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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8월 18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김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8월 18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김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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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며 지난 8월 18일 저세상으로 가신 김대중 대통령께서 생애 마지막에 무엇을 마지막으로 호소하셨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김 대통령은 현실 정치를 떠나신 분이었지만, 생애를 마무리하시는 순간까지 나라 일에 대해 대안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매주 3회, 하루 4~5시간씩 투석치료를 받으시면서도, 병상에 누워계시면서까지도 나랏일을 걱정했습니다.

첫째, 6.15와 9.19로 돌아가라

김 대통령의 첫 번째 호소는 남북문제는 6.15공동선언으로, 북한핵문제는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9.19성명이란 2005년 미·중·러·일·남·북 6자가 합의한 것으로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의 안전보장, 평화협정 체결, 경제지원을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올해 5월 초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부주석을 만나 "9.19성명을 실천하자. 6자회담을 동북아의 평화안보협력기구로 만들자"고 주장해 중국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중국에서 서울로 돌아오신 다음날인 5월 8일 보즈워스 미국의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동교동 사저에서 만나 북미대화와 6자회담의 복원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셨습니다.

5월 18일 생애 마지막 공식 만찬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했습니다. 이 만남을 앞두고 김 대통령은 며칠 동안 심사숙고하며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장문의 문서를 작성하셨습니다. 이 문서에서 김 대통령은 지난 20년간의 북핵문제 역사에서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열거하고, 북미직접대화와 6자회담 협상을 통해 북한핵문제를 해결하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남북 긴장이 높아져 가는 것을 보시면서 서해상 충돌을 걱정하셨습니다(6월 8일, <중앙일보> 회견). 이 예측은 불행히도 적중했습니다. 김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연설이 된 6.15공동선언 9주년 연설(6월 11일)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강력히 충고하고 싶습니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합의해 놓은 6.15와 10.4를 이 대통령은 반드시 지키십시오. 그래야 문제가 풀립니다"라고 호소하셨습니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개성공단 노동자 숙소 건설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5월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오른쪽 세 번째)을 만난 생전의 김대중 전 대통령.
 지난 5월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오른쪽 세 번째)을 만난 생전의 김대중 전 대통령.
ⓒ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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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연설문 제목은 '9.19로 돌아가자'였습니다. 유럽연합상공회의소의 초청으로 예정(7월 14일)됐던 이 연설은 7월 13일 입원 때문에 유고 연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 대통령은 이렇게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남북문제는 6.15공동선언으로, 북한핵문제는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 해결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을쯤에는 북미대화가 시작되고 동북아 평화체제 논의도 진행될 것으로 예견하셨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소식을 듣고,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씀은 못하셨지만 관련 기사를 계속 읽어 달라고 손짓까지 하셨습니다.

12월 8일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으로 북미대화가 시작됐습니다. 일본 하토야마 민주당 정부와 북한의 대화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입니다. 6자회담도 곧 열릴 것입니다. 김 대통령의 예측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제 남북대화를 더 이상 지체시킬 시간이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주저하거나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이명박 정부는 김 대통령의 권고대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약속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 금강산관광, 개성관광의 재개를 선언해야 합니다. 6자회담 문제에 대해서도 과거 2005년 9.19성명 합의와 6자회담에서 했던 것처럼 북핵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합니다. 북·미·중·일은 대화를 하는데 남북 간에만 냉랭한 관계가 계속된다면 한국 정부는 6자회담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 뻔합니다. 국민들은 한국 정부가 6자회담에서 방관자가 되는 것도, '왕따'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둘째, 민주당과 야당, 시민세력은 단결하고 연합하라

김대중 대통령은 세브란스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면서도 민주당과 그 주변세력들은 하나로 단결하고, 야당들과 시민단체는 연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원하시기 전에도 '단결'과 '연합'을 주문 외우듯 하셨습니다. 한때 병석에서 하신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말씀이 정치권의 논란이 됐습니다만, 그것은 김 대통령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것입니다. 새삼스러운 말씀도 아닙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에게 '50년 정통야당의 계승자'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비서관들이 병원에서 함께 들었고, 입원하시기 전에도 항상 강조하셨던 말씀입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은 소수 의석으로 힘든 투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정책면에서나, 인물면에서나 민주당은 취약합니다. 주변세력들도 당 바깥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민주당이 단결하고 분발해야 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민주당은 야당 및 시민세력들과 함께 '연합의 정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정치생활에서 수차례 연합을 추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야당 세력을 통합하고 재야세력과 젊은 신인을 정치에 충원하며 힘을 키웠습니다. 여당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치지형, 즉 지지기반의 열세, 재정기반의 취약, 적대적인 언론환경을 통합과 연합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1997년 정권교체도 이른바 'DJP 연합'을 통해 이룩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합'의 방도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연합을 위해서는 타협과 협상이 필요합니다. 김 대통령은 작년 병원에 입원하시기 직전 "자기를 버리면서 큰 틀로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크니까 7을 차지하고 나머지 3을 (연대에 참여하는 세력들이) 나눠 가지라는 식으로 해선 곤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협력하고 있는 타 정파에) 30∼40석을 양보해서 우리가 60석을 얻어 모두 100석을 얻을 것인지, 따로따로 나가서 40석만 얻을 것인지 그것은 분명하다. 빈손으로 말 것인지, 아니면 전체 10개 중 5개라도 얻어서 2∼3개씩이라도 나눠 갖는 것이 나은지 그것은 분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민들은 절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주변의 정파들, 야당과 시민세력이 하나로 단결하고 연합해 거대 여당과 멋있는 경쟁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정치일정을 생각할 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리더십은 기득권을 지키면서 현실에 안주할 때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리더십은 단결과 연합을 통해, 내부의 경쟁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때 국민이 키워주는 것입니다.

셋째, 이명박 정부는 불행한 길을 걷지 말라

생애 마지막 순간에 김 대통령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이명박 정부였습니다.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김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기대를 품으셨습니다. 이 대통령이 기업을 한 분이고, 실용적 생각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나랏일을 잘 해나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 대통령을 찾아와 남북관계에서 햇볕정책이 옳은 방향이라고 몇 차례 말하기도 했습니다.

5월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거행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에서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
 5월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거행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에서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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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에 대한 김 대통령의 걱정은 커졌습니다.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두들겨 맞고, 언론인들이 재판정에 서는 등 언론통제 의도가 노골화되고, 재임 중 심혈을 기울인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이 축소되고, 시민단체들이 압력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시면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셨습니다. 2009년 1월 1일에는 "꿈만 같다. 민주정부 10년으로 민주주의는 반석 위에 있는 줄 알았다. 내가 착각했다"고 자책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길을 간다면 불행해질 수 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편향의 정책이 계속되고, 사회복지가 축소되고, 800만명 비정규직의 처지와 생활형편을 바라보면서 서민들의 삶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부정되고, 개성과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가 반목과 대립으로 가는 것을 보고 '10년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며 개탄하셨습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으시고는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라고 분노했습니다. 이때 김 대통령은 마음만큼이나 몸이 크게 상하셨습니다. 의료진은 5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 때 경복궁 담벼락 옆에 앰뷸런스를 대기시켜 놓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기까지 했습니다. 끝내 권양숙 여사의 손목을 붙잡고 오열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대통령을 지내신 분으로서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대통령의 불행은 국민의 불행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김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랐습니다. 김 대통령은 "나라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먼저 말해 경계하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2010년 새해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권고대로 민주주의에 충실하고, 서민들을 돌보고,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밀어붙이기식의 '힘의 정치'가 아닌 '대화와 협상의 정치'로 나와야 합니다.

넷째,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

김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는 말씀을 국민들에게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평생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의 3대 위기, 즉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를 보고, 국민들을 향해 '행동하는 양심'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야경꾼이 되어주길 호소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시어 두 차례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시고 기관절개 시술을 받으시며 37일간 투병하셨습니다. 1차 인공호흡기 부착 이후 병세가 호전돼 호흡기를 뗀 3일의 기간중 국회에서 미디어법 강행통과가 있었습니다. 이날 아침 김 대통령은 병석에서 "상황은 어떠냐?" "전망은 어떠냐?"고 물으셨습니다. 야당이 싸우고 있지만 강행통과전망이 높다는 보고를 듣고, 김 대통령은 마른 목을 축여가며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이렇게 끝까지 국민들을 믿었습니다. 국민들이 '행동하는 양심'이 돼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바로잡아 줄 것을 믿으셨습니다.

최경환 전 비서관.(자료사진)
 최경환 전 비서관.(자료사진)
'행동하는 양심'은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김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은 거리에서 투쟁하고 감옥 가는 일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처지에서 양심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행동하는 양심'입니다. '바르게 투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쁜 신문 보지 않고, 인터넷에 글을 쓸 수 있고, 하다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년 2010년은 경술국치 100년, 한국전쟁 60년, 4.19혁명 50년, 광주민주화운동 30년, 남북정상회담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2010년 새해는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국내 정치도 여러 변화가 예상됩니다. 이러한 시기에 김 대통령께서 생애 마지막 순간에 남긴 4가지 호소를 돌아보며 당면한 과제들을 풀어가는 지혜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정부 여당도 방향을 전환하고, 야당과 국민들도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최경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으며, 지금은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겸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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