이 대한민국을 말하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독재와 민주주의에 관련된 책이 많다. 내년에는 어떤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통령 노무현과 기자 오연호의 3일간 심층 대화, 개정판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7)


태그:#책, #김대중, #노무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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