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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차다. 들녘엔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사랑눈(싸라기눈)이라도 내린 것처럼 산과 들은 온통 백색이다. 시골 출신이지만 이렇게 많이 내린 서리를 본 게 아마 처음일 정도다.

서리가 내린 탓일까? 아래턱이 자꾸만 떨린다. 사람이 북적이는 5일장에도 추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2일, 12월 들어 처음 열린 영천장날. 오전 8시가 돼도 "아~춥다!"는 말이 그치질 않는다. 새벽 한기가 계속되는 날씨다. 고인 물 가장자리 얼음이 눈에 들어왔다. 춥긴 추운 모양이다.

영천시장. 5일마다 큰 시장이 서는데 2일과 5일이 장날이다.
 영천시장. 5일마다 큰 시장이 서는데 2일과 5일이 장날이다.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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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5일장 풍경은 나중에 보기로 했다. 차가운 몸을 녹이는 게 급선무다. 추울 때는 뜨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게 당연지사. 미리 와서 난전에서 농산물을 파시는 아버님께는 참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날씨가 날씨인지라 후배와 함께 곰탕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소머리곰탕 집이 10여개 밀집해 있으나 어느 곳을 가릴 여유없이 발길 가는대로 들어선다.

"아지매! 뜨뜻한 거 한 그릇 퍼떡 주이소!"

영천 소머리곰탕
 영천 소머리곰탕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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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이 나왔다. 뽀얀 국물에 갖가지 부위별 고기가 듬뿍 담긴 뜨끈한 곰탕. 한술 두 술 떠먹은 국물이 어느새 차가운 체온을 녹이는 작용을 한 듯, 몸이 한층 푸근해짐을 느낀다. 몸이 풀려서, 미각이 살아나는 걸까?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쫄깃한 소고기와 어울린 기막힌 맛이다. 맛나게 먹을 때는 달리 표현할 말이 필요없다. 겸상에도 오가는 말이 별로 없다. '후루룩 쩝쩝'...그 소리마냥 맛있게 먹는 데 열중인 까닭이다.

영천시장 안에는 곰탕 골목이 있다. 커다란 가마솥에 24시간 고아내는 소머리 곰탕집이 10여 곳 모여있다. 영천 소머리곰탕은 소의 각종 뼈와 족발 그리고 내장 등을 삶아 뽀얀 국물을 내고 여기에 얇게 썬 부위별 소고기를 듬뿍 넣은 게 특징. 여기에 밥 한 공기를 말면 한 끼 요기로 거뜬하다.

값비싼 소고기를 구경하기 힘든 서민들에게는 5일장 소머리곰탕이 영양보충으로는 제격인 음식이었다. 살코기가 없어도 여러 사람이 나눠먹을 수 있게 음식을 개발한 선조들 지혜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가마솥에 몇시간 푹 고은 하얀국물
 가마솥에 몇시간 푹 고은 하얀국물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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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머리곰탕 한 그릇은 5천원. 의외로 싼 가격이다. 그래서일까? 영천 소머리곰탕은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서민음식으로 수십년 사랑을 받아왔다. 영천시장과 더불어 그 전통을 자랑하기에 충분한 음식으로 손꼽힌다.

영천시장에선 수많은 장터국밥 가운데 왜 하필 소머리곰탕일까? 곰탕골목 안에서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산성식당 임순자님의 말속에 그 정답이 들어있다.

"영천 우시장이 원래 전국 규모로 크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천 5일장에서 소머리곰탕이 명물이 된 것 같아요."

소머리곰탕이 많이 알려진 덕에 영천을 찾는 외지인들도 부쩍 이 음식을 즐겨 찾는다. 공중파에 자주 소개되기도 하고 유명인들이 먹고 간 흔적도 보인다. 곰탕골목 안 길손식당에는 올해 작고한 이의근 경북지사가 2004년에 다녀간 흔적도 보였다. 또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그리고 탤런트 길용우씨, 그리고...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2007년 다녀간 흔적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2007년 다녀간 흔적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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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5일장은 경북 안동시장 그리고 대구 약령시장과 함께 경상도 3대 시장으로 꼽힐 정도로 큰 시장이었다. 영천은 대구-경주-포항-안동으로 통하는 도시로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동해안과 내륙 물품이 모이는 시장 기능이 활발한 곳이었다.

이를 나타낸 '잘 가는 말(馬)도 영천장, 못 가는 말도 영천장'이란 표현이 있다. 인근 마을에서 아무리 빨리 가도 영천장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뜻으로, 영천장의 중요함을 표현한 것이리라.

하지만 영천5일장도 예전 명성을 자랑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날로 장사가 안된다"고 하소연을 한다. 고속도로 개통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옛'교통 중심지' 역할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다른 재래시장 상황과 같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손님을 뺏기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재래시장을 살릴 길은 없는 것일까?

영천5일장 난전 풍경4
 영천5일장 난전 풍경4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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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5일장 난전 풍경3
 영천5일장 난전 풍경3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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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5일장 난전 풍경2
 영천5일장 난전 풍경2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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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5일장 난전 풍경5
 영천5일장 난전 풍경5
ⓒ 추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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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별빛촌 이야기'(http://blog.daum.net/staryc)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소머리곰탕 , #영천소머리곰탕, #영천시장, #영천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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