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살 세빈이와 할머니 그리고 아흔살을 바라보는 이웃집 할머니가 고구마를 캐고 있다.
 2살 세빈이와 할머니 그리고 아흔살을 바라보는 이웃집 할머니가 고구마를 캐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호미를 든 세빈이가 재롱을 떨며 고구마를 캐고 있는 가운데 할머니가 활짝웃고 있다.
 호미를 든 세빈이가 재롱을 떨며 고구마를 캐고 있는 가운데 할머니가 활짝웃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처남댁 아이인 세빈이는 시골에서 할머니와 같이 산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세빈이는 주중에는 할머니와 지내다 주말이 되면 엄마, 아빠 품으로 돌아간다. '키우는 정이 낳은 정보다 더 깊다'는 것을 세빈이를 통해 알게 된다. 왜냐면 주말이면 엄마, 아빠에게 안 가려고 떼를 쓰는 세빈이 그런 세빈이가 어느덧 2살이 되었다.

몇 년 전 할아버지가 떠나고 혼자가 된 할머니에게 손주 세빈이는 할머니의 유일한 말벗이자 삶의 낙(樂)이었다. 그간 손주를 업고 농사를 짓던 할머니에게 짐이 되었던 세빈이가 오늘은 큰일을 했다. 세빈이가 재롱을 피우며 고구마 파는 일을 도왔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파는 오늘 이웃집에 사는 아흔에 가까운 할머니도 호미를 들고 거들었다. 요즘 벼농사 추수가 끝나고 밭농사가 남아있는 농촌의 풍경은 일손이 딸려 두살배기 아이부터 아흔살의 할머니까지도 아쉬운 현실이다.

일손이 딸리는 가운데 지게 뒤로 캔 고구마를 주워 담고 있는 일꾼들의 모습
 일손이 딸리는 가운데 지게 뒤로 캔 고구마를 주워 담고 있는 일꾼들의 모습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덩치만한 호미를 들고 힘겹게 일을 돕고 있는 세빈이의 모습
 덩치만한 호미를 들고 힘겹게 일을 돕고 있는 세빈이의 모습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방과후 학교길은 고구마 서릿길

언제 먹어도 구수하고 맛있는 고구마,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농촌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구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다.

절기상 한로와 입동 사이 '첫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에는 그 동안 심어놓은 가을걷이를 마무리 해야 되는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한해 동안 뿌려놓은 잘 익은 호박, 감, 조, 수수, 고추와 콩을 따랴, 서리가 오기 전 고구마를 캐는 일은 농부들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밭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다.

가장 바쁜시절 농촌의 가장 인기있는 일꾼은 아직도 황소이다.
 가장 바쁜시절 농촌의 가장 인기있는 일꾼은 아직도 황소이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보릿가실이 끝나고 하지에 심은 고구마는 여름철 불볕더위를 먹고 풍성한 가을햇살과 해풍을 받으며 줄기 아래 뻗은 뿌리에는 빨갛고 노란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구마 밭의 수난시대였다. 방과후 아이들이 순순히 집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 먼길을 걸어야 하는 학교길은 항상 배가 고팠고, 배고픔에 길옆에 심어진 밭에서 고구마 순을 걷어내고 밭두렁을 파면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처음에는 하나만 판다는 것이 파면 또 나오는 그 재미에 온 밭을 군데군데 헤집기 일쑤다.

특히 길옆에 밭이 있는 밭주인들은 범인을 잡으려 하나 쉽게 잡지 못하고 학교로 전화했다. 다음날이면 꼭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져 죄 없는 같은 동네 아이들까지도 벌을 서야 했다.

말린 고구마 빼깽이의 추억

또한 농촌은 이맘때쯤이면 본격적인 고구마를 수확하기 위해 농번기에 들어가는데 집안에서 일손이 딸리다 보니 학업보다는 고구마 캐기가 우선이다. 그렇다 보니 학교는 둘째고 농사 때문에 학교를 못갔는데 농땡이 치기엔 농번기 철보다 좋은 시절은 없다.

농가에서 한 부부가 다정한 모습으로 수확한 고구마로 빼깽이를 빻고 있다.
 농가에서 한 부부가 다정한 모습으로 수확한 고구마로 빼깽이를 빻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부부가 절간한 고구마를 밭에 널어 고구마 밭이 온통 빼깽로 물들었다.
 부부가 절간한 고구마를 밭에 널어 고구마 밭이 온통 빼깽로 물들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고구마를 파내면 우선 종자와 겨울철 식량으로 먹을 고구마를 가려내고 나머지는 빼깽이를 통해 판매되었다. 요즘에야 고구마를 파면 농협과 업자들이 생 고구마로 추곡수매를 밭아 주지만 당시에는 고구마가 농가 주요 수입원이다 보니 거의 전량 빼깽이로 판매되었다.

빼깽이는 생 고구마를 기계로 잘게 썰어서 잘 말린 마른 고구마의 일종으로 술을 만드는 알코올(주정)의 주원료로 사용된다.

경운기의 힘을 빌어 절간작업이 한단계 진화된 가운데 빼깽이를 절간하다 활짝웃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
 경운기의 힘을 빌어 절간작업이 한단계 진화된 가운데 빼깽이를 절간하다 활짝웃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빼깽이 한 가마가 나오기까지 생 고구마가 배나 더 들어가지만 부수고, 말리고, 걷고, 지게로 져다 날리기까지 많은 노동력이 들어간다. 혹 비라도 오는 날이면 밭에 널린 빼깽이를 모아 덮어야 하는데 이때는 밤낮이 따로 없다. 비를 맞으면 곰팡이가 쓸고 썩어서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요즘도 농협과 업자에게 팔고 난 나머지는 전부 빼깽이로 말려 판매된다고 한다.

추억의 웰빙식품 "어머니표 빼깽이죽"

빼깽이는 죽으로도 별미다. 농가에서는 집에서 먹을 것은 별도로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겨내고 빼깽이를 만드는데 추운 겨울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빼깽이 죽은 그야말로 별미중 별미다. 밥을 하면 꼭 죽을 찾고 죽을 쓰면 꼭 밥을 찾는 청개구리 같은 식성도 빼깽이 죽을 쓰는 날이면 이날 만큼은 아예 밥은 쳐다 보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웰빙시대 영양가 높은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식이 없을 듯하다.

오늘 밭에서 캔 울긋 불긋한 고구마에는 농민들의 수고와 일년동안 함께한 장모님의 농심(農心)이 묻어 있다. 사람도 나이를 먹듯 세월의 흐름에 저물어 가는 농촌이 더욱 늙어가고 있어 안타까운 맘 뿐이다.

도로가에 널려 말리고 있는 절간 고구마의 모습뒤로 생 고구마를 가득 실은 경운기가 지나고 있다.
 도로가에 널려 말리고 있는 절간 고구마의 모습뒤로 생 고구마를 가득 실은 경운기가 지나고 있다.
ⓒ 심명남

관련사진보기



태그:#고구마 , #빼깽이 , #농심, #경운기, #빼깽이 죽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