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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가 연일 기승(氣勝)이다. 인류의 어리석음을 벌하려는 섭리(攝理)의 발현인가? 돈(경제)과 권력(정치) 따위를 위해 자연을 거스르는 것으로 인간의 힘을 과시하는 여러 행태가 불러오는 재앙(災殃)의 하나일 터다. 외교나 무역 등 국제교류 또한 현자(賢者)들의 헌신(獻身)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재앙의 특질(特質)은 '가해자'는 소수이고 피해자는 대다수라는 점이다. 또 가해(加害) 행위와 피해(被害) 내용의 상관관계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 점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더 크고 결정적인 피해를 당하는 점도 그렇다.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성과'를 무색(無色)하게 하는 현상(現象)으로 세상의 본연(本然)을 가리키지만, 이로 인해 배움을 얻는 이가 드물다는 점도 재앙의 특질이다.

 

질병(疾病)은 희로애락(喜怒哀樂)과 함께 인생경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동반자다. 가볍고 무거움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건 피할 수는 없다. 흑사병(黑死病)이 역사에서 여러 차례 인류를 다그친 것처럼, 질병 특히 전염병은 전 지구적인 재앙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유가 있을 터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여 자연의 운행(運行)을 훼손(毁損)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면 그 뿌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생명의 여러 모습이 생긴 대로 소통하게 하는 것이 방법이다. 모두가 '나 먼저!'를 외우며 나서야 하는 일이다.

 

토막해설-병들어 누울 녁(疒)

사람[人]과 널빤지[爿]를 합친 회의(會意)문자다. 장(爿)은 침상 즉 침대로 읽으면 된다. 병 든 사람이 침상에 누운 모양에서 '질병, 의지하다'의 뜻이 됐다.

 

그러나 염정삼의 <설문해자주(注) 부수자역해>를 보면, 허신(許愼)을 주석(注釋)하여 유명한 청나라 학자 단옥재(段玉裁)는 이 글자의 爿 부분이 상(牀)자의 변(邊)이 아닐 수도 있다고 썼다.

 

이 녁(疒)자를 의미요소 즉 형부(形符)로 하여 병이나 상해(傷害), 또 그에 따르는 감각 등에 관한 문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이 경우처럼 이 글자가 부수자(部首字)로 쓰일 때의 이름은 '병질엄'이다.

 

'병상(病床)에 눕는다'고 한다. 아프다는 얘기다. 병상의 상은 이 상(牀)자의 속자(俗字)다. 이 글자에는 침상의 모양이 들어있다. 널조각 장(爿)자다. 너무 목(木)자를 중간에서 자른 모양으로 풀이된다. 그 나머지 절반도 조각을 뜻하는 편(片)이다. 두 글자를 합하면 나무 목(木)이 된다. 한자가 그림문자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글자다.

 

아파서 그 널조각 침상에 누운 인간의 모습이 병들어 누울 녁(疒)자다. 아프다. 슬프다. 불쌍하다. 외롭다. 그 원인이 어디 있던지 간에 병환(病患)의 인간은 동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 녁(疒)자는 질병과 관계되는 거의 모든 글자의 표지와도 같은 글자다.

 

질병은 아마도 인류의 시원(始原)과 나이가 같을 것이다. 이 병들어 누울 녁(疒)자는 병자가 침상에 누워 땀이나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그려진 갑골문(甲骨文)의 글자로 보인다. 아픈 이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관찰자(觀察者)'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질병이라는 단어의 병 질(疾)자와 그 이웃사촌 글자들이 대부분 녁(疒)자 '표지판'을 간판처럼 덮고 있으나, 이 간판 없이 '사람이 화살을 맞아 다치다'는 이미지의 그림으로만 만들어진 글자도 갑골문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음도 주목한다. 겨드랑이에 화살이 꽂힌 형상을 그린 것이다.

 

병들어 누울 녁(疒)자는 돌림병 등 감염이나 신체 내적인 원인에 의한 이상(異常)을, '사람이 화살을 맞아 다치다'는 이미지의 그림 글자는 전투나 작업 중에 입은 상처로 생긴 이상을 각각 의미해 두 단어를 서로 구분하려는 뜻이 아니었을까? 고대의 언중(言衆)들에게 '병든 인간'의 모습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질(疾) 병(病)자와 함께 이 글자는 돌림병 즉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병을 이르는 역(疫), 홍역 진(疹), 병의 성질을 이르는 증(症), 상처 이(痍), 흉터 흔(痕), 아파할 통(痛), 부스럼 창(瘡), 암 암(癌), 문둥병 라(癩) 따위의 온갖 아픔들을 표현하는데 활용됐다. 지칠 피(疲)도 이 부류에 속하니 이미 고대로부터 피곤(疲困)도 심각한 걱정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웬만큼 격식 갖춘 한자사전이라면 이 녁(疒)자를 얹은 글자의 합이 3백~4백개를 훨씬 넘는다. 동의보감(東醫寶鑑)과 같은 우리나 중국의 고대 의학서적을 보면 더 실감이 날까? 세상을 건너는 여러 지식과 지혜를 오래 보듬어 오롯이 간직해온 우리 말글의 한자와 한자어의 너르고 깊은 바탕을 다시 안다. 마음으로 얻는 것, 심득(心得)이다.

 

이 녁(疒)자와 질병을 없애는 것은 인류의 이상(理想)이다. 의학도(醫學徒)들의 염원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이 스스로[自] 그러하도록[然] 돕는 자연(自然)의 섭리, 생명의 철학을 모두가 북돋워야 하는 까닭이기도 할 터다. 재앙은 자연을 거스르는데서 비롯한다. 저 무참한 삽질이 부를 괴로운 필연(必然)을 저어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사회신문 한자교육원(www.yejiseowon.com)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신문의 논설주간으로 한자교육원 예지서원 원장을 함께  맡고 있습니다.


태그:#한자, #한문, #문자학, #갑골문, #신종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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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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