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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전주한옥마을에서 전주 축제의 발전방향에 관한 전문가 토론회가 있었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한옥마을 투어 일정까지 생략하며 함평나비축제와 보령머드축제의 성공사례에 귀 기울이는 등 진지한 고민이 꽤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토론이 길어지면서 답답함은 더해갔다. 초청전문가들의 진단과 처방은 나름 명쾌했지만 이 지역의 고유한 특성에 대한 치밀한 고려가 없어 큰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함평과 보령의 예도 '저돌적인 마케팅'을 제외하고는 거의 본받기가 어려운 '다른 나라 얘기'였다. 이 지역 참여자들의 토론도 '맥'이 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의가 이 지역 특수 상황을 내세운 변명 수준에서 맴돌고 있었다.(더욱 안타까운 일은 그나마 이 지역 축제 관계자들의 참여가 극히 저조했다는 것!)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일까? 답이 없어서? 문제를 잘못 제기했기 때문에? 말하자면 우문에 현답을 바라고 있는 꼴이어서? 그야말로 '어리석은 질문'이 꼬리를 물면서 갑갑증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음악 공연 횟수가 서울보다도 더 많은 곳에서 판소리를 중심으로 한 축제가 과연 주민들의 '일상의 탈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공연을 직접 보러가지 않더라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안숙선이나 왕기석 같은 명창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주민들이 소리축제가 마련한 그 어떤 판소리 공연에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매일 한옥마을 어딘가에서 한지제작이나 한지공예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는 마당에 한지문화축제는 과연 어떤 프로그램으로 주민들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한집 건너 비빔밥집인, 그래서 평소에는 외지 사람들이 손님으로 찾아왔을 때에나 울며 겨자 먹기로 그곳을 찾을 정도인 전주 사람들에게 비빔밥 축제는 또 무슨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외지 관광객을 위한 것이라고? 그러면 바로 '주민들의 참여 저조'라는 '딱지'를 받을 것이다. 판소리나 한지, 비빔밥이 아닌 다른 것에 중심을 두면? '정체성 상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고.

 

이래저래 축제 관계자들로서는 난감할 뿐이다. 애초 이런 조건을 모르고 참여한 것은 아니겠지만, 정체성도 살리고 주민들 참여도 이끌어내고, 거기에 관광객 유치와 경제적 효과까지 거두는 일은 분명 손오공의 여의봉으로도 버거운 일이다. 예산 생색으로 애햄 거리는 정치권이나 흠집 찾기에 더 열심인 듯한 언론, 손 하나 거들지 않고 평가의 자만 들이대기에 골몰하고 있는 소위 전문가들의 등살에 축제 자체의 기획 추진에는 힘을 싣기조차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공공예산을 쓰면서 평가를 피할 수는 없는 법. 길은 평가지표를 다양화, 현실화하는 것일 터인데 아무리 그래봤자 창의성 말살하는 공교육 일제고사 꼴을 면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독창성이 생명인 문화예술 관련 분야에서.

 

토론회 뒤풀이 술맛이 영 개운치 않다. 전주 같은 곳에서는 축제수준의 행사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축제에 너무 큰 비중을 두지 않아도 될 것이다. 멀리서 오신 전문가 선생님이 위로랍시고 말을 건네는데, 그것이 꼭 축제 자체를 포기하라는 말로 고깝게 들리는 것이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침. "몬트리올은 1년 내내 축제 중" 기사가 계시처럼 어느 일간지 문화면 하나를 온통 차지하고 있다. '철수어머니 생일 축하 축제'가 있을 정도로 축제가 일상화 된 곳. 어느 특정한 것에 매달리지 않고 종가집 제사 치르듯 다양한 축제를 일삼아 즐기는 것, 거기에 전주의 길이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파리나 뉴욕에 무슨 축제가 있었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북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주, #축제, #전통문화, #전주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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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주를 가장 한국적인 도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가 살아숨쉬는 곳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마이유스를 통해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살기좋은 전주의 모습을 홍보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제가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보내주는 음악편지도 연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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