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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줄을 맞춰 정렬된 의자들의 모습
▲ 정렬된 의자 각 줄을 맞춰 정렬된 의자들의 모습
ⓒ 박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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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당일보다 더 떨리는 날은 아마, 수능 전 날인 예비소집일일 것이다. 예비소집일이 되면 학교전체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학생들은 일제히 책상서랍을 비우고, 청소를 하고, 선생님들은 규정에 따라 교실을 정리하신다. 직접 준비하다보니 마냥 수능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음은 싹! 사라지고, 눈앞으로 다가온 현실임을 느꼈다.

고사장 준비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책상에 낙서 지우기이다. 책상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으면 안 되고, 붙여 있어도 안 된다. 각 반을 둘러보면 모든 학생들은 매직 블럭(낙서 따위를 지우는 스펀지)과 강력한 낙서제거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며 책상 낙서 지우기에 급급하다. 쓱싹쓱싹 소리와 함께 책상을 도화지로 생각했던 학생들은 아쉬움의 탄식을 하고, 책상은 제 모습을 되찾았다.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내던 책상들은 일제히 같은 모습이 되었고, 그 책상의 주인은 수능 당일 하루 동안 잠시 다른 사람이 된다.

한 가지 에피소드가 담긴 규칙도 있었다. 사물함을 모두 열어놓는 것이었다. 사물함을 굳이 다 열어놓는 이유는 예전 어느 학교에서 사물함 안에 알람시계가 들어있었는데 그것이 시험을 치르는 도중에 울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욱이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사물함이 자물쇠로 잠겨있어서 여는데 곤혹을 치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사물함을 모두 열어 놓는 것이 규칙이 된 것이다. 그냥 듣기에는 참으로 황당하면서도 한편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지만 그 때 시험장에 있었던 학생들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지 생각하면, 수능을 일년앞둔 나로 써는 웃고 즐길 수만은 없는 것같다.

반사되는 것을 막기위해 가린 TV와 고사장규칙이 붙어있는 칠판
▲ TV와 칠판 반사되는 것을 막기위해 가린 TV와 고사장규칙이 붙어있는 칠판
ⓒ 박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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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담임선생님께서 흰색 큰 도화지를 들고 오셨다. 갑자기 웬 도화지? 일제히 학생들은 의아하다는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께선 주번에게 TV와 거울을 다 가리라고 하셨다. TV에 꺼진 화면이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거울도 흰색 도화지로 덮거나, 거울을 때서 사물함 위로 올려놓았다. 갑자기 소름이 돋으면서 오싹해짐을 느꼈다. 수능 시험을 치르는 당사자에겐 얼마나 중요한 시험인지를 보여주는 일례인 것 같았다.

가장 놀랐던 것은 각 책상마다 이름표를 붙여 놓는 것이었다. 작년 경험으로는 수능이 끝난 직후 교실에 가보면 이름표가 다 떼어져 있어서 각 자리마다 지정석이 있는 줄 몰랐다. 그 자리에서 12년 동안 공부했던 결과가 결정된다는 것이 아니더냐. 이름 하나하나를 볼 때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마음이 찡함과 동시에 나조차도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내년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을 차례이기 때문이다.

각 지정된 좌석에 수험생이름표를 붙이고 있는 모습이다.
▲ 수험생이름표를 붙이는 모습 각 지정된 좌석에 수험생이름표를 붙이고 있는 모습이다.
ⓒ 박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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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이름을 고사장 번호로 교체해 놓은 모습
▲ 고사장 번호 학급이름을 고사장 번호로 교체해 놓은 모습
ⓒ 박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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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수능 때 지켜야 될 수칙과 같은 것들이 적혀있는 안내지를 칠판에 붙인 뒤 선생님께서 집에 가라는 말씀만 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이셨다. 조금 있으니 어떤 분이 들어오시더니, 수능 교실 수칙이 적혀있는 종이를 보고 하나하나 체크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따로 그것을 검사하는 분까지 계시는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고 보니 수능시험이 내일로 다가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리를 다 한 후 교실 앞문에 걸려있는 학급 이름은 고사장 번호로 변해 있었고, 학생들 대부분이 그것을 쳐다보며 신기한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걱정 어린 눈빛으로 보며 지나쳤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이날 하루를 기다리며 12년을 공부한다.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 치러야 하는 일이기에 고사장 준비를 세심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준비한다는 것을 직접 보고 알게 되면서, 수능이 멀게만 느껴졌던 우리에게 긴장감과 경각심을 일으켜 주는 날이 되었다.


태그:#수능, #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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