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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의원이 외고 폐지를 들고 나와 신선해보였다. 한나라당의 성격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한다고 해 부추기고 격려해줬다. 저희는 노심초사 저 내용이 폐기되거나 포기되지 않고 잘 갈 수 있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교과부 당정협의 결과가 바로 이 외고 존치안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외고 개편안에 대한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솔직한' 말이다. 이 의원이 언급하고 있는 "신선해 보인 한나라당 의원"은 바로 정권 실세로 통하는 정두언 의원이다.

 

외고 폐지·전환 법안을 들고 나온 정 의원을 신선하게 본 건 이 의원만이 아니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사교육비를 줄이고자 하는 정 의원의 진정성을 믿는다"고 말했었다. 사실 정 의원의 외고 폐지·전환 추진은 여당보다 야당과 시민사회 진영에서 더 환영을 받아왔다.

 

민주당 "정두언 부추기고 격려했는데..."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훈훈한 분위기는 10일로 끝났다. 교과부는 10일 오전 정원을 축소하는 대신 외고를 존치시키는 방안을 골자로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외고는 사교육의 주범"이라며 공격했던 정 의원의 반발이 예상됐다.

 

하지만 정 의원은 "교과부가 발표한 외고 개혁안은 매우 미흡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할 때 나름대로 고심 끝에 나온 결과로 이해한다"며 "앞으로 시행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느 때고 문제가 재연될 소지가 보이면 당초의 개혁안(기 제출법안)을 적극 추진할 생각이다"는 짧은 논평만 내고 입을 닫았다. 결국 정 의원이 꼬리를 내린 셈이다.

 

교과부는 "한나라당과 이미 당정 협의를 끝냈고, 교과부 개편안을 최종 안으로 결정한다는 합의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 의원 쪽은 "그동안 이주호 교과부 차관과 등 정부와 많은 논의를 했지만, 우리 주장대로 일을 처리하기가 어려웠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동안 정 의원이 추진한 외고 폐지·전환 내용은 교과부의 개편안과 크게 다르다. 정 의원의 외고 개편의 핵심은 ▲외고를 특성화 학교로 전환하고 ▲학생 모집 단위를 전국으로 확대하며 ▲학생의 지원을 받아 추첨으로 선발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외고를 비판했던 정 의원의 발언 수위도 높았다. 정 의원은 외고 교장단과 논쟁을 벌이면서 외고를 "우리 사회의 악"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또 지난 10월 23일 교과부 국정감사에서는 "정두언 의원은 "외고는 유치원부터 사교육을 해야 갈 수 있는 곳으로 공정성을 크게 잃었고, 입시전문고가 돼버린 사교육의 주범"이라며 "정부 대책이 사교육에 영향을 못 주면 교육부 장관은 그만둬야 한다"고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다그치기도 했다.

 

꼬리 내린 정두언 "교과부 개편안 나름대로 노력한 것"

 

어쨌든 정 의원은 외고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며 사회적 토론을 이끈 핵심 인물이다. 하지만 외고를 존치시킨다는 교과부의 개편안에 대해서는 "고심 끝에 나온 결과로 이해한다"며 기존과는 180도 다른 견해를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당연히 민주당은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을 하고 있다. 이들은 10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 의원을 부추기고 격려했다"던 이종걸 의원은 결국 "짝퉁 '교육개혁정치'를 펼친 한나라당은 반성해야 한다"며 "외고 폐지를 홀로 주장하는 것 같았던 몇몇 의원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교과위 간사를 맡고 있는 안민석 의원은 "외고 논쟁이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며 "지난 두 달 간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은 누가 보상해야 하나, (정부와 정 의원은) 가장 먼저 국민들에게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정 의원의 사과의 사과를 촉구했다.

 

김진표 의원은 "김영진 의원은 모든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법안을 냈고, 나 역시 외고 폐지·전환하는 법안을 낼 예정이다"며 "정두언 의원 안과 약간 차이가 있지만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으니 외고 폐지의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김영진 의원은 "여론조사 결과 국민 47%가 외고를 폐지하라고 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오늘 교과부가 발표한 외고 존치안은 현실과 동떨어진,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정두언, 선거 운동 '쎄게' 잘 했다"

 

진보신당 역시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은 불과 몇 달 전 망국적 사교육 운운하며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해 외고 폐지 등 강경한 입장을 비췄다"며 "한나라당은 정부의 외고 존치 강화안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명백히 따진다면 외고 폐지가 한나라당의 당론이었던 적은 없었다. 정두언 의원의 주장이었다. 결과와 상관없이 정 의원은 지난 2개월 동안 외고 폐지 논란을 이끌면서 국민들에게 친서민 이미지를 심어줬다. 겉으로만 본다면, 정 의원의 개혁 노력이 교과부에 막힌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진보진영에서는 "정 의원이 이번 논란을 계기로 선거 운동 '쎄게' 잘 했다"고 정치적 평가를 내리고 한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정 의원이 초중등교육법을 손대는 건 결국 교육체계 자체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이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이렇게 판을 크게 흔드는 걸 보면 전형적인 '포퓰리즘'적인 움직임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엄민용 전교조 역시 "외고 문제는 교육 문제를 넘어서 정치와 이념문제가 됐고, 쉽게 결정 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며 "결국 이번 사안은 한나라당이 최소한 내년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며 모든 재미를 끝까지 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어쨌든 서울시장 후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 의원에게 외고 폐지 논란은 득이면 득이지 절대 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야당의 사과 요구에 정 의원이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태그:#외고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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