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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정부가 임기 중반에 정권의 명운을 건 승부수를 던졌다. 이른바 세종시 원안 수정과 4대강 정비사업이 그것이다. 한나라당 안으로는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당 밖으로는 국민을 향해 던진 승부의 주사위다. 한쪽 면은 '선진화'를 위한 '백년대계론'으로 무장했고, 다른 한쪽 면은 '4대강 살리기'로 무장했다.

 

'백년대계론'은 흔히 2년차 대통령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정치권에서는 흔히 '집권 2년차 증후군'이라고도 말한다. 집권하면 대개 1년간은 극도로 조심하면서 국정운영의 틀을 짜느라 정신없이 지낸다. 그러다가 2년차부터는 자신감도 붙고 주변에 권력에 줄 대려는 사람이 늘어 부패나 권력 오남용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시기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

 

국정의 정점에서 조망하는 대통령의 시각은 깊고 넓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하다. 대통령에게는 국가의 최고 지성인들과 최고 전문가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특권이 있다. 1년 남짓 모든 참모들로부터 공식 혹은 비밀 보고를 받고 국사를 만기친람한 대통령의 국정을 보는 눈은 참모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대통령일수록 더 일찍 자신감을 갖는다.

 

짐(MB)은 알지만 너희들은 모른다?

 

그래서 '멀리 보는' 대통령에게 '앞만 보는' 참모들은 때때로 답답한 '하수'(下手)로 비친다. 그때부터 대통령은 참모들의 조언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의존하고, 조언을 듣더라도 조언은 조언일 뿐 결정은 자신의 생각대로 한다. 초보 운전일 때는 조심 운전을 하지만 무사고 1년이 지나면 자만 운전을 하는 심리와 마찬가지다.

 

집권 2년차 증후군이 나타나는 가장 큰 심리적 원인은 자만이다. MB는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 타협은 없다"고 했다. 국정을 통할하는 대통령은 알지만 다음 선거를 의식하는 일개 정파의 수장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짐(MB)은 알지만 너희들은 모른다'는 오만이다.

 

"양심상 그대로 하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원안+알파'를 고수하는 박 전 대표는 졸지에 제 앞길만 생각하는 '불량한' 정치인이 되었다. 조중동도 한목소리다. 국가발전의 백년대계 앞에서는 박근혜의 원칙도 잇속의 발로일 뿐이다.

 

"나는 이 문제가 대통령과 예비후보라는 입장의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보고 싶다. 원칙이니 신뢰니 하는 말은 수사학처럼 들린다. 이 대통령도 후보일 적에는 이를 그대로 하겠다고 했다. 표 때문이었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박 전 대표 역시 대통령이 후보 때 갖던 마음을 지금 똑같이 갖고 있을 것이다. 2005년 당시 여야가 이 도시계획을 합의했을 때 박 전 대표는 지금 상황과 똑같이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을 노리는 후보다. 지금도 그때와 같이 선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논리는 간단하다. 대통령 말을 더 믿을 것인가, 아니면 후보의 말을 더 믿을 것인가. 선거에 나설 사람과 선거에 다시 나서지 않을 사람 중 누구 말이 더 믿을 만한 것일까. 인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 중에 누구를 더 신뢰할 것인가." (<중앙일보>, 11월 11일, 문창극 칼럼)

 

 

세종시 국민투표는 충청권 고립시키는 '역포위 전략'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 나설 일이 없으므로 인기에 연연하지 않지만,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둔 박근혜는 표계산에 연연해 원칙을 고수하므로 대통령이 더 진실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우선 당장 표계산을 하는 것은 MB 정부다.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는 얘기가 솔솔 나오는 것도 충청권보다 훨씬 더 많은 수도권 표를 염두에 둔 계산이다. 정치적으로는 충청권을 고립시키는 일종의 '역포위 전략'이다. 당내에서는 원안을 고수하는 '박근혜 고사 전술'이다. 잘만 하면, MB계가 다음 대선에서 예선과 본선을 모두 이길 수 있는 일거양득 책략이다.

 

MB는 '명품도시' 말고는 아직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과거 포항의 허허벌판에 포항제철을 만들고, 구미도 전자단지를 유치해 수십 년을 먹고 살았다. 세종시에도 그런 걸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데서 유추할 수 있다. 그가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아니라 '세종공단'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정책'으로 재미를 좀 봤다. 세종시든 세종공단이든 잘 먹고 잘살게만 해주면 될 것 아니냐는 자신감이다.

 

세종시 문제가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게임의 논리로 전락한 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 너무 솔직해서 탈인 노 전 대통령이 "수도 이전(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고 고백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나 말하는 스타일과 본질의 가치는 다른 것이다. 노무현에게 신행정수도 공약의 본질은 적어도 '표 놀음'이 아니고 '백년대계'였다.

 

지난 2005년 3월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된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이 공포되었을 때 노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을 이렇게 밝혔다.

 

"나는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수도권의 새로운 비전은 우리들의 꿈의 크기이자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행정수도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국가적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고 선거에서 표를 모을 일이 없다면 그 역시 이만한 꿈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그분이 행정수도 이전을 시도한 것은 사리사욕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안목을 가지고 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 MB와 죽은 노무현, 누구의 백년대계를 믿을 것인가

 

노 전 대통령이 '백년대계'라는 표현을 직접 쓰진 않았지만 '국가의 장래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안목을 가지고 한 것'이고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문제'임을 강조한 데서 백년대계의 논리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필자의 논리도 간단하다. 산 이명박의 백년대계론을 더 믿을 것인가, 아니면 죽은 노무현의 백년대계론을 더 믿을 것인가. 말 바꾸기를 거듭해 마침내 원점으로 돌아온 거짓 대통령과 국가균형발전을 고집스럽게 일관한 전직 대통령 중 누구 말이 더 믿을 만한 것일까. 인기와 실적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죽음으로 자기 언행에 책임을 진 사람 중에 누구를 더 신뢰할 것인가.

 

MB가 국민을 향해 던진 또 다른 승부의 주사위는 10일 공식적으로 착공에 들어간 '선진화'를 위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그러나 '살리기'는 정부의 논리일 뿐이다. 대다수 국민과 시민단체들은 '4대강 죽이기'이자 '대운하 살리기'로 받아들인다.

 

이날 당장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과 행정-위헌소송 등 법적 투쟁과 국회에서 예산 삭감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온 국민의 지지를 받아도 시원치 않은 국책사업이 대다수 국민과 야당의 반대 속에서 시작되었으니 이런저런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MB 정부의 오만과 독선이 자초한 것이다.

 

우선 4대강 사업은 4개 법(국가재정법·하천법·환경정책기본법·수자원공사법)을 위반하고 예산편성도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착수한 불법·위법사업이다.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을 자체적으로 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결론 내렸음에도 국토부가 불법임을 알고서도 강행하고 수공이 불법행위의 공범이 된 것은 이미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 있다.

 

4대강은 단군 이래 최대의 '묻지마 토건사업'이자 '낙동강 퍼주기'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4대강 살리기'의 총사업비는 24조원을 넘어선다. 단군 이래 최대의 '묻지마 토건사업'이다. 그런데도 그 내용과 예산은 여전히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MB 정부가 2008년 대운하 사업을 추진할 때만 해도 예산은 18조원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사업규모가 작은 4대강 살리기 예산은 22조원이라더니 비판이 거세지자 불과 한 달 만에 15조원으로 줄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고무줄 예산'을 국회가 심의하기도 전에 사업 착공 단계부터 제시했다.

 

22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재정이 투입되는 4대강 마스터플랜을 예비타당성조사도 거치지 않고 불과 6개월 만에 졸속으로 마련하고,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4개월 만에 졸속으로 끝내고 착공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김성순 의원). 이는 또한 국회의 예산안 심의·확정 권한을 심각하게 훼손, 헌법을 위배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이다.

 

4대강 살리기는 또한 토건건설족의 배만 불리는 대표적인 지역불평등 사업이다. 정부가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 마스터플랜 최종보고서)(8월 24일)에 따르면, 강바닥 준설과 보, 댐의 건설에 대부분의 예산이 사용되고 지역적으로는 낙동강 수계에 집중돼 있다.

 

4대강 사업 공사를 독차지한 현대건설, GS건설, SK건설 등 대기업들이 턴키입찰에서 담합비리를 저질렀다는 것은 국정감사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건설사 관계자들은 때로는 호텔에서 때로는 삼계탕 집에서 '담합'을 했다고 한다.

 

더구나 '4대강 살리기'는 전체 예산의 60% 정도가 낙동강 수계에 투자되는 거대한 '영남 개발사업'이다. 한나라당과 MB식 딱지 붙이기를 원용하면 '낙동강 퍼주기'다. 그것도 대통령과 그 형님이 졸업한 포항 동지상고 동문 건설족의 배만 불리는 '동문 나눠먹기 사업'으로 전락했다.

 

그런 점에서 4대강 살리기는 박근혜의 영향력이 압도적인 영남에서 더 큰 지지를 얻기 위해 강행하는 '토건정치'의 일환으로 관측되기도 한다. 수도권에는 세종시 무력화 및 수도권 규제완화의 선물을 안기고, 영남에는 '낙동강 살리기'의 선물을 안겨 박근혜를 고립시키고 정권의 재창출을 추구하고 있는 것(홍성태 상지대 교수)이라는 음모적 시각이 그것이다.

 

그런 시각이 맞든 틀리든, 문제는 한나라당의 집안싸움과 권력투쟁으로 인해 국민은 골병들고 국가재정이 거덜 날 지경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검증되지 않은 방법으로, 임기 3년 내에 한다는 것은 국토와 역사와 미래세대에 대한 죄악이고 거기에 사는 뭇 생명들에 대한 죄악이기도 하다(김진애 의원).

 

탱크와 총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전두환 장군은 각각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의 자격으로 구정치인을 부패로 낙인찍고 국회를 해산한 전과가 있다. MB가 총칼은 안 들었지만, 단군 이래 최대의 토건사업을 추진하면서 실정법을 어기고 국회의 예산심의도 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결국 국회 해산이나 다름없다.

 

MB 정부는 지난 9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사강나래'로 이름 붙였다. '어륀지 정부'다운 이른바 '네이밍 공모'의 결과다. '사강나래'는 4대강의 힘찬 생명력으로 대한민국의 비상을 꿈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4강이 사강(死江)으로 읽힌다. MB는 민심을 거스르고 생명을 짓밟고 끝내 '돌아올 수 없는 사강(死江)'을 건너려는가.


태그:#4대강, #백년대계, #사강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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