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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 책겉그림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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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많은 국민들은 헌법재판소에 그 눈을 두었다.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판결할지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가결한 탄핵안을 기각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이 명백하게 국익을 해한 경우나, 다른 헌법기관이 갖고 있는 권한을 침해한 경우나, 국가조직을 이용한 국민 탄압이나 뇌물수수 등 부정부패를 하지 않았다는 논리 때문이다.

그 뒤 국민들 눈이 또 한 번 헌법재판소에 쏠린 적이 있다. 행정수도이전에 관한 판결주문 때였다. 그 때에는 헌법재판소가 헌법조항에도 없는 '관습헌법'을 들먹이며 행정수도이전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헌법개정이라는 항목에 넣도록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논리라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하고 있다.

그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게 있다면, 그 전까지와는 달리 헌법재판소가 가진 위상이 새로워졌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시절 전까지만 해도 헌법재판소는 실체는 존재했지만 그 권한은 드러내지 못했다. 이른바 대법원과 검찰 조직에 그 빛이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헌법재판소가 실체를 드러내며 대한민국 최고기관으로 급부상한 것은 바로 참여정부 출범 뒤였다.

이범준이 쓴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궁리 펴냄)는 1988년에 출범한 헌법재판소가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들여다보게 해 준다. 더욱이 진실에 관해 오랫동안 논란이 됐던 5·18 불기소 헌법소원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관한 과정들을 공개한 내용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토대로 하면, 1988년 9월 1일 출범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개인 사무실도 없는 정동 단칸방에서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곳에서 하루 종일 한 일이란 한 방에 모여 TV를 보거나 신문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 뒤 헌법재판소는 나름대로 지위와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대법원이 위치한 서초동 법조타운이나 세종로 정부청사 둘레를 떠나 종로구 재동에다 청사를 짓게 된다. 더욱이 청와대와 줄다리기 끝에 헌법재판소 소장 공관자리를 지켜낸 것도 눈물겨운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제4기를 맞이한 헌법재판소에 대해서 이범준은 각각이 지닌 특성을 밝혀준다. 이른바 제1기 재판소는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정권이 만든 각종 국가주의 악법들을 처단하였던 동력 때문에 치열한 토론이 오고갔고, 제 2기 재판소는 5·18불기소 등 주요 사건을 미숙하게 처리하는 과정 속에서 토론이 치열하지 못했는데, 그 주된 요인은 재판관들 성향이 비슷했던 까닭이라 한다.

그런 비판점을 안고 출범한 3기 재판소는 예상 외로 노무현 정부 출범으로 인해 사법적극주의를 이끌어 내 큰 활약을 펼쳤다고 한다. 참여정부는 그만큼 헌법의식이 결여된 여러 관행들과 충돌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더 나은 민주화를 위해 해산하는 고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닻을 올린 제 4기 재판소는 오늘날 도마 위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미디어법을 판결주문한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이 사건 결정문에는 소수 의견이 없다. 5·18 불기소 헌법 소원 이후로 당사가 소취하해 사건이 종료되는 경우에도 써오던 소수의견이 없다. 그래서 몇 명이 탄핵에 찬성하고 몇 명이 반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헌재법 34조 1항과 36조 3항이 결합하면서 탄핵 사건에서는 공개가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났다."(349쪽)

이른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누가 찬성하고 반대했는지, 그리고 소수의견이 없다는 것에 이범준이 궁금증을 품은 것이다. 그는 그와 같은 합리적 의심을 풀기 위해 취재에 취재를 거듭했고, 그 결과 권성·김영일·이상경 3명이 탄핵안에 찬성을 했는데 소수의견을 공개하는 문제에는 이상경은 빠지고 권성과 김영일만 의견을 개진했던 것으로 나온다. 물론 김영일은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은 까닭에 선고시각을 넘긴 그 시각까지도 자기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이범준은 이 책이 대한민국 법조사 테트랄로지(tetralogy) 제 1부라고 전한다. 이를 위해 자신이 근무하던 신문사도 그만둔 채 지난 6개월 동안 신문·잡지·논문·영상·속기록·회의록 등 1만 장 분량을 검토했고, 재판관과 연구관과 청와대와 관련자들을 100시간 가량 인터뷰했다고 하는데, 곧이어 그는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 메이킹 노트>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

이범준 지음, 궁리(2009)


태그:#김영일,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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