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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남 함양 마천에 있는 한 교회에 다녀왔습니다. 마천은 지리산에 있는 동네입니다. 지리산에서 부는 바람은 진주보다 훨씬 차가웠습니다. 하늘도 먹구름으로 가득 덮여 있어 왠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생초나들목을 지나 마천으로 가는 길에 나무 한 그루가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저 나무가 다른 동네에 서 있었으면 살아남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길 중앙에 서 있는 나무는 귀찮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리산 밑이라는 덕을 톡특히 보았을 것입니다.

생초에서 마천으로 가는 길 가운데 서 있는 나무
 생초에서 마천으로 가는 길 가운데 서 있는 나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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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 봄에 보았던 물레방아를 보았습니다. 그 때는 물레방아가 돌아갔는데 지금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아빠 물레방아가 돌아가지 않고, 멈췄어요. 봄에는 돌아갔잖아요. 왜 그래요?"
"응 봄에는 물이 많았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물이 없어서 돌아가지 않는 거다."

"물레방아는 물이 없어면 안 돌아가요?"
"그렇지 물레방아란 물이 방아를 돌린다는 말이야. 아마 내년 봄에는 다시 돌아갈 거다."

지난 봄에는 물레방아가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막둥이가 안타까워 했습니다.
 지난 봄에는 물레방아가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막둥이가 안타까워 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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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폐교 하나를 보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꼭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다 폐교되었기 때문에 폐교된 학교를 보면 더 마음이 아프고, 옛날 다녔던 학교가 기억납니다. 초등학교가 집에서 4km가 떨어졌었는데 하루에 2시간 이상씩 걸어다녔습니다. 아무도 없는 폐교는 정말 적막했습니다. 운동장이 풀이 난 것인지 풀을 심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푸른 운동장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누구 하나 뛰놀지 않았습니다. 이 학교는 1964년 개교하여 1992년에 폐교된 학교였습니다.

1964년에 개교하거 1992년에 폐교된 유림초등학교 화남분교
 1964년에 개교하거 1992년에 폐교된 유림초등학교 화남분교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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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몇 개가 덩그러니 서 있었는데 동상 하나에 눈길이 갔습니다. 두 사람이 앉아 책을 같이 읽는 것인지 아니면 읽어주는 것인지 몰라도, 정겹고 따뜻한 느낌보다 아무도 없는 폐교에서 두 사람이 쓸쓸해 보였습니다. 아마 폐교되기 전 아이들이 뛰놀 때는 책읽는 동상과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의 깊이 더했을 것입니다. 학교는 사라졌는데 동상은 그대로였습니다. 저 동상처럼 학교도 살릴 수는 없었을까요?

책읽어주는 사람? 이제 누구 하나 없는 쓸쓸한 교정입니다
 책읽어주는 사람? 이제 누구 하나 없는 쓸쓸한 교정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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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게시판을 보면서 마음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얼마나 많은 소식들이 이 게시판을 통해서 전달되었을까요?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게시판에서 보았던 내용들이 기억납니다. 아마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불조심 강조기간', '쥐는 잡는 날',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혼분식은 몸을 건강하게 합니다.' '오늘은 나무심는 날' '방학 기간 00부터-00까지' 같은 게시물이 게시판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게시판에 게시물을 게재할 선생님도, 게시물을 읽을 학생도 없습니다.

폐교 게시판. 이제 어느 누구하나 찾아오지 않습니다.
 폐교 게시판. 이제 어느 누구하나 찾아오지 않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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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녔던 초등학교가 울타리였습니다. 정말 정겨웠는데 이제 그것마저 사라졌습니다. 언제 담벽을 만들었는지 몰라도 처음에는 돌담으로 생각하고 좋아했는데 자세히 보니 돌과 흙으로 만든 돌담이 아니라 돌과 큰크리트로 만든 콘크리트 돌담이었습니다. 왜 시골에서 이렇게 만들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폐교 돌담길인데 자세히 보면 돌과 흙이 아니라 돌과 콘트리트입니다.
 폐교 돌담길인데 자세히 보면 돌과 흙이 아니라 돌과 콘트리트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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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흙으로 만들지 못하겠으면 나무 울타리로 만들면 되는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시골에도 나무 울타리와 돌과 흙으로 만든 돌담이 아니라 콘크리트와 돌로 만든 콘트리트담을 만든 그 때 그 사람들 머리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요? 그 삭막함이 바로 개교 28년만에 폐교를 선택한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빠 학교가 왜 이렇게 되었어요?"
"응 학생들이 적다고 없애버렸다."
"학생들이 적다고요?"
"응, 학교를 만들 때는 언제고 아이들 숫자가 적다고 학교를 없앴다. 아빠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없었졌다. 중학교도 없어졌어."
"아빠는 모교가 없어졌네요."
"그렇지. 그래도 아빠는 이런 학교가 마음에 든다. 우리 여기로 이사올까?"

"…."
"우리가 이곳에 이사오면 이 학교가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

아이들은 내키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내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이런 동네가 좋다면서 자기는 콘크리트 문화가 굉장히 싫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곳에 오자는 말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폐교는 생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돌아온다면 폐교는 생기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태그:#함양, #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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