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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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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서울대가 이렇게 가볍게 움직여도 되는가. 정말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서울대가 권력 뜻에 따라 이리저리 함부로 이사 다니는 집단인가. 민주적 절차도 없고, 원칙도 사라졌다. 대학생 자취방 옮길 때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만난 한 교수의 말이다. 이 교수는 "요즘 서울대학이 너무 가벼워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서울대가 경거망동하고 있다"는 말까지 꺼냈다. 경거망동이라니? 흔한 말이지만 포털사이트를 통해 그 뜻을 다시 확인했다.

'경솔하여 생각 없이 망령되게 행동함.'

이 교수가 경솔하게 던진 말일까? 물론 다소 과격한(?)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24일과 25일 서울대에서 만난 교수와 학생들의 심정 역시 비슷했다. 세종시 논란 한복판에 서 있는 서울대의 겉모습은 평화롭다. 하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부글부글 끓는 학내 민심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너무 가벼워진 서울대,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많은 서울대 구성원들은 "민주주의와 대학의 품위를 실종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왜 이런 불명예스런 말들이 나오는 것일까. 최근 '핫 이슈'로 부상한 서울대 논란을 순차적으로 살펴보자.

강태진 서울대 공대 학장 세종시 제2캠퍼스 추진 발언.(11월 5일)
서울대 경영대 역시 제2캠퍼스 추진 계획안 대학본부에 제출했다는 보도.(11월 16일)
교육과학기술부 서울대에 '세종시 제2캠퍼스안' 제출 요구.(11월 19일)
서울대 '세종시 특별대책위원회' 꾸려 첫 회의 개최.(11월 20일)
서울대 법인화와 세종시 제2캠퍼스 설립 '빅딜' 설 등장.(11월 24일 오전)
이장무 서울대 총장 "빅딜은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11월 24일 오후)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보면 서울대 세종 캠퍼스 설립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서울대의 공식 견해는 "정부의 기본 방침이 발표돼야 구체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계속 커지자 이장무 총장은 24일 전체 교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세종시 논의에서 서울대 새 캠퍼스와 법인화를 연계, 물밑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추측성 보도는 매우 유감스럽다"며 "물밑 협상은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행위"라고 강조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 첫회의에서 세종시 민간합동위원회 운영 방안 및 향후 계획에 대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 첫회의에서 세종시 민간합동위원회 운영 방안 및 향후 계획에 대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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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 총장은 "지난 19일 학장회의에서 논의된 것처럼 서울대는 아직 세종시와 관련해 공식 입장이나 대안을 설정하지 않은 상태"라며 "세종시 대책위원회는 캠퍼스 조성을 전제로 하는 추진위가 아니라 출처 불명의 정보가 난무하는 데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기 위한 자리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서울대 구성원들조차 이런 공식 견해를 믿지 않는 분위기다. 서울대가 세종시 논란에 휩쓸려 들어가고 '휘둘리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호문혁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은 "정치적 문제 타결을 위해 대학이 옮겨지고 새로 설립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며, 서울대 이전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호 교수는 "옮길지 말지는 정치권의 뜻이 아닌 학문적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그것을 바탕으로 서울대 전체 구성원들의 깊이 있는 논의와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흔들기 중심에 정운찬 총리가 있다"

학생들도 정치적 논란 해결을 위해 서울대가 이용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이치용(가명·법학과 2학년) 학생은 "학문 발전과 서울대학에 진정으로 필요해서 제2캠퍼스가 추진되는 게 아니라, 세종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서울대가 움직이는 건 문제가 있다"며 "정치권력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대학이 너무 권력의 요구에 따라 충실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는 장수현(가명·28)씨 역시 "정부의 요구에 맞춰 일부 단과대학이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는 게 불편하다"며 "장기적인 발전 계획에도 없던 갑작스런 세종 캠퍼스 설립 추진은 대학이 하는 일 치고는 너무 가볍고 민망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많은 이들은 "서울대 흔들기 중심에는 정운찬 총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대 전 총장이었던 정운찬 교수가 총리가 된 뒤 서울대가 세종시 논란에 휩쓸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일보>는 24일자 신문을 통해 "이장무 총장-정운찬 총리의 17일 전화통화 후 (서울대 세종 캠퍼스 설립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고 보도했다.

정 총리는 지난 21일 중소기업인들과 관악산을 오르며 "사람이 간사해서 생각이 바뀐다"며 정원 증원을 통해서라도 서울대의 세종 캠퍼스 설립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정 총리가 서울대 총장이던 2004년 2월 6일 <교수신문>과 인터뷰에서 밝힌 한 대목을 보자.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 경쟁력을 높이고 우수 인재 육성을 위해서 정원 규모를 줄여야 한다. 대학의 효율성을 높이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창의적이고 다양한 사고를 지닌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유수 대학의 정원 규모를 감축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간사해서" 그런지, 어쨌든 지금 정 총리의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세종캠퍼스를 희망하는 서울대 일부 단과대학의 욕망은 이런 정 총리의 생각과 궤를 함께한다. 공대, 경영대, 의대, 치과대 등 이른바 '돈 좀 되는' 단과대는 세종캠퍼스를 정원 확장의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한 서울대 교수는 "일부 돈 되는 학과의 교수들이 학자의 품위마저 버리고 돈과 권력을 좇고 있다"고 꼬집었다. 

"MB맨 양윤재의 교수 복귀는 서울대의 굴욕"

양윤재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자료사진)
 양윤재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자료사진)

또 많은 서울대 구성원들은 'MB맨' 양윤재 전 서울시부시장의 서울대 복귀 추진을 '굴욕'으로 바라보고 있다. 양 전 부시장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일하다 2002년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으로 발탁돼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03년 12월 부동산개발업체에게 4억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 기소돼 징역 5년형을 받았고,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 때 복권됐다.

이런 양 전 부시장은 최근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기금교수직 공채에 지원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양 전 부시장이 다시 서울대 교수직함을 얻는 건 시간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요즘 서울대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됐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며 "세종 캠퍼스 설립 논란, 양 전 부시장 복귀 추진을 보면서 서울대가 너무 권력에 순응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교수협의회 소속 서울대 교수들은 24일 모임을 열고 일련의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 캠퍼스 설립 논란, 서울대 법인화 빅딜 설, 그리고 대통령 측근 인사의 교수 복귀 추진까지. 서울대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서울대 교수 정운찬이 총리가 된 이후 벌어졌다. 세종시 논란이 한창이니, 서울대에 바람이 잠잠해질 날도 멀어 보인다.


태그:#서울대,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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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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