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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동거는 작년 이맘때 결정했다. 그는 부산, 나는 충남으로 피차 타향살이하는 처지였다. 그는 학우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당선한 새 총학생회장이었고, 나는 선거 기간 그와 함께 강의실을 방문하던 선거운동원이자 비서였다.

작년 이맘 때 총학생회 선거 운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
앞줄 두 사람이 기자와 박해선 의장이다.
 작년 이맘 때 총학생회 선거 운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 앞줄 두 사람이 기자와 박해선 의장이다.
ⓒ 김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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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출범한 '운동권' 총학에 대한 학우들의 기대는 컸고 함께 새로운 총학생회 건설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같이 살 집을 구하기로 했다. 어차피 총학생회 일을 하게 되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많을 거고, 대부분의 생활은 학생회실에서 이루어질 테니 두 사람의 몸을 겨우 누일 작은 방을 구했다. 학교 근처의 저렴한 옥탑방이었다. 그렇게 나는 숙명여대의 41대 총학생회장이자 '21세기 한국 대학생 연합(이하 한대련)'의 서울지역 의장인 박해선(24·숙명여대 영어영문 05)과 같이 살게 되었다.

공안 탄압이 갈라놓은 우리

하지만 우리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같이 살게 되면 마찰이 생기고 만다는 자취의 진리에 굴복한 건 아니었다. 우선 내가 총학생회 건설준비위원회를 그만두게 되었다. 당선의 기쁨이라는 '약발'이 떨어지고 나자, 이 조직과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결국 나는 선배들과 마찰을 빚으며 그동안 몸담았던 모든 조직을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총학생회의 일과 생활은 또 다른 문제이며, 박해선 의장과 나는 함께 운동하는 동지이기 이전에 친한 언니 동생 관계였기 때문에 한동안은 동거를 지속했다. 하지만 동거는 다른 이유로 100여 일 만에 끝났다.

박해선 회장이 서울지역 대학생 연합(이하 서울대련) 의장이라는 '거물'이 되자 공안 탄압의 손길이 뻗쳐 온 것이다. 게다가 활동비가 워낙 많이 들어 집세를 분담하는 것도 힘이 드는 지경이라 했다. 생활하기는 불편하지만 경찰을 피할 수 있고 따로 비용이 들지 않는 학교에서 지내게 될 예정이라며, 그는 나를 떠났다. 언제 경찰의 불심 검문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는 4월 이후 집 근처에 절대 얼씬하지 않았고 짐도 다른 총학 집행부원들이 와서 가져갔다. 과거, 총학생회장 당선은 곧 수배였다는 선배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올 것이 왔다

예상대로, 집에 뭔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옥탑방에 계속 살고 있는 내 주소지는 충남의 본가로 되어 있었지만, 박 의장의 주소지는 우리가 함께 살던 용산구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편물이 이쪽으로 배달된 것이다.

우편물은 용산경찰서에서 보낸 법정 등기였는데, 법정 등기는 수취인 본인만 받을 수 있는데다 등기가 왔을 때 집에 내가 없었기 때문에 수령하지 못했다. 집 앞 우편함에 등기우편물을 수령해 가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올 것이 왔구나' 짐작했다. 그게 5월이었다. 이후에도 똑같은 스티커가 집 앞에 서너 번 붙어 있는 걸 보았고 나는 매번 그걸 총학생회실에 갖다 주었다.

전국 대학생 대표자에 대한 탄압 주요 현황 (2009년)
 전국 대학생 대표자에 대한 탄압 주요 현황 (2009년)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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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된 우편물은 경찰의 소환장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즈음 한창 물이 오르던 경찰의 대학생 대표자 탄압 분위기를 고려하면 자명하다. 박 의장은 법정 등기를 수령하지 않았고, 경찰 소환에 3번 불응한 죄로 수배된 상태다.

총학 임기 끝났지만... "휴대폰 지지직거릴 때 불안해"

총학생회실에서 만난 박해선 서울대련 의장. 삭발했던 머리가 이젠 많이 길었다.
 총학생회실에서 만난 박해선 서울대련 의장. 삭발했던 머리가 이젠 많이 길었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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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실로 전화하는 우회적 경로를 통해 옛 룸메이트를 다시 만났다. 도청의 우려 때문에 휴대폰으로 직접 연락할 수 없었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가?
"알다시피 대개 학교에서 살았다. 외부 출입은 가급적 자제하고 있고 학교 밖에 나갈 때는 GPS 추적 때문에 휴대폰을 꺼 둔다. 부산 집에도 내려갈 수 없고, 매사에 조심해야 하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 다른 학교 대표자들도 많이 수배가 된 상태이고 연행을 당하기도 했는데, 아직 잡히지 않은 게 용하다. 얼마 전에는 지나가다가 학교 정문 앞에 경찰이 서 있는 걸 봤다.
"요즘 그런 일이 잦다. 실제로 얼마 전 덕성여대 총학생회장이 연행됐을 때도 경찰이 정문 앞에서 지키고 있다가 잡아간 것이었다."

- 불안하진 않나.
"물론 불안하다. 불편하고. 휴대폰이 자주 지지직거리는데 도청당하는 기분이 든다. 기분 탓일까. 수배된 뒤 한 달 동안은 거의 우울증에 시달렸다.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된다."

- 경찰이 대표자들을 잡아들일 때 '전문 시위꾼'과 같은 표현을 쓰던데, 당신은 전문 시위꾼인가? 내가 아는 박해선은 작년 여름 우연히 광화문을 지나가다가 촛불바다에 합류한 뒤 학생운동을 시작한 '운동 새내기'인데.
"(웃음) 맞다. 서울대련 의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갑자기 거물이 되어 버린 거지. 사실상 대학생 대표자들에 대한 탄압은 한대련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7월에 건대 대표자 3명이 잡혀갔을 때 경찰은 한대련 간부 3명을 검거한 것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그 당시 건국대는 한대련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은 한대련을 과거 한총련과 같은 것으로 여겨 씨를 말리려는 것 같다."

- 그 건대 대표자가 연행됐던 여름방학 무렵에 집에 경찰이 자주 찾아왔다. 불심검문을 당하기도 했다. 얼떨결에 신분증을 보여줬는데 '박해선'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그냥 가더라.
"우선 미안하다. 여름 즈음에는 경찰이 좌익사범 검거 '100일 작전'이라고 해서 어지간히도 잡아들였다. 2006년도에 서총련 의장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생활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까지 잡아갔다."

- 한동한 뜸하던 경찰이 연말이라 그런지 요즘 또 자주 온다. 전화번호를 묻더라. 불안해서 아예 휴대폰에서 전화번호를 지워 버렸다.
"이미 내 전화번호는 알 텐데? 용산서에 숙대 관할 형사가 있고 내 담당 형사도 따로 있다. 벌써 몇 차례나 전화를 걸어왔다. 출두하라고 하더라."

- 아마 전화번호를 물어본 것은 용산서 외에 다른 지역 경찰서인 모양이다. 전산망에 수배자 명단이 뜨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다 알고 찾아오는 것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잡히면 어떻게 되는 건가?
"건국대 총학생회장이 잡혔을 때 홍제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는데, 관련된 채증 자료와 서류가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고 전했다. 나에 대한 자료도 아마 그 이상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취조를 받고 며칠 후 풀려날 가능성이 크다. 잘못하면 구속될 수도 있고."

"경찰 소환 불응은 투쟁의 일환... 운동가의 삶이 제일 평범"

2009년 1월 31일, 서울대련 전체 학생 대의원 회의에서 4기 의장으로 선출된 박해선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2009년 1월 31일, 서울대련 전체 학생 대의원 회의에서 4기 의장으로 선출된 박해선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 허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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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자진 출두하는 것은 어떤가? 이틀 고생하고 나면 수배자 신분을 벗을 수 있지 않나.
"우리가 선거를 투쟁이라고 하듯이, 경찰 소환에 불응하는 것도 투쟁의 일환이다. 아마 풀려난다 해도 활동을 계속 하다 보면 또 수배가 될 일이 있을 것이다."

- 죄목이 정확히 뭔가? 사실상 총학생회 임기도 끝났는데 수배는 풀리지 않는 건가?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부산 집에 도착한 문서에는 도로교통법이라고 되어 있었다고 한다. 임기와 관계없이 수배는 아마 풀리지 않을 것이다. 계속 학교에서 지내야 할 것 같다."

- 평범한 대학생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 내가 아는 박해선은 아이돌 연예인 좋아하고, 치장하는 것도 즐기는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운동가의 삶이 제일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운동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가장 인간미 있는 삶의 모습이다. 만만한 생활은 아니지만 나는 스스로 만족하기 때문에 이 길을 걷는다."

- 한 사람의 학생운동가로서 지향점은 뭔가.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등록금 문제나 대졸 초임 삭감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대학생 계층 자체의 힘이 약하다. 이러한 계급적 힘이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학생회의 혁신과 한대련의 세력 확장이 필요할 것이다."

총학생회실 한쪽에는 얼마 전 구입했다는 이층 침대가 놓여 있었다. 박 의장과 집행부원들이 좀 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총학생회실 한켠에 놓여진 침대. 여기서 먹고 자고 하는 모양이다.
 총학생회실 한켠에 놓여진 침대. 여기서 먹고 자고 하는 모양이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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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기사로 압박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나보다 박 의장은 더 담담했다. 다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했다. 올해 졸업했어야 할 4학년인 박 의장은 학생회 활동을 하느라 졸업학점을 채우지 못했다. 내년에는 휴학을 하고 계속 학생운동을 해 나가겠다고 한다.

며칠 전에도 집에 경찰이 왔다 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보고 계실 각 경찰서의 형사 여러분,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박해선씨는 더 이상 저와 함께 살지 않습니다. 저도 곧 이사 가니까 이제 찾아오지 말아 주세요.



태그:#한대련, #대학생대표자, #수배, #서울대련, #공안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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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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