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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선물한 3권의 책 속에 <세 잔의 차(Three cups of tea)>가 눈에 띤다. 얼핏 훝어 본 내용은 다큐멘터리인 데다, 제 3의 극지인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고봉 14좌 중 두 번째로 높고, 등반 난이도는 가장 높다는 K2(8611m)에 얽힌 얘기이다. 조난당한 주인공이 히말라야 기슭 원주민들에게 생명을 구하는 은혜를 입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내용이다.

 

매일 아침 수행 겸 건강을 위해 드리는 108배의 36번째 절의 의미는 '작은 은혜라도 반드시 갚을 것을 다짐하는 마음을 재확인 하는 것이다'. '은혜를 갚는 것'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다. 그러한 내용이 뉴욕타임지의 베스트셀러가 될 이유도, 그것도 1위가 될 만한 소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모텐슨이 쓴 <세 잔의 차>는 2006년 출간된 이 후 연속하여 82주간 연속하여 베스트 1위를 지켰으며 95주 이상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등반가 모텐슨

 

미네소타 출신인 그레그 모텐슨은 본래 강한 순수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루터교 선교사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탄자니아에서 보낸다.

 

적응하기 힘든 열대의 기후 때문에 어린 누이동생이 3살일 때 뇌막염에 걸렸다. 동생은 병이 나은 후에도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다 23살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여행을 앞두고 심한 발작을 일으켜 세상을 떠난다.

 

암벽전문가이자 고산등반가인 모텐슨은 1993년 미국의 K2 등산팀에 합류하여 등반길에 오른다. 일반적인 등반목적인 정상등정과 달리 모텐슨의 K2 등반목적은 사랑했던 지체장애자의 오빠로서 누이동생의 유품인 호박 목걸이를 티베트 깃발에 묶어 정상에 묻어 그녀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190cm 장신에 탱크와 같은 체력을 지닌데다 천성이 착한 모텐슨은 선두에서 정상을 공격하는 팀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정상공격조의 지원물자를 지고 어렵게 정상을 600m 앞둔 마지막 캠프에 도달하자마자, 고산병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동료 '핀'의 구조에 나선다.

 

고도 8400 m가 넘는 정상공격 마지막 캠프에서 5000m 베이스캠프까지 '핀'을 운반한다는 의미는 자신의 등반목적을 포기하는 것이다. 40여 시간 소요된 사투의 구조활동을 마친 모텐슨은 완전 탈진 상태가 되어 이틀간 통나무 같은 수면을 취했지만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체 하산하게 된다.

 

K2가 위치한 파키스탄의 북서부 카라코람 산맥의 전체 길이는 500km 이지만, 160km 좁은 지역에 K2를 비롯하여 고도 7000m 이상 고봉 60여 개가 집중적으로 군림하는 지역이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 20세기로 접어들기 전까지는 존재마저도 확인되지 않은 상상의 세계였다.

 

눈표범, 아이벡스 등의 고산 동물만이 생존하는 발토르 빙하의 상류는 산길이라기보다 미로에 가깝다. K2에서 시작하는 62km 길이의 발토르 빙하는 발티스탄 지역을 가로질러 하루에 10cm 속도로 남서쪽으로 흐른다.

 

탈진 상태에서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한 모텐슨은 발토르 빙하 상류에서 길을 잃었다. 동료들과 떨어져 혼자서 미로를 헤매다가 빈사 상태로 코르페 마을로 들어선다. 코르페 마을은 의심의 여지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외지고 궁핍한 마을이었다.

 

코르페 마을의 촌장인 하지알라는 문맹이지만 지혜로운 지도자였다. 하지알라 가족들의 지극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한 달 만에 건강을 회복하여 귀국길에 오른 모텐슨은 비록 가진 것이 없는 가난뱅이이지만 코르페 마을을 위해 한 가지 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당신들의 불안한 영혼이 부럽지 않으며 당신들보다 행복하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어요. 파키스탄 정부는 학교건립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이 비바람을 피해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지어주세요"

 

후손들의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하지알라 촌장은 학교의 건립을 원했으며 모텐슨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가난뱅이 등산가와 문맹자 촌장과의 약속이 성립되었다.

 

코르페 마을 주민들의 가족이 된 모텐슨

 

직업이 간호사인 모텐슨은 학교를 짓기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 모두가 꺼려하는 병원 야간 근무를 자청했고, 집세를 절약하기 위하여 고물자동차에서 자면서 유명인사 들에게 자선사업 취지를 알리는 580통의 편지를 보낸다. 이에 대한 성과는 20달러 수표 한 장이었다. 

 

모텐슨이 이슬람 문화권인 파키스탄 오지에 학교를 짓는다는 취지는 당시 부시정권 체제인 미국인들의 정서로는 받아드리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나중에 2,993명의 희생자를 낸 2001년 9워 11일 이슬람 무장 테러 단체에 의해 납치한 여객기를 이용하여 뉴욕의 세계무역 센터, 워싱턴의 미 국방부 청사에 자살 충돌한 사건을 통해 수면위로 부상한다.

 

불가능으로 귀착할 번 했던 모텐슨의 자선사업 모금운동은 '평면공정'이라고 명명된 실리콘 집적회로 이론으로 특허를 낸 장 회르니 박사를 만나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회르니 박사는 모텐슨을 만난 즈음 수백만 달러의 돈을 벌어드린 사업가이자 1993년 K2 등반을 시도한 산악인이다. 그 때 발토르 빙하를 지나면서 발티스탄 지역 사정을 알게 된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이 없는 미국인이었다.

 

히말라야 오지에 자선사업을 하고 싶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실행에 옮기기 힘든 부자 장 회르니 박사와 건강과 불굴의 열정으로 뭉친 모텐슨은 의기 투합한다. 모텐슨은 회르니 박사의 돈 1만 2천 달러를 쥐고 코르페 마을을 찾았지만, 하지알라 촌장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학교를 짓기 위해서는 100m 폭, 60m 깊이의 부랄두 강 북쪽과 남쪽 강변을 잊는 튼튼한 다리를 건설해야만 학교를 짓기 위한 물자를 마을로 수송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새끼줄 같은 외줄에 매달려 간신히 한 사람 그것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강을 건너는 시설로는 물자 수송이 불가능 했다.

 

낙담하여 돌아온 후 다시 히말라야로 향하기까지 일정은 모텐슨의 자유로운 영혼의 불굴의 투지와 미국인들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편견이 장해물이 되어 각을 세우고 대립하는 과정이다. 1978년 미국 최초로 K2를 등정한 라이하르트의 조언과 장 회르니 박사의 2만 달러의 추가 지원금은 모텐슨의 운명을 가름하는 계기가 된다.

 

모텐슨은 성실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한 다리와 학교건설의 사진은 장 회르니 박사의 절대 신임을 얻는다. 박사 유언에 의해 설립된 중앙아시아 협회의 이사장의 낯선 직함과 100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물려받는다. 역경과 낙관을 같이할 아내, 타라를 만난 시절이기도 하다. 타라의 어버지는 <네셔널지오그래픽스>사진기자로서 1963년 5월 22일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미국원정대원인 베리비숍의 딸이다.

 

모텐슨은 20여 년 동안 K2를 비롯한 세계에서 7000 이상의 높은 고봉들이 밀집해 있는 발토르 빙하 유역의 테레반의 영향력이 미치는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의 지역을 37회 이상 오가면서 갖은 난관과 역경을 이겨내고 130여 개의 학교를 짓는다. 5만 명 이상의 어린애들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터전이다. 또, 여성복지센터와 남성들의 직업훈련원을 건설하여 그들에게 평화를 지향하는 삶의 비전을 제시했다.

 

 

미국을 구하고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한 모텐슨

 

2009년 12월 4일자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009년 12월 1일 '테러와 전쟁'의 일환으로 발표한 '미군 3만 병력의 아프카니스탄 추가 파병'과 관련하여, 이러한 추가파병 조치는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 민중, 특히 여성들의 교육시설 건설과 병행하여 추진해야 한다는 색다른 제안을 한 노벨평화상 후보자 모텐슨을 소개했다.

 

"테러란 파키스탄이나 아프카니스탄 어딘가의 사람들이 단순히 우리를 증오하기 때문에 벌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죽음보다 삶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될 만큼 밝은 미래를 제공 받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차와 학교 즉 관계와 교육 특히 여성 교육을 통해서 테러와 맞서야 된다는 모텐슨의 지론이다. 모텐슨은 장학재단이나 국제구호단체의 일원으로 코르페 마을에 들어선 것이 아니다. 그는 혼자서 갔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을 깨닫았으며 그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첫 번째 차를 마실 때 외지인 이었던 그는 두 번째 차로 손님이 되었고 석 잔째 마실 때는 이미 그들의 가족이 되어 있었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불이 붙기를 기다리는 뜨거운 심장이 있으며 영혼에는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빈자리가 있다. 애써 불을 붙이려 하지 않고, 빈자리를 채우려는 혼신의 노력이 귀하고 보기 어려울 뿐이다. 타오를 강렬한 열정과 채워질 사랑이 충만하다면 누구나 예상하지 못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이레(2009)


태그:#모텐슨,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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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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