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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추운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이 맘 때면 누구보다 몸과 마음이 시린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입니다. 이 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몸 누일 방도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이야기 나눌 사람입니다. 긴 세월 이어온 그 분들 생엔 한 시대가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우양'(www.wooyang.org)과 함께 그 분들을 찾아나섭니다.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편집자말>

"큰애기공출(종군위안부)을 피해 시집을 갔더니 난봉꾼 서방을 만나 내 인생이 아주 절단이 나버렸어."

 

1928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김종예 할머니. 90을 바라보는 나이로 걷는 것조차 불편한 몸이 되었지만 지난 시절 기억만큼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큰애기 공출'이란 말을 하며 몸서리를 치신다.  

 

고운 명주베를 짜기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던 어머니 솜씨를 이어 받아 어린 시절부터 길쌈에 재주가 있었다는 할머니. 손끝이 야물고 빨라 길쌈이면 길쌈, 바느질이면 바느질 무엇 하나 흠잡을 곳 없어 칭찬이 자자했지만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탓에 정작 명주 옷은 걸쳐보지도 못했단다.

 

"일본 놈들 공출이 얼마나 지독한지. 일 년 농사 죽게 지어 놓으면 죄다 뺏어가고, 안락미 여섯 홉이랑 콩기름 대두 한 되랑 그렇게 주더라구. 어머니가 밤 새워 길쌈을 해서 내다 팔기도 했지만 먹고 살기엔 어림도 없지. 아버지도 없는 집 딸이 학교는 무슨? 일하는 엄마 대신 동생들 업어 키우고, 집안일 돕고 그랬지. 나 지금도 글을 몰라. 참 답답한 인생 살았지?"

 

어머니를 도와 집안 살림을 맡아하던 할머니에게 혼사이야기가 오고간 것은 열 일곱 살 되던 해였다.

 

"시집갈 생각도 않고 있었는데 '큰애기공출'을 보낸다, 어쩐다 하니 어머님이 서둘러 혼처를 잡은 거야. 친정집 마당에서 예를 올리고 하룻밤 묵어 아침 일찍 해남 현상까지 200리길을 시집이라고 떠나는데 겁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눈물만 나더라구."

 

종군위안부 공출을 피해 온 시집. 열 살 많은 남편은 혼례 첫날부터 새색시 곁에는 오지도 않고 바깥으로 도는 난봉꾼이었다.

 

기생 치마폭에 빠져 가산 탕진한 남편  

 

"열일곱이지만 작고 야위어서 아직 몸엣것(생리의 우리말)도 없을 때라. 이미 기생 재미에 빠져버린 신랑이 이마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각시가 눈에 보이겠나. 하룻밤도 각시 곁에 눕지 않고 기생집으로만 돌아다니는데… 사람들이 그러더라구. 사쿠라마치(櫻停-유곽을 말함)에 간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기생집이라고 하데."

 

기무코라는 기생의 치마폭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던 남편은 어느 날 일본으로 징용을 가게 된다. 남편이 징용을 가고 나니 빚쟁이들이 집안에 들이 닥쳤다. 유곽이고 술집이고 남편이 남겨놓고 간 빚이 어마 어마했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그걸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베를 짜기 시작했지. 틈틈이 짜둔 무명몇 필하고 이불솜을 뜯어서 짠 베 여섯 필을 합치니 제법 많았어. 그걸 가지고 장에 나가 만주에서 온 상인에게 팔았더니 빨간 종이로 된 1환짜리를 엄청 많이 주는 거야. 그걸로 빚도 갚고 한필을 남겨 일본에 간 남편에게 양복도 한 벌 만들어 보냈어."

 

해방이 되어 징용 간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내에 대한 무관심과 홀대는 여전했고, 밖으로 도는 습관도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이도 들어서지 않았다.

 

"남편이 독자여서 아들을 낳아 주어야 했는데 영 아이가 들어서지를 않았지. 하긴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아예 작은 마누라와 딴 살림을 차려 버리더라구. 내가 시집가서 한 건, 죽도록 일 해 준 것 밖에 없어. 서른 한 마지기 농사를 혼자 지으며 그 집안 살림을 다 맡아 했으니 일꾼도 그런 큰 일꾼이 없지. 생각해 보면 시집이 아니라 머슴살이를 한 것 같아."

 

아이가 영 들어 설 것 같지 않았던 할머니 몸에 태기가 생긴 것은 스물아홉 살 무렵.  

 

"스물아홉에 들어서 서른에 낳았는데 그것도 명주베를 짜다 낳았어. 배가 틀고 아파오는데 마무리를 하겠다는 욕심에 견디다, 견디다 베틀 아래서 아이를 낳았지 뭐야. 애를 낳아서 대충 씻겨 포대기에 싸 놓고 마저 짜지 못한 베를 마무리 하려고 베틀에 올라앉으니 마침 우리 집에 찾아왔던 당숙모님이 말리고 난리도 아니었지. 일 욕심에 그렇게 미련했다니까."

 

어렵게 얻은 귀한 딸자식. 그러나 여덟 살까지 말을 하지 못해 엄마가슴을 무던히도 졸이게 했다.

 

"그게 말을 하지 못해서, 영 말 못하는 애로 사나보다 했는데 여덟 살에야 말문이 터지는 거야. 그러더니 그담부터는 말도 잘하고 영리하게 잘 자라더라구."

 

갑자기 여덟아이의 엄마가 되다

 

딴집 살림을 하는 남편이 집으로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 작은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 사이에서 낳은 일곱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심지어 남편은 아편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 상태였다.

 

"남들이 이상하다고 했어. 후처의 자식이면 의당 미워해야 정상인데 나는 그 아그들이 그렇게 이쁘더라구. 아그들도 어릴 적엔 나를 큰어머니라고 부르며 잘 따랐고. 아그들을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했네."

 

갑자기 여덟아이의 엄마가 된 할머니는 열 식구 먹고 살 것을 벌기 위해 생선 대야를 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생선 백근을 다라이(대야)에 이면 모가지가 부러질 것 같아. 냄새 난다고 버스도 태워주지 않고 오일장까지 20리길을 걸어가다 보면 중간 중간 모내기 나온 이웃들이 짐 덜어 준다고 생선 한 뭉치씩을 내려놓고 가라고 해. 그땐 사람들 인심이 그랬어."

 

 

식구가 열이나 되다보니 생선을 팔아서는 먹고 살기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큰 아이부터 아래로 줄줄이 다섯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니 아이들 월사금 내는 것도 큰일이었다.

 

"큰 아이 월사금을 주고 나니 아래로 네 아이 줄 월사금이 없는 거야. 아무리 궁리를 해도 돈 나올 구멍은 없지. 그래서 독하게 마음먹고 징역을 살 작정을 했어. 이웃 아제한테 가서 나무 벨 톱을 빌려 달래서 집 앞 작은 섬에 오른 거지. 그때는 목재가 귀하던 때라 나무를 잘라 팔면 분명 돈이 될 거라 생각했네."

 

해도 뜨기 전인 어슴프레한 새벽. 남 몰래 산에 오른 할머니는 숨도 쉬지 않고 나무를 베었다. 나무를 베어 아이들 학비를 마련할 생각에 힘든 것도 무서운 것도 몰랐다.

 

"나도 간도 크지. 두 아름이나 되는 25척 짜리 나무 160주를 베어 팔았어. 베어 놓고 수소문을 하니 나무장사가 금방 와서 실어 가더라구. 그렇게 해서 다섯 아이 월사금을 다 내주었는데 얼마 후에 형사들이 날 잡으러 왔더라구."

 

경찰서에 잡혀간 할머니는 순순히 자신이 불법벌목을 했다고 자백했다. 열 식구에 학생만 다섯인데 월사금을 내지 못해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 둘 판이라 징역 살 각오를 하고 불법 벌목을 하게 되었다고, 잘못한 걸 알고 있으니 순순히 징역을 살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잡혀가는 순간 '이제 징역을 사는구나' 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 조사를 마친  경찰관이 나를 파출소 옆 숙소같은데 데려다 놓더니 국밥을 한 그릇 시켜주네. 밥을 주고 징역을 살게 하는구나 생각하고 배고픈 김에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택시를 불러 우리 집까지 날 데려다 주라고 해."

 

징역을 살 각오로 순순히 경찰을 따라 갔지만 할머니의 자식사랑에 감동을 받은 경찰은 할머니를 구속시키는 대신 잘 대접해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던 것이다.

 

"경찰이 날 보내면서 주머니에 봉투를 하나 꾹 찔러주기에 벌금 내라는 통지서인가 하고 조카에게 읽어봐 달라고 했지. 그래서 조카가 봉투를 열어보곤 깜짝 놀라는거야. 만 원짜리 지폐가 나왔거든."   

 

그 뒤로 얼마 후 할머니는 또다시 경찰서에 오라는 통지를 받는다.

 

장한어머니, 그러나...

 

"이번엔 진짜 벌금을 내러 오라는 줄 알고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3만원을 만들어 들고 갔네. 그런데 이번엔 서장님이 나에게 장한어머니상을 주시더라구. 애들 키울 땐 해남에서 장한어머니 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니까."

 

후처와 남편 사이에서 난 일곱 아이들을 자신이 낳은 자식만큼이나 애지중지 최선을 다해 키워왔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금 할머니는 외로운 독거 상태이다.

 

"남편 죽기 얼마 전부터 그렇게 집안에 분란이 나더니 남편 죽고 난 후로 작은 사람이 낳은 일곱 애들하고는 전혀 왕래가 끊겼어. 내가 낳은 딸도 얼마 전 이혼한 후로는 충격을 받았는지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내가 무슨 죄가 많아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죽지도 않고 오래 살면서 이 모진 풍상을 겪으니 이게 무슨 팔자인지 몰라."

 

잠깐 신세 한탄에 빠졌던 할머니가 당신 재산은 이것 뿐이라며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해둔 수의를 꺼내 보여주신다.

 

"이거 내 환갑 때 내가 직접 길쌈하고 바느질해서 만든 수의야. 혼자 살지만 누구든 내가 죽으면 수습을 해야 할 것 아니겠어. 마지막 가는 길에 입을 옷도 얻어 입고 가긴 싫으니까."

 

할머니 수의는 명주나 삼베 짜임이며 바느질 솜씨까지 전통 공예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빼어났다. 반평생 넘게 베틀에 앉아 길쌈을 하며 살았지만 모두 먹고 살기 위해 내다 팔았을 뿐 정작 당신을 위한 명주옷은 단 한 벌도 지어본 적이 없다는 할머니.

 

환갑이 되어서야 비로소 살아서 입을 것도 아닌 저승 가는 길에 입을 명주옷을 장만한 것이다. 윤기가 흐르는 명주 수의를 어루만지는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곱게 접어놓은 수의 속에 오래된 듯 보이는 종이조각이 끼어 있다. 주머니나 봉투를 떠올리게 접어놓은 종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저승 갈 때 신고 갈 신발이란다.

 

"그거 저승 갈 때 신고 갈 내 신발이야. 열 일곱 살 시집올 때 가져온 혼서지로 만든 거지."

 

혼례에 앞서 신랑 될 사람의 아버지가 신부 집으로 보내는 짧은 서간인 혼서지는 신부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물목 중 하나였다. 그것을 가지고 가야만 저승에서도 이부종사를 하지 않고 이승에서 살던 남편과 다시 만나 부부로 해로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고운 명주옷 입고 열일곱 시집갈 때 받은 혼서지로 신발을 접어 신고 훨훨 저승 가는 날을 기다린다는 할머니. 하지만 준비된 할머니의 죽음에 비해 살아계신 할머니의 삶은 외롭고 초라하기만 하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해 스스로 생계를 챙겨야 하는 할머니. 이쯤 되면 정부에서 도움을 드려야 하는 게 아니냐고 동행한 사회복지사에게 물으니 할머니 호적에 작은 부인이 낳은 일곱 자녀를 포함한 여덟 명 자녀들이 올라 있기에 당장 먹을거리, 땔거리가 없어도 정부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살고 있는 집마저 재개발이 되어 비워주어야 할 처지라는 할머니가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날 지 막막하기만 하다.

 

김종예 할머니는?
서대문구 남가좌동 200/10만원 단칸방에 거주. 재개발이 확정되어 시급히 집을 비워주어야 하지만 집을 옮길만한 능력이 되지 않음. 수입은 매월 노인연금 8만4000원과 후원금 5만원이 전부이며 매달 월세 10만원을 내야하기 때문에 다른 지출은 엄두도 내지 못함.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3회 도시락 배달을 받아서 그것을 아껴 먹으며 지내는 터라 영양상태가 극히 좋지 않음. 

덧붙이는 글 | * 어르신들 친구가 돼주세요. 

이 글을 읽고 어르신들에게 답글을 보내주세요. 사회복지법인 우양(www.wooyang.org/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60-1, 02-324-0455)으로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주시면 어르신들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한 끼 식사보다, 하루 잠자리보다 더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후원은 사회복지법인 우양으로 부탁드립니다 


태그:#김종예할머니, #독거노인, #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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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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