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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대기업에 4대강 특수를 안겨주기 위해 굴삭기 등록대수 통계를 왜곡·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이 비슷한 시기 진행한 '건설기계수급계획' 연구용역에서는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건기산협)에서 의뢰받은 연구용역 결과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기술해 논란이 예상된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건기연의 <건설기계 수급계획 수립 연구> 보고서를 보면, 건기연은 국토해양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2007년 말 현재 굴삭기 등록대수를 10만7860대로 기술했다. 하지만 건기산협에서 의뢰받은 연구용역에서는 7만6914대로 추정했다.

 

건기연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책임연구원에 의해 진행된 두 건의 연구용역에서 오차가 무려 3만여 대나 나는 '다른 결과'를 내놓은 셈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본격 추진을 앞두고 '굴삭기 공급과잉' 상태를 은폐하기 위한 '맞춤형 연구용역'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연구, 그러나 다른 결과... 굴삭기는 몇 대?

 

건기연은 지난해 9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3개월간 국토해양부로부터 의뢰를 받아 '건설기계 수급계획 수립'이라는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연구용역 결과를 아래 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연구용역 보고서는 밝혔다.

 

'건설기계 임대사업자들의 안정적 사업계획 수립에 활용 가능'

'건설기계 등록대수에 대한 수급계획 수립에 활용 가능'

 

특히 건기연은 굴삭기 등 건설기계의 기종별 향후 5년간 등록대수를 추정해 눈길을 끌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핵심 건설기계인 굴삭기의 경우 2007년 말 현재 10만7860대가 등록돼 있다. 7만8094대에 불과했던 1998년과 비교하면 무려 38.1%나 늘어난 규모다.

 

건기연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본격화되는 2010년부터 굴삭기 등록대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2010년 12만16대, 2011년 12만3676대, 2012년 12만7332대, 2013년 13만986대로 점차 늘어난다는 것. 또 다른 건설기계장비인 불도저·덤프트럭·기중기·믹서트럭·펌프트럭 등에 비해 증가폭이 큰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용역 내용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굴삭기 등록 실태(서울·경기지역)에 대한 조사' 연구용역 결과와 크게 다르다.

 

건기연의 굴삭기 등록실태 연구용역은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진행됐다. 건기연은 국토해양부와 관세청의 공시자료, 무역통계연보 등을 중심으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굴삭기 등록대수를 분석했다.

 

1년 3개월간 연구용역을 진행한 건기연은 "지난 10년간 국내 굴삭기 증가대수는 6만2561대이고, 같은 기간 굴삭기가 중고 상태로 수출된 대수는 6만2612대이기 때문에 국내시장에서 굴삭기의 증감(이 경우 감소대수)은 불과 51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건기연은 2007년 말 현재 굴삭기 등록대수는 7만6914대라고 추정했다. 이는 건기연이 3개월 전에 국토해양부로부터 의뢰받은 연구용역에서 10만7860대라고 기술했던 것과는 무려 3만946대나 차이가 나는 수치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두 건의 연구용역 내용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 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건의 연구용역을 진행한 책임연구원이 김아무개 연구원으로 같다는 점이다.  한편 해당 연구원은 "두 연구 결과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면서 더이상 언급을 꺼렸다.

 

건기산협이 건기연에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를 그대로 따르자면, 국내 굴삭기는 정부의 판단처럼 '공급과잉 상태'는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굴삭기를 수급조절 품목으로 지정할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대형 제작업체-지경부측의 '반란'... "4대강특수 안겨주려 맞춤형 용역"

 

국토해양부가 건기연에 '건설기계 수급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의뢰한 배경은 수급조절 품목 지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동철(광주 광산갑, 민주당) 의원은 2006년 건설기계 분야에 수급조절제도를 도입하는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을 냈고, 이 개정안은 다음해(2007년) 국회를 통과했다. "굴삭기 등 건설기계의 과잉공급으로 국내 건설기계 가동율이 떨어지고 출혈경쟁으로 인해 건설기계 임대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다"는 것이 당시 입법 취지였다.

 

이에 따라 국토해양부는 굴삭기 등을 비롯한 건설기계의 수급조절 여부를 적극 검토해왔다. 국토해양부가 의뢰한 건기연의 연구용역 보고서도 "건설기계의 수급계획을 수립하기 이전에 건설기계 임대시장의 수급상의 불균형과 등록대수의 과잉여부를 분석하고 그 분석 결과에 따라 수급조절위원회에서 수급계획을 수립할 것인가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연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열린 건설기계 수급조절위원회(2차)에서 현대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등 대형건설기계 제작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건기산협과 지식경제부측 심의위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건기연의 또 다른 보고서, 즉 건기산협에서 의뢰한 문제의 '굴삭기 등록실태' 연구용역 결과를 근거로 "4대강 살리기 등 공공사업 활성화에 내수판매를 기대하고 있는 시기에 수급조절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굴삭기 등의 수급조절 품목 지정을 강하게 반대했다.

 

지식경제부측 심의위원도 "굴삭기와 펌프트럭은 수급조절 품목에서 반드시 제외되어야 할 품목"이라고 건기산협측을 거들었다.

 

수급조절위원회는 굴삭기·덤프트럭·믹서트럭·펌프트럭 등 4개 기종의 수급조절 여부를 집중 논의한 끝에 믹서트럭·덤프트럭 2개 기종에 한해 향후 2년간 신규등록을 제한하기로 의결했다. "1개월 이내 실태조사를 거쳐 재심의한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7대 건설기계 기종 중 보유 대수가 많은 굴삭기와 펌프트럭은 제외된 것.

 

문제는 2차 수급조절위원회가 열린 지 6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재심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수급조절위원회에서 굴삭기의 공급과잉을 우려하며 수급조절 품목 지정을 밀어붙이려 했던 국토해양부조차 움직이지 않고 있다.

 

특히 국토해양부는 수급조절위원회에서 논란이 됐던 건기연의 연구용역 결과를 검증했다. 검증 결과 지난 10년간 굴삭기 등록대수는 2만8246대가 늘었고, 2007년 말 현재 등록대수는 10만5160대로 나타났다. 

 

국토해양부는 "관세청 무역통계 대수(중고차 수출 포함)를 임의 가공, 대수 가산했고, 중고수출대수를 확대해 말소(폐차 등) 대수가 없는 것으로 가공했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검증하고도 수급조절위원회를 열지 않은 동안 결국 '굴삭기 등록대수 통계 왜곡·조작 의혹'이 터졌고, 감사원은 본격 감사를 위한 사실확인에 들어갔다. 

 

김성순(서울 송파병, 민주당) 의원은 "건기연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연구원이 진행한 연구용역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내놓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는 어떤 장사치가 '이 창은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이 방패는 모든 창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한 '모순(矛盾)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고 꼬집었다.

 

결국 건기연이 굴삭기의 과잉공급 상태를 은폐해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이 주축인 건기산협측에 '4대강 특수'를 안겨주기 위해 '맞춤형 연구용역'을 내놓았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어 보인다.

 

문제의 연구용역 보고서에 '통계 오류'도 적지 않아

 

한편 건기산협에서 의뢰한 건기연의 연구용역 결과에서는 중요한 통계 오류가 적지 않게 발견돼 '부실조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건기연은 '굴삭기 수출대수 비교' 표(10쪽)에서 2005년 외국으로 수출한 굴삭기 대수의 관세청 통계와 건기산협 통계 차이가 2388대임에도 불구하고 2288대로 기재했다. 이에 따라 지난 10년간 수출된 중고 굴삭기 대수는 6만2612대임에도 불구하고 '6만2512대'로, 2007년 말 현재 등록대수가 7만6014대임에도 '7만7014대'로 잘못 적었다.  

 

또 건기연의 추정대로 하면 지난 10년간 굴삭기 등록대수는 51대가 줄었음에도 '49대가 증가했다'고 적시했다.   


태그:#굴삭기 등록대수 통계 조작 의혹,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구건설기계산업협회, #국토해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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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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