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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만큼은 아니지만 김장은 겨우살이 준비 중 어느 것보다 중요합니다. 우리 집은 이번 토요일 김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김장을 담그기 위해서는 이번 주 내내 준비를 합니다. 남새밭에서 배추를 뽑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배추 가르기, 가른 배추를 소금물에 절여야 합니다.

지난 월요일 어머니께서 남새밭에서 배추를 뽑았다면서 오늘(10일)은 배추를 가르고, 절이려면 꼭 집에 와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을 하시기에 아침 일찍 어머니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와 우리집, 누나 집까지 세 집이 담글 김장이 배추 100포기 정도입니다. 누나 집은 10포기 정도만 하니 어머니 집은 40포기, 우리 집은 50포기를 담습니다. 배추 100포기를 가르기 위해 칼을 갈았습니다.

배추를 다듬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배추를 다듬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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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만에 칼을 갈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칼을 잘못 갈면 칼날이 엉망이 되어 갈지 않은 것보다 못합니다. 칼가는 모습을 본 아내가 잘 갈지 못하는 사람이 괜히 갈다가 칼날 뭉게면 어떻게 되느냐고 핀잔을 줍니다.

"당신 칼 갈아 본 적 있어요?"
"집에서 칼 갈았잖아요."
"아니 집 칼하고, 어머니 집 칼 종류가 달라요."
"칼 종류가 다르다고."

"그래요, 칼 생긴 것 좀 보세요. 옛날 칼이 잖아요. 우리 집 칼하고 다르죠."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아네."

"그러니까 아무렇게 갈면 안 돼요."
"알았어요. 그래도 내가 없으면 지금 칼 갈 사람이 없는데."
"맞아요. 답답한 사람이 따를 수밖에. 잘 갈아보세요."


칼을 다 갈고, 배추를 가르는데 소리가 '사각사각'합니다. 올해는 배추가 잘 되어 속이 꽉 찼다고 합니다.

배추를 다듬고 있다
 배추를 다듬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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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배추 속이 꽉찼네요."
"올해는 배추가 잘 되었다 아이가."
"지지난해는 배추 속이 없어서 김치가 맛이 없었는데 올해는 맛도 있겠어요."
"하모. 배추가 달다 아이가. 달아."

"나중이 된장에 찍어 먹어면 맛있겠네요."
"맛있지. 아마 김치가 맛있을 거다."
"올해는 김장 김치만 먹어도 되겠다."
"아이구 김치만 먹어도 된다고요. 당신이."
"아니 이 사람이 김치만 먹어도 된다는 말은 그만큼 배추가 좋아 김치가 맛있겠다는 표현이지 김치만 어떻게 먹어요."
"당신 그렇지요. 입이 짧아 얼마나 반찬 투정을 부리는지. 막둥이보다 반찬 투정을 더 많이 부려요. 어머니."

"남편 흉을 다 본다."
"애비 니가, 입 짧은 것 다 내가 아는데 머라카노."

올해는 배추가 잘 되어 속이 꽉찬 모습. 침이 고인다
 올해는 배추가 잘 되어 속이 꽉찬 모습. 침이 고인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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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도 잘 갈지 못하고, 입도 짧아 반찬투정한다는 핀잔을 들어면서 배추를 가르고 있는데 배추벌레가 나왔습니다. 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배추벌레가 나온 모양입니다. 이 놈들이 있다는 것은 배추가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놈들이 많이 나와야 진짜 좋은 배추입니다.

옛날에는 배추 벌레를 심심찮게 보았는데 요즘은 잘 볼 수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소비자들이 너무 깨끗한 과일과 채소를 원하니 농약을 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겉보기에 흠이 있어도 사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흠이 있는 채소와 과일도 사 먹으면 좋겠습니다.

농약을 뿌리지 않아 배추 벌레가 있다.
 농약을 뿌리지 않아 배추 벌레가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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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내가 배추를 소금물에 절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손발이 척척 잘 맞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도 잘 나눕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배추를 절이면서 나누는 대화는 정담입니다. 정담이 쌓이면 쌓일수록 둘 사이는 고부관계가 아니라 친정엄마와 딸 사이가 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배추를 소금물에 담그고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배추를 소금물에 담그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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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 배추는 무엇이예요?"
"응 그거는 설 쉬고 먹을 거다."
"이 배추는 속이 조금 덜 찼는데요."
"그래서 따로 했다 아이가. 소금물을 더 많이 넣어 조금 짭게 담아야 한다."
"아니 김치냉장고도 있는데 설 지나고 먹을 김치를 따로 담을 필요가 있나요."
"아이다. 김치 냉장고에도 넣지만 옹기에도 넣어야 한다. 옹기에 넣은 김치가 더 맛있다."


속이 들 찬 배추는 설날이 지나면 먹을 것이라고 어머니께서 따로 해놓으셨다.
 속이 들 찬 배추는 설날이 지나면 먹을 것이라고 어머니께서 따로 해놓으셨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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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설 앞에 먹을 김치, 설 지나고 먹을 김치를 따로 담궜는데 요즘은 김치냉장고가 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어머니는 항상 김치를 따로 담급니다. 배추 속은 덜 차도 김치가 익으면 진짜 맛있습니다. 특히 옹기에 담기 때문에 김치 맛은 김치냉장고가 따라 올 수 없지요. 아내가 갑자기 부릅니다.

"당신 이제 무 좀 씻으세요."
"무를 씻으라고요. 당신이 좀 하면 안 돼요."
"아니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요."
"잘 안 씻어지네."
"마트에서 사면 무가 하얗고 깨끗한데 잘 안 씻어지죠."
"우리가 씻는 것이 보기에는 조금 누렇게 보여도 더 깨끗할 수 있어요."


아내가 무를 씻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무를 씻었을 수밖에
 아내가 무를 씻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무를 씻었을 수밖에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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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를 씻는 것으로 김장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배추 뽑고, 가르고, 절여 놓으니 큰 통에 세통, 중간 대야 3개입니다. 하룻밤 지나면 숨이 죽고, 물에 다시 한 번 씻어야 합니다. 100포기를 바라 보는 것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100포기 김치가 엄청나게 많을 것 같지만 우리 집은 김치를 워낙 좋아해 따뜻한 봄이 오면 없어집니다. 김치 맛이 얼마나 좋을지 기대됩니다.

어머니 집과 우리집, 누나집이 먹을 김장이다. 셋집이 먹을 김장이 100포기 정도이다.
 어머니 집과 우리집, 누나집이 먹을 김장이다. 셋집이 먹을 김장이 100포기 정도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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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는 엄청나게 바쁘겠다."
"결혼식이 2군데, 교회 입당예배, 김장 담그기. 몸이 3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

"새벽부터 일어나 해야지.
"모레 새벽부터가 아니라 오늘부터 김장은 시작되었어요."
"그래 올해 김장 오늘부터 시작이다. 아니지. 어머니가 지난 월요일 배추 뽑았을 때부터 김장은 시작되었지. 안 그래요 어머니."
"맞다. 내가 배추 뽑을 때부터 김장은 시작된기라."


태그:#김장,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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