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있습니다.
 
영화 <애자> 포스터 영화 <애자> 포스터

▲ 영화 <애자> 포스터 영화 <애자> 포스터 ⓒ 시리우스 픽쳐스

#1. 애자 엄마, 영희씨 이야기
 
내 나이 올해 쉰 아홉. 가축병원장이다. 남편은 오래 전 세상을 떠났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혼자 키웠다.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은 없다. 다리가 좀 불편한 아들 앞가림하게 하느라 유학에, 사업 자금에, 정신 없이 쏟아 부었다. 서둘러 결혼도 시켰고, 이제야 한 시름 놓은 상태.
 
딸? 그래, 맞다. 그 딸년이 문제다. 어찌나 드센지 우리 둘은 만나면 싸움이다. 내 성격도 만만치 않지만, 딸 역시 더하면 더했지 그 누구의 손에도 들어오지 않는 아이다. 작가가 되겠다고 큰소리만 탕탕 치면서 취직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결혼 생각도 영 없는 것 같다. 딸 생각만 하면 부아가 난다. 하긴 어려서부터 성격도 별나고 하는 짓도 별난 아이이긴 했다.
 
솔직히 말하면 딸아이한테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이 있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 온 가족이 함께 타고 가던 승용차. 내가 운전을 했고, 옆 자리에는 남편이 앉아 있었다. 물론 뒷 좌석에는 두 남매가 나란히 앉았었고. 그 때도 별났던 딸아이가 운전 중인 내게 무언가를 거슬리게 해 거기에 신경쓰다가 그만 사고가 났다.
 
남편의 사망과 아들의 부상. 어린 딸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뭘 알고 그랬던 것도 아니지만 내 앞에 벌어진 일의 결과는 그랬다. 내 탓에 다친 아들한테 올인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영화 <애자>의 한 장면 엄마와 딸은 닮아서 화가 나는 걸까, 달라서 화가 나는 걸까...

▲ 영화 <애자>의 한 장면 엄마와 딸은 닮아서 화가 나는 걸까, 달라서 화가 나는 걸까... ⓒ 시리우스 픽쳐스

전후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딸은 오빠만 챙긴다며 항의하고 반발하고 대들고...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글 쓴답시고 제 맘대로 학교 빼먹고 그래서 내 손에 머리채도 수없이 잡혔다.
 
곰곰 생각해보면 성격으로는 나를 많이 닮긴 했다. 아들이 순한 편이라면 딸은 고집 세고 남한테 지는 법이 없다. 나 역시 가축병원 운영에 있어서나, 협회 일에 있어서나 다들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긴 하다. 그러니 우리 둘이 닮은 게 맞긴 맞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입씨름에 육탄전에, 단 한 번도 조용히 헤어지는 법이 없다.
 
그런데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이미 지니고 있던 병이 재발하고 말았다. 수술도 소용 없을 것 같고, 병 간호하는 딸의 고생을 보니 못할 짓 같다. 보호자 없이는 다니지 말라고 해 딸이랑 다녀보니 서로 너무 힘들다. 나 죽는 건 억울하지 않지만 딸 시집도 보내야 하고, 아직 못한 일들이 있다.
 
#2. 스물 아홉 애자 이야기
 
나도 못말리는 사람이지만 우리 엄마도 지독하다. 물론 혼자 몸으로 오빠와 나 기르느라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고집 세고 누구한테도 기 죽는 법 없다. 특히 나한테는 그럴 수 없는 강적이다. 그러니 서울에서 엄마 계시는 부산 집에만 가면 꼭 싸우고 돌아온다.
 
오빠한테만 아낌 없이 주는 엄마, 걸핏하면 내 머리채를 휘어잡는 엄마, 여고시절 날렸던 글 솜씨가 한 방 터져주기만 하면 내 꿈인 작가가 되는데...내 맘대로 되지 않는 현실. 거기다가 남자친구와도 그리 편편치만은 않다.
 
엄마랑은 그냥 이렇게 영원히 살겠지 뭐 달라질 게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엄마가 쓰러졌고, 병이 재발했단다. 당장의 간호는 어찌 어찌 꾸려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다.
 
수술하지 않겠다는 엄마를 조르고 설득하고 화내고 부탁해서 수술대 위에 눕히는 데는 성공. 그러나 결과는 아무 손도 쓸 수 없었다는 것. 이제 어떻게 하나...엄마한테 잘 해 볼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영화 <애자>의 한 장면 엄마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서로가 안다...

▲ 영화 <애자>의 한 장면 엄마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서로가 안다... ⓒ 시리우스 픽쳐스

  
#3. 나 좀 보내줘...
 
아무 가망이 없을 거라 생각한 엄마는 수술을 거부한다. 서로에게 할 짓이 못된다면서. 애자는 발발 동동 구른다. 엄마의 친구도 설득에 나선다. '꼭 그렇게 버티면서 자식 가슴에 못 박아야겠느냐'면서. 1년만이라도, 아니 단 한 달만이라도 엄마한테 잘 해볼 기회를 달라는 딸의 눈물에 엄마는 수술을 받기로 한다. 자식 속이라도 편하게 해주어야겠다는 마음이었을까.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어도 최선을 다한다는 이유로 수술을 권하고,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 몸은 형편없이 무너져 가고, 우리의 마지막이 늘상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의사표시가 분명한데도 말이다. "나를 보내줘!" "내는 이제 갈란다..."
 
이런 엄마를 이대로 가게 놔둘 수 없는 것은 효도일까, 생명 존중의 윤리일까,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는 자식들의 욕심일까, 아쉬움으로 인한 미련일까. 회복 가능성이 있을 경우라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그러나 통증을 줄이는 게 가장 급한 일이고, 이제는 병의 치료가 아닌 돌봄이 필요한데다가 당사자가 이미 그렇게 결심하고 요청한다면 주위에서도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엄마가 지레 목숨을 거두어 가버리겠다는 것도 아닌데, 딸은 끝내 엄마를 붙잡은 손을 놓지 못한다. 어느 자식이 가시는 부모님을 때가 됐으니 당연하다면서 쿨하게 보내드릴 수 있겠는가만은, 그래도 한 자락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딸이 온전히 함께 했다는 것. 그 시간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고 위로가 되는지. 미루다가, 망설이다가 그 시간마저 잡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애닳고 슬플까. 짧지만 함께 한 그 시간이 있어 딸은 엄마를 떠올리며 휘파람을 불며 웃음 짓고, 엄마 떠난 자리에 새롭게 태어난 조카를 기쁨으로 만날 수 있었으리라.
 
영화 <애자>의 한 장면 두 사람이 영원히 기억하게 될 밤...

▲ 영화 <애자>의 한 장면 두 사람이 영원히 기억하게 될 밤... ⓒ 시리우스 픽쳐스

덧붙이는 글 | 영화 <애자, 2009>(감독 정기훈 / 출연 최강희, 김영애, 배수빈, 최일화 등)

2009.11.01 21:43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영화 <애자, 2009>(감독 정기훈 / 출연 최강희, 김영애, 배수빈, 최일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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