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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 끝나는 날에 고향 땅을 찾았다. 고향을 가는 날은 언제나 설레는 날이지만, 깊어가는 가을에 찾는 것은 허리가 아프도록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막히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원한 섬진강이 보이는 19번 국도를 달리는 순간까지는 좋았다. 하동읍을 지나고 악양면에 들어서자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붉은 빛들의 잔치를 보는 순간 탄성이 솟아났다.

먼 산으로부터 단풍은 내려오고 있었지만, 악양은 반대였다. 집들과, 산과 밭이 모두 붉었다. 마당가에도 한 그루, 집 뒤안에도 한 그루, 대문 앞에도 한 그루. 그렇게 심어진 대봉감은 온동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깊어가는 가을에 주말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은 자식들은 부모와 함께 대봉감을 따느라 몹시 바쁜 휴일이었다.

제 11회 대봉감 축제가 열리는 행사장 입구에서 중년의 부부가 감나무 모형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제 11회 대봉감 축제가 열리는 행사장 입구에서 중년의 부부가 감나무 모형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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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악양면 평사리 공원에서는 99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하는 대봉감축제(10월 30일~11월 1일)가 열리고 있었다. 마을 이장은 주민들을 축제에 참가하라는 방송까지 하였고, 그나마 멀리서 자식들이 찾아온 집에서는 대봉감을 따느라 정신없는 날이었다.

일제 강점기(1920년대) 때부터 심어진 대봉감은 1070년대까지는 개량시, 면감, 왜감 등으로 불려왔다. 1980년대 경부터 물질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대봉감으로 알려졌다.

"과실 중에 으뜸은 감(柑)이요, 감 중에 으뜸은 대봉감"이란 말이 있다. 그리고 대봉감 중에 으뜸은 역시 악양대봉감이다. 악양 대봉감은 지리산의 좋은 토양과 공기, 풍부한 일조량과 섬진강의 맑은 물로 생산되어 감칠 나는 맛과 색깔, 모양이 우수하여 옛날부터 임금님께 올린 진상품으로 유명했다.

마치 지리산 반달곰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악양의 애봉감이 이렇게 환경을 생각하는 감이 아닐런지..??
 마치 지리산 반달곰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악양의 애봉감이 이렇게 환경을 생각하는 감이 아닐런지..??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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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임금님 진상품으로 이름난 악양대봉감이 명성 및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 받아 지난 6월 산림청으로부터 지리적 표시품으로 최종 등록되어 그 명성을 더 한층 자랑하게 됐다. 악양 대봉감 지리적 표시 등록은 자료수집과 조사, 분석을 실시해 2007년 산림청에 등록을 신청하였다. 지리적 특성, 역사성, 우수성, 명성 등을 수회에 걸쳐 조사, 보완하여 2009년 확정사항을 공고한 뒤 산림청 23호로 최종 등록됐다.

악양대봉감은 지리적 표시를 등록함에 따라 농산물품질관리법 제8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19조에 의해 지리적 명칭을 보호받으며 국제적으로는 WTO 지적 재산권 협정에도 보호를 받게 되었다. 또한 대봉감 생산농가는 시장 차별화를 통한 품질향상으로 대내외 경쟁력을 높이게 되었으며, 소비자는 믿을 수 있는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정겨운 돌담이 있는 길이다. 너무 많아서 무거워 보이는 대봉감을 나무로 받혀주고 있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정겨운 돌담이 있는 길이다. 너무 많아서 무거워 보이는 대봉감을 나무로 받혀주고 있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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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의 대표적인 농산물로 청정한 지리산 기슭과 섬진강변에서 생산되는 악양대봉감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형 지형으로 깨끗한 자연 환경과 기후, 재배가 알맞은 토양에서 생산돼 당도가 높고 비타민 함량이 높다. 특히 홍시를 만들면 과육이 부드러워 감칠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악양대봉감은 예로부터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 받아 왔다.

10월 31일, 고향땅의 다른 한쪽에서는 풍악제 개관 행사가 있었다.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에서 사랑채의 필요성을 느껴 자발적인 후원금과 노동력을 투자하여 작은 활동 공간을 만든 것이다.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은 2003년 11월부터 시작하였다. 주요활동으로는 섬진강 생태학교를 운영하며 생태환경교육을 하고 있으며, 섬진강 꽃길 지키기 운동을 하며 19번 국도의 파괴를 막으려 했다.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의 사랑채로 쓸 풍악재 준공을 맞이하여 고천문을 낭독하고 있는 박남준 시인. 문인들의 모임에서도 지역 토박이 모임과 거리감은 지울수가 없었다.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의 사랑채로 쓸 풍악재 준공을 맞이하여 고천문을 낭독하고 있는 박남준 시인. 문인들의 모임에서도 지역 토박이 모임과 거리감은 지울수가 없었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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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해에는 즐겁게 놀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에서 고3에서부터 곱슬머리 공무원까지 연습에 참가를 하면서 힘겹게 준비한 '동네밴드'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올해는 동네 주니어밴드까지 생겨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12월 12일에 두 번째 동네밴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풍악재 준공식에 참가한 회원들. 취재를 하는 모습이 어느 유명한 기자회견장을 연상하게 해 준다.
 풍악재 준공식에 참가한 회원들. 취재를 하는 모습이 어느 유명한 기자회견장을 연상하게 해 준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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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가는 것은 좋았다. 그리고 고향에서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는 것은 더욱 좋다. 하지만 어딘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은 회원의 대부분이 악양면으로 귀농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봉감 축제는 악양면 청년회의 주관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른바 토박이와 굴러온 돌의 싸움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이틀동안 하늘만 바라보며 감을 따고 고향땅을 떠나는 차량들에는 저마다 무거운 감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래서인지 차들은 빨리 가지 못하고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섬진강은 다시 도시를 향하는 고향 사람들을 말없이 보내주고 있었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하동군 악양면의 마을길. 집집마다 심겨진 대봉감과 단풍든 담쟁이로 둘러싸인 돌담길이 나무 대문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하동군 악양면의 마을길. 집집마다 심겨진 대봉감과 단풍든 담쟁이로 둘러싸인 돌담길이 나무 대문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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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표시제란?

프랑스 코냑, 샴페인이나 영국 스카치 위스키처럼 사람들은 그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다. 지역의 명칭과 일체가 된 브랜드 상품에 대해서는 유사상품의 브랜드 침해로부터 국·내외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를 세계무역기구(WTO)의 TRIPs협정은 "지리적 표시"라는 명칭으로 규정, 새로운 지적재산권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9년 농산물품질관리법 제정 후 도입됐으며, 농산물 또는 가공품이 특정지역의 지리적인 특성에 기인하는 경우 지명을 표시, 지역 명품으로 육성토록 돼있다.

등록기준의 요건은 해당 지역·특정 장소에 기원해야 하고(지리적 기원), 지리적 원산지에서 기인하는 특수한 품질·명성·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지리적인 특성), 해당 상품의 생산·가공·준비과정이 해당 지역(지역과의 연계성)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되면 시장 차별화를 통한 부가가치 향상 및 지역경제 발전과 품질향상이 기대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믿을 수 있는 상품 구입이 가능해진다.

전국에서 처음 지리적 표시로 등록된 보성 녹차의 혁신사례가 제1회 대한민국 지역혁신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태그:#대봉감축제, #악양대봉감,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 #섬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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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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