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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퍼런스(Esperance)에서 서부 호주의 행정 중심지 퍼스(Perth)까지는 내륙으로 가는 것이 빠르다. 나는 지름길이 아닌 해안선을 따라 퍼스로 여행할 계획으로 다음 목적지를 호주의 남서쪽 끝에 있는 자그마한 도시 알바니(Albany)로 정했다. 인생은 목적을 향해 열심히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춤추듯이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는 어느 사색가의 말을 떠올리며 알바니(Albany)를 향해 운전한다.

 

에스퍼런스(Esperance)를 떠나 산길로 들어서니 수많은 나비가 날아다닌다. 속도를 줄여 운전하지만 수많은 나비가 차에 부딪혀 죽는다. 할 수 없이 많은 나비를 살생하며 운전을 한다.

 

호주 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많은 동물들이 죽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동물은 캥거루다. 더운 낮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으나 밤이나 특히 새벽에 많은 캥거루들이 자동차 소리에 도로로 뛰어나오면서 차들에 많이 치어 죽는다. 그러나 내가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죽인 것은 새가 아닌가 생각한다. 도로변 나무에 앉아 있다가 자동차 소리에 놀라 날아오르는 새들이 120킬로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차에 부딪히는 불상사가 생긴다. 

  

알바니 해안도 에스퍼런스 만큼이나 아름답다. 바다 색깔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해안가를 구경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가 호주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알바니를 꼽은 것이 생각난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알바니는 해안을 따라 돌아보는 관광지가 유명하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낸 기암들과 들꽃이다. 이름 모를 들꽃이 갖가지 자신만의 색을 자랑하며 들판을 덮고 있다. 파도에 깎여 있는 바위들 또한 이곳 아니면 흔히 보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해안에 인접한 산등성이를 걸으며 바라보는 주변의 섬들도 일품이다. 해안을 따라 돌다 보면 고래를 잡아 기름을 쓰던 포경선이 전시된 곳이 있는가 하면 2차 대전 당시 부상자를 위한 요양소도 있다. 

 

 

해안 코스를 따라 관광을 하다 보니 만난 사람들을 계속 만나게 된다. 그 중에 어린 초등학생이 'Korea'라는 문구가 크게 씌어있는 옷을 입고 있다. 반가워 어디서 그 셔츠를 구했냐고 물어보니 옆에 있던 아버지가 오래 전에 한국에 같다 오면서 사가지고 왔다고 한다. 서부 호주의 천연가스를 팔기 위한 협상 팀에 끼어 한국과 일본을 서부 호주 수상과 함께 다녀왔다고 하며 한국 자랑이 엄청나다. 외국 사람들이 남을 치켜 세워주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오후에 캐러밴에 도착해 텐트 옆 의자에 앉아 있는데 조금 떨어진 캐러밴에서 우리를 보고 손짓한다. 무슨 일인가 하여 가보니 커다란 킹피시(King Fish) 서너 마리가 있다. 오늘 배를 타고 나가 잡아왔는데 너무 많아 혼자 먹을 수 없으니 가지고 가란다. 우리 말고도 다른 이웃 사람들도 와서 가지고 간다. 우리 둘이 실컷 먹을 만큼의 생선을 가지고 와서 회를 안주로 와인을 마시며 저녁을 대신한다.

      

저녁에는 캐러밴과 이웃하고 있는 바닷가를 거닐며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이다. 많은 사람이 드넓은 백사장을 걷거나 뛰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바다에서 둥근달이 떠오르고 있다. 달이 태양처럼 붉다. 아! 달도 붉게 떠오르는구나.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는 말은 많이 들어 왔지만 붉은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다. 태양과 달리 붉은 달은 바라볼수록 정이 간다. 도시 속에서 찌들려 하늘을 잊고 살아온 나로서는 새로운 발견이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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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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