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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는다. 고개를 숙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진심을 담는다. 한 배, 한 배 회가 거듭될수록 이마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다리는 힘이 풀린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은 시야를 가리고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은 눈을 따갑게 한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나 두 손을 모은다.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오후 2시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 선고가 있는 날, 최상재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하는 만 배 시위를 이어갔다. 

 

"언론의 독립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소망을 안고 지난 1년간 언론악법을 막기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마지막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만 배를 다하게 됐습니다. 이제 국민의 소망과 상식, 법리에 따르는 헌재의 올바른 결정이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미디어법 권한침해는 인정, 무효청구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최상재 위원장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절차상 위법성을 헌재가 인정했고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라는 의미에서 우리들의 승리로 선언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주의는 헌재라는 기관이 지켜주는 게 아닙니다. 국민의 깨어있는 생각과 행동하는 양심만이 민주주의를 지켜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헌재 결정과 상관없이 언론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찬 투쟁들을 다시 국민들과 함께 진행할 것입니다. 만 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국민들께 약속드립니다."

 

언론 자유와 권력의 방송 장악

 

25일 오후 7시. 최상재 위원장은 다시금 언론의 독립과 민주주의의 회복을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대구비상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시국강연'에서 "미디어법은 현재진행형 의제"이며, "4대강 살리기, 세종시 논란, 용산 참사 사과 문제와 더불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했고, 시민들의 지지를 확인한 만큼 미디어법에 대한 재논의가 이뤄지기를 국회에 당부했다.

 

"무엇보다 시민들과 함께 싸웠다는 것이 가장 잘해온 것입니다. 앞으로도 정권에 맞서 우리가 언론, 민주주의를 지키며 싸울 수 있을 유일한 동력은 이것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문제라는 공감입니다. 전국에서 폭넓게 지지하고 참여해준 시민들이 우리의 소중한 성과입니다."

 

최 위원장은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판결에 대한 언론보도에 아쉬움을 전했다. 주요 언론 대부분이 '미디어법은 사실상 유효'라는 조선일보 · 중앙일보 · 동아일보의 보도틀에 휩쓸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다뤘다는 것이다. 그는 KBS를 비롯한 방송 뉴스에 대해 "권력을 감시하는 날카로운 보도가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KBS의 시사프로그램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용산 사태에 대해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1년 여 전만 해도 시사적이고 고발성 높은 프로그램을 종종 제작해왔던 <KBS스페셜>의 경우 용산 문제는 한 번도 방송하지 않았다. 

 

또한, KBS 1TV는 지난 22일 오후 K-리그 6강 플레이오프 인천과 성남의 경기가 열리는 시간에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 축사를 생중계했다. 지상파 방송을 통해 K-리그 6강전을 시청하고자했던 팬들은 '축구경기' 대신에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찬가'를 들어야 했다. KBS 1TV의 '4대강 편성'으로 축구팬들은 경기 초반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최상재 위원장은 KBS 1TV의 '4대강 편성'이 방송 편성에 권력이 침투한 방증이라고 설명하며, 지난 24일 취임한 김인규 KBS 사장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대통령의 특보를 했다는 것은 그 대통령이 속한 정당의 강령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공영방송 사장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겉으로는 '공영방송 사수'라 외쳐도 결국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입니다. 설사 개인적으로 공영방송을 사수하겠다는 다짐이 있다하더라도 대통령의 특보 출신이 공영방송 사장자리로 간다는 것은 국민과 언론에 대한 예의라 할 수 없습니다."

 

"김인규 KBS 신임 사장이 내건 수신료 인상 문제는 'KBS 내부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열쇠'입니다. 25년째 동결인 수신료 인상안을 통과시킨다는 것은 자신에게 등을 돌린 사람들을 내편으로 포섭시키기 위한 술책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수신료 인상은 사실상 국민의 세금을 올린다는 것으로 예전처럼 대대적인 수신료 거부 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MBC의 경우도 KBS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보도분야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발행한 민실위보고서에서 비판이 실종된 청와대 뉴스, 장밋빛 일색의 경제정책 보도, 기업홍보의 우려를 낳을 수 있는 기업뉴스를 예로 들며, MBC뉴스를 비판했다.

 

언론 투쟁은 새로운 시작

 

최상재 위원장은 언론 투쟁이 새로운 시작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보도와 관련된 부분에서 날이 무뎌지고 있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건강한 언론을 위해 내부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어렵고 불편한 일이더라도 분명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언론사마다 저항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하거나 눈치보기를 하는 언론사, 언론인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습니다. 국민들의 지지와 함께 하려면 각 언론사 내부에서도 보도와 관련한 내부 구성원들의 문제제기가 강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언론은 권력입니다. 시민들이 권력을 준 이유는 공정하게 보도하라는 것입니다.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를 감시하라는 것입니다. 비판 없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한편, 최 위원장은 26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예정된 KBS 노조의 파업 찬반투표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KBS 노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찬반투표와 총파업에 앞서 "국민에게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KBS 노조는 파업이 가결되면 다음달 3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태그:#최상재, #전국언론노조위원장, #미디어법, #김인규, #KBS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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