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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부르면 달려 갈거야 무조건 무조건이야~'

 

흥겨운 트로트 가락에 맞춰 열심히 율동을 선보이는 중에 혼자 틀린 동작을 서둘러 애교스럽게 얼버무리며 넘어가자 관객들은 즐거운듯 폭소를 터트린다. 명칭부터 정겨움이 듬뿍 묻어나는 '브라보 웃음 공연단'은  환자, 보호자, 호스피스 간호사, 웃음 치료사로 구성된  웃음 봉사단으로 20대에서 68세까지, 그야말로 직업과 연령층이 다양하다. 공통점이라곤 전혀 없는 독특한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은 경희의료원 웃음 봉사활동이다.

 

도대체 경희의료원 암병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전화로 웃음을 배달한 이야기, 환자에서 환자에게 웃음을 전달하는 봉사자가 된 이야기,  환자의 보호자가 웃음 봉사를 하게 된 사연 등 단원들의 울림이 깊은 감동 사연을 소개한다.

 

사례1-'행복한 새'- 친구의 꿈을 위하여

 

유난히 동작이 경쾌해 보이던 공연단 맨 앞줄에 선 흰머리의 중년 여성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행복한 새'라는 아이디를 가진 그이는  경희의료원 웃음 봉사와 '브라보 웃음 공연단' 시작의 단초를 제공한 주인공이다. 그이에게는 누구보다 친한 단짝 친구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남부러울 것이 없던 친구부부에게 불행이 쌍으로 찾아왔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 모두 암에 걸린 것이다.

 

웃음을 잃은 친구 부부에게  이따금 전화를 걸어 "웃음이 보약보다 더 좋은 거 아시죠? 지금 저랑  잠시 웃으실 수 있으신가요?" 라며 전화웃음 배달을 시작했다.  상대방의 눈치를 봐서 괜찮다고 하면 전화기를 붙들고는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웃었다. 어느 날 친구가 고백했다. "웃음으로 기쁨을 줘서 고마워. 소원이 있다면 언젠가 나도 소아과 병실에서 웃음 봉사를 하는 거야. 나도 웃음 봉사를 하며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그이는 대답했다. "그럼, 할 수 있고말고. 꼭 할 수 있어" 장담을 하고 돌아선 그이는 친구의 꿈을 실현시켜 주고 싶어  웃음치료 과정을 함께 했던 경희의료원 이은미 간호사를 찾아가 자신의 계획을  털어 놓았다.

 

이은미 간호사는 "당장 시작해라. 병원내의 모든 절차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흔쾌히 허락했다. 처음엔 자신, 이은미 간호사. 친구 라라가 조촐하게 시작하려던 봉사였다. 그러나 그이야기를  전해들은  웃음치료 과정 동기생들은 물론 선배 후배들이 서울, 충청, 포항, 철원, 등 지역과 기수의 경계를 넘어  봉사에 동참하겠다며 자발적으로 줄을 섰다. 친구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만들어 낸 놀라운 기적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례2-  '방글이'- 호스피스 간호사가 웃음전도사 된 사연

 

성가복지 병원에서 15년 이상 봉사를 해오고 있는 호스피스 간호사 '방글이'님은 웃음 전도사로 불린다. 처음으로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원자력 병원에서 '박장대소 웃음 교실'을 열어 환자들에게 웃음을 선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이의 사례는 여러 언론이 앞을 다투어 소개했다. 그이가 웃음치료, 댄스테라피 등 치유프로그램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는 여러 이유에서다. 가수 뺨치는 노래 솜씨에 쾌활한 성격이던 그이는 오랜 호스피스 간호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안 죽음을  자주 접했다. 따뜻한 성품의 그이는 열심히 돌보던 환자의 죽음을 대할 때마다  기분이 가라앉곤 했다.  때론  상처가 깊어 호스피스 봉사에 심각한 회의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그이가 만나는 환자들은 그이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환자들을 더 행복하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이는 웃음치료 과정을 시작했다. 지금은 웃음치료 강사로 간호과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을 만나 강의로 웃음을 전달한다. 웃음을  전파하는 전령사가 된 그이는 이렇게 고백한다.  " 호스피스 간호일을 봉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건 내 일상과도 같은 일이거든요. 웃음과 봉사로 가장 행복해 지는 건  바로  내 자신이에요. 특히 웃음은 나를 먼저 행복하게 만들어줬어요."

 

사례3- '나잘나'-지체 1급, 시각장애자가 7시간 왕복하며 봉사하는 이유

나잘나씨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쪽 팔이 부자유스럽다.  어느 날인가부터 왼쪽 눈마저 잘 안보이기 시작했다. 시부모에게도 남편에게도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몰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병명은 '다발성경화증'이었다. 세균이 침투하는 곳은 어디든 마비를 일으키는 치명적인 병으로  왼쪽 시력을 완전히 잃은 그이는 지체 장애 1급 장애인이 됐다. 그이가 철원에서 경희의료원까지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7시간이 넘는다. 눈이 잘 안보여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거나,  차를 잘 못 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그이가 끈질기게 웃음 봉사를 놓지 않는 이유는 웃음이 지닌 기적의 치유 능력을 알기 때문이다.

 

전에 안 보이는 눈으로 더듬거리며 집안 살림을 하면서 불평과 불만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웃음치료 과정 후 일상의 모든 삶이 달라졌다. 지금은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즐겁게 하자라며 혼자 '흐흐흐 하하하' 웃으며 일하다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싹 달아난다.

 

얼마 전 그이는 또 한 번 웃음의 기적을 경험했다. 허리가  너무 아파 병원을 갔는데 허리 디스크라고 했다. 의사가 수술을 권유했지만 웃음이라는 비밀 병기를 지닌 그이는 물리치료를 고집했다.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 그이는 자신의 몸에게 끊임없는 감사의 신호를 보냈다. 긍정적 사고와 웃음은 그이에게  다시 한 번 기적을 불러왔다.  '부라보 웃음공연단'의 일원으로 춤까지 출 수  있을 만큼 치료가 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이는 1시간 웃음 봉사를 하기 위해  7시간 이상 걸리는 고된 여정을 마다지 않는다. 그이의 꿈은 뮤지컬 가수가 되는 것이다. 언젠가 그이가 멋진 뮤지컬 가수로 무대에 서는 날을 기다려본다.

 

사례4-'행복한 아빠' - 절망 끝에서 만난 웃음 폭탄의 위력

'행복한 아빠'는 현재 주부다. 백혈병으로 항암치료 중인 아들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가 웃음 봉사단을 만난 건 경희의료원이다. 도무지 웃을 기분도 아니고 웃을 일도 없는 병실에 어느 날 웃음 봉사단이 찾아왔다. 그리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거짓 웃음이라도 효과는 진짜와  비슷합니다. 억지로라도 웃으세요."  그이는 피식 웃으며 그 말을 흘려 들었다.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받던 아들이  너무 힘들어 하며 곡기마저 끊었다.  아들을 간병하던 그는 절망했다. 그 때 억지로라도 웃으라던 웃음 봉사단의 말이 떠올랐다.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웃음 봉사단을 불렀다.

 

웃음 봉사단의 방문을  받은 뒤, 아들은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항암치료를 잘 견디며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다. 앞으로 2년 정도 항암치료를 더받아야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웃음이 가져다 준 기적을 믿기 때문이다. 웃음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그이는 살림하는 틈틈이  웃음치료 과정을 수료해  봉사도 하고 춤도 배웠다. 웃음 봉사를 만나 행복해졌으니 자기처럼 웃음이 필요한 이들에게 그 행복을 널리 전하고 싶다는 그이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그이가 이루고 싶은 꿈은 완치된 아들의 손잡고 함께 웃음 봉사하는 것이다.

 

사례5-'또 웃자'- 기적은 계속된다.

'또 웃자'님은 휠체어에서 생활하는 지체 장애자다. 장애인이라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비장애인보다 몇 배 더 열심히 살아가던 그이에게 또 한 번 시련이 닥쳐왔다.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던 그이였지만 이번엔 실망과 좌절감에 사로잡혔다. 유방을 절제하면 팔에 힘을 받을 수 없어 목발이 아닌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좌절의 늪에서 헤매던 그이에게 예전의 의지와 열정을 되살려 준 것은  웃음 봉사단과의 만남이다.  이제 예전의 씩씩함을 되찾은 그이는 '또 웃자'라는 아이디처럼 웃고 또 웃으며 절망을 새로운 희망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웃음의 기적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웃음은 힘이 세다! 웃음은 천하무적이다!

 

 

더 즐거운 봉사를 위해 '브라보 웃음공연단' 을 만들다.

 

웃음의 기적을 체험했다는 것만으로 웃음 나눔에 기꺼이 동참한 그들은 피드 백을 위한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이 두어 달 이어 진 후, 웃음 봉사의 씨앗을 제공한 '행복한 새'가 또 한번 색다른 제안을 내 놓았다.

 

"우리 환자들을 더 즐겁게 해주려면 우리가 더 망가져야 해. 우리가  환자들 앞에서  공연도 하면서 웃음을 전하면  더 효과가 있을거야. 그래 우리 춤을 배우자."

 

그렇게 해서 그들은 매주 한 번씩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배우는 춤이라 쉽지 않았다.

 

"난  숏다리라 다리가 잘 안올라가."

 " 아무리  연습해도 통나무처럼 동작이 뻣뻣해"

"난 도무지 리듬을 탈 수 없어."

"난 자꾸만 순서를 까먹어."

 

이런저런 고충을 털어 놓으면서도 그들은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어찌하든 환자들과의 만남에서 더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열정으로  한곡 한곡 춤을 배우고  익혀나갔다. 그렇다. 가진 것이 없고 재능이 없어 나눌 것이 없고 남을 즐겁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은 이기적인 사람들의 자기 합리화와  변명일 뿐이다.  '브라보 웃음 공연단'의 외적인 조건만 본다면 도무지 웃을 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웃음과 춤으로 자신들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바꾸어가는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웃음과 긍정적 사고, 그리고  춤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지닌 그들 앞을 막아설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11월 5일 늦은 일곱 시 과천시민회관에서 경희의료원 암병동 환자들을 상대로 웃음 봉사를 해오던 ‘브라보 웃음 공연단’의  울림이 깊은 공연이 있었습니다.  웃음을 필요로 하지만 웃기 어려운 환자들을 더 즐겁게 해주려고  배우기 시작한 춤을 가족과 이웃에게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태그:#웃음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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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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