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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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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봤어요? 무엇이 들어 있나요? 주민등록증과 면허증, 그리고 카드가 있다구요? 현금은요? 현금이 없다면 당신은 신인류 디지털인간, 현금이 있다면 석기시대 이후 등장한 아날로그 인간. 구분법이 틀렸다고요? 틀리면 좀 어때요. 모두가 인간인 걸요.

자, 넘어 갑시다. 이 기사를 쓰게 된 동기는 시대를 논하자고 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갑에 현금이 없으신 분은 퇴장해 주시고 있으신 분은 돈을 꺼주세요. 오만원권, 만원권, 오천원권, 천원권 골고루 있는데 뭘 꺼내냐구요? 동전까지 준비하고 있다면 당신은 자상한 깍쟁이.

천원 권 지폐
▲ 지폐 천원 권 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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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지간에 등장하여 대한민국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신사임당님과 이율곡님은 잠시 들어가서 쉬시라 하세요. 참 배춧잎으로 한동안 성가를 날렸던 세종대왕님도 역시 아웃, 남는 게 뭐가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천원권이 남았지요. 전면에 그려진 퇴계선생을 잠시 면담하고 뒤집어 보세요. 뭐가 있나요? 동양화가 그려져 있다구요? 그 정도는 상근이도 알 걸요. 누가 그렸냐가 문제입니다.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입니다. 계상정거(溪上靜居)를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냇가에서 조용히 지낸다'는 뜻입니다. 뒤로는 정기가 꿈틀대는 도산(陶山)을 등지고 앞에는 낙천(洛川)이 흐르고 있습니다. 낙천은 낙동강의 상류를 일컫는 옛 말입니다.

계상정거도
▲ 겸재 계상정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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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대(天然臺)와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가 감싸고 있는 서당에 선비가 앉아 있습니다. 정(靜)이라는 한자에 딱 맞는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앞면에 그려진 퇴계 이황 선생입니다. 얼마나 멋진 그림입니까? 비록 국보급은 아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님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해주는 이 그림도 한때 위작 시비에 휘말린 일이 있었습니다. 위작이라고 주장하신 분은 '필획이 느리고 무기력하다, 사물 묘사가 어설프고 유기적이지 못하다. 표구 부분까지 그림을 그렸다. 실경 서취병과 그림 속 서취병의 형태가 다르다.' 그렇게 때문에 겸재의 그림이 아니고 가짜라는 것입니다.

계상정거도 확대모습. 선비가 앉아 있다.
▲ 정선 계상정거도 확대모습. 선비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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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처럼 화원출신이 아니고 사대부가 출신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림 그려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한량 생활과 공직생활 하면서 그림 그렸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그는 41세 늦깎이로 첫 관직에 출사할 때까지 전국을 유람하며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진경산수화'라는 독특한 화법으로 그렸습니다.

46세에 오늘날의 대구 부근 하양 현감과 58세에 청하(포항) 현감을 지내면서 영남 58곳의 명승고적을 그린 '교남명습첩'을 남겼고 70세에 양천현령으로 있으면서 임진강과 한강 명승지를 그린 '연강 임술첩을' 남겼습니다. 또한 그림을 그려달라는 지인들의 부탁에 적극 응하다 보니 거친 화법의 졸작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에도 '뭐 이런 그림이 있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그림이 있는데 '대가의 작품은 모두 명품이다'는 전제하에 접근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압구정. 간송미술관 소장. 아래 나오는 왜관수도원 소장본 압구정과 비교해보면 한사람이 그린 그림이라도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 겸재 압구정. 간송미술관 소장. 아래 나오는 왜관수도원 소장본 압구정과 비교해보면 한사람이 그린 그림이라도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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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는 순 한양토박이입니다. 겸재가 태어난 곳은 한양 북부 순화방 유란동입니다. 오늘날의 종로구 청운동 89번지 경복고등학교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겸재는 외조부 박자진의 영향을 받고 자랐으며 자연스럽게 스승 김창흡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김창흡은 김수항의 아들로서 병자호란 때 척화의 거두 청음 김상헌의 증손자입니다. 이로 미루어 겸재 정선은 광의의 장동 사단입니다. 이 무렵 활동했던 사람, 몽와 김창집,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흡, 노가재 김창업, 포음 김창즙, 택제 김창립은 문곡 김수항의 아들들로 시문서화로 일세를 풍미하던 서인의 맹장들입니다.

겸재는 당대 명문 광주 정씨로 5대조 정응규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지휘했던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였고 고조부 정연은 동지중추부사였지만 정선의 직계 집안은 점점 쇠락하여 겸재 집안만 한양에 남고 백부 정시설은 본향인 전라도 나주로, 중부 정시열은 태인으로 낙향했습니다. 겸재 본댁만 낙향하지 않은 이유는 겸재 외할아버지 박자진이 한양에서도 소문난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즉, 겸재 아버지가 처가살이했다는 얘기입니다.

박자진은 시정잡배처럼 부만 축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선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낙촌 박충원의 현손으로 사마시에 2등으로 급제했으나 출사하지 않은 고결한 선비였습니다. 또한 외조모 남양 홍씨는 퇴계 이황의 손자 이안도의 외손자인 홍유형의 둘째 따님입니다. 뿐만 아니라 증조모 풍천 임씨는 임정로의 셋째 따님으로 그 둘째 언니가 병조판서를 지낸 장만에게 출가하여 최명길의 장모가 되니 그는 병자호란 당시 최대의 국론분열의 중심 척화파와 주화파 모두 종횡으로 연결된 인물이었습니다. 장동은 안동김씨의 텃밭으로 우리나라 사대부들이 동인 서인으로 나뉘어 권력 쟁탈전을 벌인 이후, 항상 우위에 있던 권력의 산실입니다. 즉, 지배계급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겸재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14세 생일날. 아버지 정시익이 5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불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우암 송시열이 사사되고 김수항도 진도에서 사사되어 김수항의 아들들이 운영하는 학당이 폐쇄 되었습니다.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곳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외가에 묻혀 있던 그는 이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권대운, 민암, 목래선 등 남인의 공격으로 서인의 많은 선비들이 희생된 기사환국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장안사
▲ 겸재 장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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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가 화가로서 대성할 수 있는 계기는 금강산이었습니다. 고성군수 심정로의 초청을 받은 겸재는 암봉으로 이루어진 금강산을 그려내는데 알맞은 예각수직법 금강산준(金剛山皴)을 개발하고 겸재 특유의 겸재준(謙齋皴)을 창안하여 '풍악내산총람'을 완성하였습니다.

일만 이천 암봉을 서릿발처럼 날카롭게 꺾어내려 바위산을 표현하는 상악준(霜鍔皴)은 그만의 절필이었으며 요소요소에 사암을 배치하되 산세에 거스름이 없고 수맥을 해치지 않은 진경은 그만의 절제미였으며 삼 껍질을 늘어놓은 듯이 부드러우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피마준(披麻皴)은 그만의 천재성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제자 심사정의 당숙 심정로가 고성군수, 심정구가 통천군수로 있어 편안하게 금강산을 유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그림을 감상한 사대부들은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금강산을 가보지 않고도 앉은 자리에서 금강산을 보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카메라가 없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상상이 갑니다.

진경산수화로 대성한 겸재는 52세부터 84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인곡유거에서 만년을 보냈습니다. 인곡유거는 인왕곡유거의 준말로 오늘날 옥인동 20번지 일대이며 군인아파트 터 입니다. 여기에서 풍속화의 대가 관아제 조영석과 담을 맞대고 살며 교유했습니다. 관아제 역시 지촌 이희조의 문인으로 이들이 쌍벽을 이루며 진경문화운동을 일으키니 후세 사람들이 이를 백악사단(白岳詞壇)이라 일컬었습니다.

겸재 정선 테마전 포스터
▲ 겸재 겸재 정선 테마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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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서거 25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라는 겸재 테마전을 열고 있습니다. 9월 8일부터 11주간에 걸쳐 전시하고 있으니 11월  22일까지입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외에 간송미술관 소장품 '청풍계도'와 '금강내산총람도' 총 142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개인소장품 '비로봉도'가 최초 공개되고 있습니다.

압구정. 왜관수도원 소장
▲ 겸재 압구정. 왜관수도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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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독일신부 베버에 의해 독일에 건너가 성 오틸리엔수도원에 소장되어 있는 동안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을 흥분시켰던 '겸재정선화첩'이 2006년에 반환되어 왜관수도원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수도원의 협조로 공개되어 연구자와 일반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태그:#겸재,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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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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