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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0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0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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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온 국민 앞에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이른바 '헌법재판소 놀이'는 이름으로 게시판 여기 저기에 "○○○는 했지만, "◎◎◎"는 아니다"라는 작문 놀이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당선 됐지만 대통령은 아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몇 년 전 어느 연예인이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다"라는 말을 다시 부활시켰고, 학생인 듯한 누리꾼은 "컨닝으로 서울대 합격해도 합격은 유효하다"라고 조롱했다.

같은 날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은 서울교육감에게 헌법재판소에 갔으면 "불법 선거로 당선되었지만 당선은 유효하다고 나왔을 텐데..."라는 조소가 이어졌고, "도둑질을 해도 장물은 도둑놈 소유" 등 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냉소가 이어지고 있다. 헌법의 존엄을 지켜야 할 헌법재판소가 우리 헌법을 온 국민의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늘 우리 국민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법은 힘 있는 사람의 편"이라는 불신이 있는 것이 사실이어서, 어느 정치인의 "법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아니라 힘 있는)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비유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법률상 명백하게 정해진 절차상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 동안 우리 사법부가 명백한 절차적 하자를 어떻게 처리하였고, 그로 인해 우리 국민의 불행이 얼마나 컸는지를 한 교사의 예를 통해서 알아보자.

법정 기한을 430일 넘긴 사학재단의 교사 파면은 유효하다는 법원

서울 동일학원의 조연희 교사(이하 조교사)는 동일여고 졸업생이다. 후배들을 제자로 맞아 모교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생활하던 조 교사는 이사장과 학교장의 전횡과 부정부패에 의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의 피해를 문제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동교 교사들과 학교 비리를 서울교육청과 감사원 등에 고발하게 되었고 교육청은 2003년 5월 특별감사를 통하여 15억 5천여만의 회계부정을 밝혀서, 61건의 행정 조치, 74건의 징계 등 신분조치를 내렸고, 이사장은 횡령 혐의로 형사 처벌까지 받았다.

동일학원측은 곧바로 감사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서울행정법원과 고등법원은 교육청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최근 2009년 4월 23일 대법원이 동일학원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학교의 비리를 사실로 확정했다. 그런데, 동일학원은 이런 불법에도 교장과 이사장은 그 직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불법을 고발한 조 교사와 동료 교사들을 파면했다.

동일학원은 2005년 2월 24일 파면의결 요구를 하고, 26일 직위해제 하여 이들을 아이들 곁에서 쫓아냈다. 현행 사립학교법과 시행령에 의하면 징계의결 요구를 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징계해야 하고, 징계위원회의 의결로 1차에 한하여 30일의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참고: 사립학교법 시행령 제24조의4(징계의결의 기한) 교원징계위원회가 징계의결요구를 받은 때에는 그 요구서를 받은 날로부터 60일이내에 징계에 관한 의결을 하여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당해 징계위원회의 의결로 30일의 범위 안에서 1차에 한하여 그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이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규정이다. 그러나 동일학원은 기일 내에 징계 하지도 않았고, 이를 연장하는 징계위원회의 결정도 없이 마냥 세월만 보내면서 교사들을 괴롭혔다. 그러다 개정된 사립학교법 시행 사흘을 앞두고 2006년 6월 28일 파면 처분을 내렸다.

법에 정해진 징계의결요구로부터 60일이 아니라 490일이 지난 후였다. 그러니까 법이 정한 징계 기한을 무려 430일을 넘긴 것이다. 이는 명백한 법적 절차상 하자로 불법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 명백한 절차적 흠결에 눈 감았다.

법이 정한 기한은 효력적 규정이 아니라 훈시적 규정이라는 고상한 이유를 댔다. 2008년 8월 대법원은 "(법이 정한) 징계의결기한에 관한 규정이 효력 규정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위 규정에서 정한 징계의결기한을 지나 징계의결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를 곧 무효로 볼 수는 없다"는 서울고법의 판결을 인정하면서 징계 해고가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60일 징계의결 기한은 넘겨서 절차적 흠결은 있지만 해고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럴 거면 징계 의결 기한을 법에 왜 정해 놓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 1차에 한하여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은 무엇 하러 정해 놓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조 교사는 대법원의 이런 판결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이 학교에서 영원히 쫓겨났다.

재판 청구 기한 1일을 지났다고 무죄를 유죄로 확정해 버리는 법원

조 교사가 파면당한 사유 중 하나가 2006년 5월 평택 대추리 집회 현장에 있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특수공무방해죄 등으로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된 후 정식 재판을 청구한 조 교사에게 서울고법은 2009년 3월 "집회 장소에는 있었으나 집회에 직접 참가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했다.

조 교사는 이미 대법원에 의해서 평택 집회 참가 등이 해고 사유로 인정되어 해고당했지만, "징계처분이 있은 후에 그에 대한 형사사건으로 1심에 대하여 유죄판결이 선고되었으나 그 후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고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면 그 징계처분은 근거 없는 사실을 징계사유로 삼은 것이 되어 위법하다"(대법원 93누14752, 91누12196 판결 등) 등을 근거로 하여 해고에 대한 재심을 법원에 신청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 교사는 8월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서 재판 청구를 기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453조와 제455조에 정식 재판 청구를 7일 이내에 해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조 전교사의 정식 재판 청구가 8일만에 접수되었다면서 정식 재판 청구 자체가 무효로 선언하고 유죄를 확정해 버렸다.

[※참고 : 형사소송법 제453조(정식재판의 청구) ①검사 또는 피고인은 약식명령의 고지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의 청구를 할 수 있다. 단, 피고인은 정식재판의 청구를 포기할 수 없다.]

조 교사는 앞이 캄캄했다. 경찰에 억울하게 연행되어 구속 영장이 청구되었다가 기각된 것도 억울하였고, 이런 것들이 소청심사위와 법원에서 해고 사유로 인정된 것은 더욱 억울했다. 게다가 정식재판을 청구하기 전에 법원 담당자에게 미리 전화를 통하여 접수 기일을 확인하였고, 접수 당일 담당자에게 그날까지 하면 된다고 확인 받고 접수했기 때문에 더 억울했다.

그때까지 3년이 넘게 재판을 받는 동안 검사도, 판사도, 변호사도 단 한 번도 문제 삼지 않고 재판을 진행해 왔다. 게다가 이 사건으로 3년 반 재판 받으면서 변호사비와 평택과 서울을 오가면서 사용한 교통비, 시간, 마음 고생을 생각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조 교사가 더욱 억울한 것은 학교의 비리를 바로 잡아 달라고 서울교육청에 민원을 낸 것을 서울교육청에서 학교측에 그대로 넘겨주어 신상이 유출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해고되었기 때문이다. 조 교사는 이렇게 총체적으로 국가기관의 잘못으로 해고 당한 것이다.

조 교사는 국가기관인 경찰이 잘못 연행을 했고, 또 다른 국가기관인 검찰이 잘못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리고 또 다른 국가기관인 법원의 공무원이 재판 청구 일자를 잘못 안내한 것 때문에 대법원에서 정식 재판 청구 자체를 무효로 해버려 유죄가 돼 버려 사실을 바로 잡고 구제받을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완전히 배제당해 버렸다.

대법원 민원실을 찾은 조 교사는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억울한 것은 알겠지만) 당시 담당자가 아니어서 확인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네요. 법원이 그렇게 판결한 이상 뒤집어질 수 없을 겁니다"라는 무관심한 대답뿐이었다.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현재로서는 바로 잡을 방법이 없단다.

제5회 투명 사회상을 수상하는 동일여고 교사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조연희교사.... 이들은 MBC 이상호 기자와 함께 투명 사회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조연희 교사 등이 얼마 뒤 해고를 당했다. (2008년 5월)
▲ 제5회 투명 사회상을 수상하는 동일여고 교사들.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조연희교사.... 이들은 MBC 이상호 기자와 함께 투명 사회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조연희 교사 등이 얼마 뒤 해고를 당했다. (2008년 5월)
ⓒ 교육희망 안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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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지났다고 무죄는 무효 Vs 430일 지난 파면은 유효" 대법원의 고무줄

2006년부터 3년을 끌어온 조 교사의 파면 사건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대법원은 법적 징계 기한 60일을 무려 430일이나 지난 학교측의 징계를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징계의 한 이유가 되었던 집회 참가 사건에 대해서는 고등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으나 재판 청구 기한 7일을 단 1일 초과했다고 대법원은 사실 유무를 따지지도 않고 재판도 없이 유죄선고 했다.

대법원 판사들이 내린 430일 초과는 유효하고 1일 초과는 무효하다는 이 결정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사립학교를 둘러싼 이런 판결의 예는 또 있었다.

C사립대학에서는 이사장과 총장이 면접 등을 통하여 2003년 1월 이사장 입회 하에 전임교수로 임용하는 임용계약서를 작성한 후 보직까지 주고 연구실을 배정하여 2월부터 출근한 교수가 사학비리의 시정을 요구하자, 이사장과 총장은 뒤늦게 교원인사위원회를 통하여 이 교수를 선발하지 아니하기로 결의한 후 미임용 통지를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하여 2005년 12월 대법원은 임용계약서를 작성하여 보직과 연구실까지 배정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법이 정한 총장 제청에 따른 이사회 의결이 없었으므로 정식 임용이 아니며, 임용되었다고 하더라도 임면 절차를 지키지 않았으므로 임용이 무효라고 결정하였다. 결국 이 교수는 학교에 제대로 가지도 못하고 쫓겨났다.

그러나 최근 이와 정반대의 사례도 있었다. 서울 C고등학교의 홍모 교사는 학교의 비리 혐의와 학습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중학교로 전보 발령이 났다. 그러나 법원은 전보 기준도 따르지 않고, 인사위원회 심의도 없는 등 법이 정한 교원 임면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사권의 범위에 속한다는 이유로 전보가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임용한 교수가 학교 비리 시정을 요구하자 그를 임용하지 않았다고 할 때는 임면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교수를 쫓아내고, 학교 비리 시정을 요구한 교사를 전보할 때는 임면 절차를 지지키 않아도 된다고 하는 이 법원의 결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법의 최후 보루라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힘 있는 편?

이번에 헌법재판소는 절차상 문제는 있지만 국회의 자율성을 내세워 신문법과 방송법의 가결 선포는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이 또한 명백한 헌법재판소의 잘못이다. 자율성이란 명문 규정이 없을 때 관례를 존중하거나 합의를 통하여 없는 규정을 보완하여 운영하라는 의미이지, 있는 규정을 제 멋대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헌재 스스로 "국회의 자율권은 의사절차와 관련해 법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에 관하여 그 한도 내에서 인정되는 것이지 국회법에 명시된 부분을 분명히 위반한 경우에까지 주장할 수 있는 만능 면책수단이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사립학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있는 규정을 사학재단 마음대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자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따라서 사학재단이 징계 기일을 위원회의 의결도 없이, 430일이나 초과하여 징계한 것은 유효하다고 하고, 국가 기관의 잘못으로 1일을 넘긴 정식재판 청구는 무효라는 법원 판결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고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는다.

결론은 헌법의 최후 보루라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절차적 흠결을 힘을 가진 사람들의 편에서 제 멋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다수인 한나라당이 통과시킨 신문법과 방송법이 절차상 흠결이 있음에도 유효하다는 결정을 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사학재단에서 해고된 조 교사가 징계 기한을 430일이나 넘겨서 해고한 것이 명백한 절차상 흠결임에도 이것이 유효하다고 인정한 대법 판결 역시 힘 있는 자를 편든 것이다. 해고의 한 사유가 되었던 집회 사건 역시 국가기관이 잘못 안내한 것으로 인해 발생한 1일의 기한 초과를 이유로 무죄 판결을 심리도 없이 유죄로 인정해 버린 대법 판결 역시 국가기관인 경찰과 검찰, 사학재단이라는 힘 있는 쪽의 편을 든 판결이다.

법이 힘 있는 권력 편이라 비판 받는 순간 사법부의 존재 근거는 부정된다. 이런 법과 권력에는 어느 국민도 승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사법부의 편파적 판결이 한 국민의 인생을 어떻게 망치는지를 조 교사의 사례에서 절절히 확인할 수 있다. 헌법 최후 보루라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대오각성이 촉구된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민중의소리에도 송고하였습니다.



#대법원#헌법재판소#절차적 하자#동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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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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