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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선거철, 기자는 저 빨간 잠바들 중 하나였다.
 작년 이맘 선거철, 기자는 저 빨간 잠바들 중 하나였다.
ⓒ 최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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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였다. 계절에 맞는 장갑, 목도리, 칼바람, 어그부츠 이런 것들과 함께 나의 11월은 숙명여대의 총학생회 선거본부 '체인지'였음을 고백한다.

그 11월에 나는 붉은 잠바를 입고 길에서 첫눈을 맞았다. 오로지 '당선'만을 목표로 휴대폰 요금이 10만원씩 나오거나 말거나 지인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걸었고 수업은 뒷전으로 하고 유세와 강의실 방문에 매진했다.

갹출한 선거 비용이 모자라 홍보물을 찍지 못해 아고라에 글을 올려 하루만에 100만원 넘는 돈을 모금하기도 했다. 덕분에 아고라에서 살짝 유명세도 타게 되면서 모두가 숙대 선거에 관심을 가져 주었고, 선배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좀 우쭐해지기도 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한 끝에 당선이 됐고, 내 학점은 2점대가 나왔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올해도 역시 각 학교에서 새로운 총학생회를 위해 뛰는 팀들이 나왔다. 추위에 팔짱 낀 학우들의 손에 어떻게든 공약집을 전하려고 애가 탈 것이다. 쉬는 시간 10분에 강의실 하나라도 더 다니면서 학우들을 만나려고 50분, 아니 그 이상을 준비할 것이다. 학교 게시판과 재학생 커뮤니티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며, 여론을 살피는 과정에선 짧은 댓글 한 줄에도 일희일비할 것이다.

하지만 적게는 몇 천에서 몇 만에 이르는 대학의 전체 재학생을 대표하겠다는 선거본부의 당찬 포부에 비해 학생들의 관심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에 학교에서 선거운동원으로 뛰며 들은 이야기들 중 놀라웠던 건, 비판 혹은 차라리 비난조차 반가워하는 분위기였다. 안티팬도 팬이라더니,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욕이라도 먹는 게 낫다는 거였다.

실제로 매년 많은 학교에서 투표율이 50%에도 못 미쳐 투표기간을 몇 차례씩 연장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기간을 연장해도 투표율이 나오지 않으면 선거는 통째로 무산되고 3월의 재선거 전까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발동된다.

2008년도의 중앙대가 이렇게 운영됐었다. 작년 선거는 촛불집회 등으로 대학 총학생회의 역할이 재조명되면서 학우들의 관심이 높아져 주요 대학 가운데 이런 경우가 없었다. 숙대의 경우 다행히도 간편한 온라인투표 시스템 덕분에 투표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전통적인 방식의 오프라인 투표로 돌아간다면 그러지 않으리라고 큰소리는 못 치겠다.

평화를 상징하는 피스 마크
 평화를 상징하는 피스 마크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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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의 중요성은 비단 총학생회선거에서만이 아니라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서도 항상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꾸준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투표율 추세에는 변함이 없다. 진부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선거는 우리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한 해 동안 누가 학우들을 더 잘 대변하고, 누가 학우들을 위해 더 열심히 발로 뛰며, 누가 진정성 있게 학우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지는 판별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과정인 것이다.

지난 6월, 노무현 대통령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에서 사회자 권해효는 '나는 더 이상 광화문에 나가지 않겠다. 다만 투표를 열심히 하겠다'는 재치 있는 멘트로 갈채를 받았다. YB는 반전평화를 상징하는 피스 마크(Peace Mark)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왔는데, 기자의 눈에 이는 투표용지에 찍는 붉은색 인주의 도장 모양과 오버랩되어 보였다. 평화를 원한다면 투표를 해라, 인가.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나는 정치적인 것 싫어. 잘 알지도 못해'라는 식의 순결주의에 빠진 숱한 대학생들을 위해, 어느 책갈피에선가 스쳤던 인상 깊은 구절을 전하고 싶다.

'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은 성원들의 개인적 견해이다. 어느 누가 아무 견해도 없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정치란 꼭 무슨 무슨 당이 개입되고 국회에서 싸움질을 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각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학내 사안들의 조정이 바로 우리의 학내 정치인 것이다. 이유도 모르게 매년 치솟는 등록금에 분노하고, 학식이 좀 맛있어지면 좋겠다고 바라는 생각들이 바로 우리 대학생들의 정치적 견해다. 정치란 결코 남 일이 아니라, 매일같이 개개인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가장 기본적인 정치 참여의 방법인 선거에 꼭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싶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한 표'의 중요성을 통감하게 해준 일화로 글을 맺고 싶다. 전교회장선거였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득표가 동수였다. 3백 몇이었던 표 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번 후보와 2번 후보가 정확히 같은 수의 표를 얻은 것이었다. 전국에서 이러한 사례가 두 번째(두 번째라는 것도 놀라웠다) 일어나는 일이어서, 선례에 따라 생년월일이 뒤인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나 한 사람이 다른 후보를 찍었다면, 혹은 손을 삐끗해 도장을 잘못 찍기라도 했다면, 판이하게 달라졌을 결과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렸다. 누구를 찍어도 좋지만, 각 캠퍼스에 한창일 총학생회 선거에 꼭 많은 대학생들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자 적었다.


태그:#총학생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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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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