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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아들이 어설프게 말을 따라합니다. 자식이 하나인 저희 가족을 마주하는 동네 이웃들은 천진한 아이를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나서 한 마디 덧붙입니다.

 

"하나 더 낳아야지."

"뭘~ 하나만 잘 키우면 되지."

"한아(아이이름). 동생 좀 낳아 달라 그래."

 

아이는 엄마아빠 말도 잘 듣고 순한 편입니다. 다른 집 아이들을 보다가 집에 들어오면 부부가 입을 모아 우리 아들은 참 순하고 착하다고, 자찬 분위기에 젖기 일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일년 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 둘째를 갖는 것입니다.

 

둘째 계획, 아내가 속내를 드러내다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 고모가 할머니를 통해 전한 말이 두고두고 뇌리에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몸이 좋지 않으니 하나만 낳아 잘 키우라는 이야기를 당부처럼 하셨거든요. 당시로서는 충격이었고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 둘 다 어떤 종교나 미신에 구속되지 않은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 사주팔자를 기반으로 한 당부는 점점 퇴색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는 딸을 낳아보자라는 신념을 가지고 몇 차례 시도(?)를 해 보았지만 열정이 부족했는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유산도 한 번 했죠.

 

그리고 나서 최근 아내가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임신을 하려니 출산 전후의 고통이 떠오르고 1년여를 꼬박 잠 못 자고 아이 옆에 내내 붙어서 젖 먹이는 일 등이 자신없어진다는 겁니다.

 

또 젖을 먹이는 동안 그 좋아하는 커피나 맥주 등은 전혀 입에 대지 못하는 것도, 친구 만나러 가기도 힘들다는 것도, 또 애를 데리고 어디 놀러가기도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기에, 막상 둘째를 갖게 되면 편안해진 지금이 무척이나 그리워질 것이라는 거죠.

 

아이의 육아 문제에 있어 시골이라고 도시와 크게 차이를 보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도시의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로는 아이를 낳기 싫은 것이 아니라 빌어먹을(?) 환경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다는 주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출산 원인? 빌어먹을 세상 때문이지

 

저를 포함해서 네 명의 신선한(?) '아버지'들은 각기 다른 환경과 사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고(연봉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아이를 하나 이상 낳아 기르고 있다는 점이 같다고나 할까요.

 

"출산 초기 산후조리 도우미를 200만 원 정도 주고 2달 정도 쓰다가 장모님께 애를 맡겼어. 하지만 장모님이 점점 힘들어하셔서 결국 '베이비시터'를 150만원 정도에 구했지. 돈은 들어가지만 우리는 부부가 다 힘 닿는 데까지 낳을 거야. 물론 그 힘이 언제 다하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자식이) 둘이잖아. (부부) 둘 다 셋째에 대한 생각은 있지. 문제는 일단 육아비야."

 

"난 안 낳을 거야. 솔직히 지금 하나도 미안해 죽겠어. 형제, 남매 짝을 이뤄주는 것도 좋지만 우리나라 현실이 아이들이 성인일 때, 지금의 입시, 육아환경 등 어느 하나라도 나아질까? 어두워. 지금 상황에서는 욕심이지 싶어. 미안해. 자식한테.(원샷)"

 

"나는 더 낳고는 싶은데 너희 형수(일동 '재수씨'로 교정하라고 소란)가 반대해. 나는 애들은 나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키울 수 있다는 입장인데, 처는 지금도 너무 힘들다고 해."

"뭐가 힘들대?"

"일단 아기 때는 개인적인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 으~음. 그리고, 남편이 직장일로 바쁜 경우는 온종일 혼자 애들과 같이 지내면서 외로운 투쟁 속에 남겨진다는 것. 또 임신 중 음식조절 및 낳고 나서도 카페인 알콜 등의 기호식품(?)을 접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담배도 넣어야지. 하하."

 

"가정과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사명으로는 극복이 안 될까?"

"하하하(개나 줘버려!)"

 

더 낳을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 각자의 이야기를 내놓은 친구들. 현재 대한민국의 복지시스템이 아이를 낳으면 전혀 돌봐줄 여력이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래서 둘이 벌어도 빠듯한 살림에, 능력있는 여성들이 직장대신 육아를 선택합니다.

 

그 길은 잘나가는 동료와 비교되는 우울함의 덫을 피하기 힘듭니다. 그 '우울함'이 아이에게 전달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의 얼굴을 보면 기쁘고 사랑스럽지만 '하나 더'에 대한 부담은 생활의 작은 것이라도 신경이 쓰이고 크게 확대하게 해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시점에 매번 등장하는 선진국과의 출산율 비교는 별로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셋째를 낳으면 1000만원을 준다는 이벤트성 마케팅에서 공공기관의 공허한 '인구늘리기' 철학을 봅니다.

 

이런 시점에 먼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의 부족함은 결국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젊은이의 경우 훗날이 될 자신의 미래, 중년인 경우 자식의 미래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좀 더 나은 길로 함께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여자 마음만 바꾼다고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까

 

정작 "많이 낳는 사람이 애국자여"라는 공치사나 할 줄 알았지, 어떻게 하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회가 될지는 아무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지금 '육아문제'는 어느 한 곳만 건드려서 해결될 소지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떠신가요. 노력해 보셨나요? 당신의 부하 여직원의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임신 후 쉬는 것에 대해 당연한 권리임을 인정해주며 쉼 후 복귀 때에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아줄 수 있습니까.

 

회사 내의 사무실 한쪽을 공사해서 모유 수유실을 만들고 더불어 건물 내에 직원의 아이들이 모여 놀 수 있는 공간과 도우미의 임금을 제공하는 건의를 정식으로 사장이나 임원에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당신의 아내는 이미 학부형이라 어떠한 이득도 없습니다만. 힘드시겠죠?

 

천문학적인 액수의 대학 등록금을 생각하면, 아니 그 이전에 좋은 점수를 받고 좋은 외국어 실력을 갖추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아이를 하나 더 낳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아이를 대학에 보내지 않고 자유롭게 키울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까? 아이에겐 선행학습비와 과외비가 투자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부모의 관심과 소통이 필요한 것임을 몸소 실천하실 수 있겠냐구요.

 

출산으로 국가 발전 이바지? 개나 줘버려

 

위정자들이시여. 그대들이 시작한 졸속 토목사업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 살고 있는 분들의 밥줄이 끊어지게 된 것을 아십니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급식만 기다리는 형편의 아이들이 수돗물로 배를 채우게 될 줄 아셨냐구요.

 

서민계층의 후생과 복지를 지원하지 않으면 백날 '현금'으로 애낳기를 권장해도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시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 더 낳아서 기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결국 '애국자'아 아니라 '레지스탕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알아두셔야겠군요.

덧붙이는 글 | 바쁜 와중에도 대화에 참여해 준 조일님, 김지용님, 이주현님께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태그:#출산, #출산율, #육아비용, #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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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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