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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꼭 '번쩍번쩍'해야만 하는 걸까. 사진은 SBS 주말드라마 <그대웃어요>의 한 장면.
 결혼식은 꼭 '번쩍번쩍'해야만 하는 걸까. 사진은 SBS 주말드라마 <그대웃어요>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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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식 사회를 본 적도 있고, 축의금을 받아본 적도 있다. 결혼식의 한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결혼하는 당사자에게 내 시간과 노력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일인지라 정말 기쁘고 즐거운 마음 가득이었다.

축의금을 받던 날. 난 늘 내보기만 했지 축의금을 받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함께 축의금을 받기로 한 남자후배는 해본 적이 있었지만 늦게 도착했고 난 30여 분 동안 축의금 받기, 식권 주기, 펜 챙기기, 봉투 챙기기 등등의 일을 혼자서 해야만 했다.

처음 해보는 축의금 받기, 근데 "돈이 안 맞네?"

처음해보는 일인지라 정신이 없긴 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잘 했고, 결혼식이 끝난 후 장부와 함께 현금을 잘 세어서 어머님께 드리고 개운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축의금을 받았던 후배가 옆자리에 앉더니 말했다.

"돈이 안 맞다네."
"어? 얼마나? 다 셌는데?"
"한 10만원 정도 돈이 남는다는데?"

잔칫날이고 다른 사람돈이라서 정신차리고 한다고 했는데 뭔가 실수를 했었던 모양이다. 신랑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돌아서는데 어머님이 계셨다. 이런…. 어머님은 돈이 맞지 않는다고 언짢아 하시며 날 탓하시는 게 아닌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일 해주고 안 좋은 소리나 듣고 이게 뭐야!' 하고. 난 그 때 몰랐었다. 축의금 장부가 '평생보관용'이라는 것을. 그게 얼마나 중요한 장부인지를.

주변 사람들의 결혼식을 몇 차례 더 본 후 나는 알게 되었다. 축의금 장부가 기록을 위한 장부가 아니라 판단을 위한 기준이 되는 지침서라는 것을. 청첩장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평생보관용" 축의금 장부를 꺼내 지침을 확인한다.

이 사람이 내 결혼식(또는 내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했었는지, 축의금은 얼마를 냈었는지. 만약 이름이 장부에 없다면 장부를 곱게 집어 넣고 청첩장은 머리에서 지우면 된다. 하지만 이름이 있다면 지침에 따라 그 사람이 냈던 금액 그대로 내야 한다. 그렇다. 난 정말 중요한, 지침이 되는 장부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결혼의 핵심은 축의금 '액수'

이제 인터넷쇼핑몰에서 축의금을 낼 수 있다.
 이제 인터넷쇼핑몰에서 축의금을 낼 수 있다.
ⓒ G마켓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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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터넷쇼핑몰에서도 축의금을 낼 수 있다. 심지어 쿠폰 할인을 받아서 좀 더 싸게 축의금을 낼 수도 있다. 축의금 내는 걸로 인터넷쇼핑몰 마일리지도 쌓을 수 있다. 받는 입장에서도 명부 작성을 따로 할 필요 없이 파일로 축의금 낸 사람들을 관리할 수 있다. 말그대로 실용적이고 간편하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참 건조하고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예전에 박경림이 방송에서 한, 결혼식 전날 동료 연예인에게 전화를 걸어 축의금 액수를 지정했다느니 축의금 1등은 350만 원짜리 냉장고였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에 대해 비난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유재석의 결혼식에서도 박명수가 축의금을 1천만 원이나 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인터넷이 뜨거워진 적도 있었다. 비단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5만원짜리 신권이 막 나왔을 때 축의금은 5만원 신권으로 내야한다는 정체모를 압박이 있기도 했다. 새로운 인생의 첫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에 대한 축하가 아니라 축의금이 '얼마'인지가 핵심인 것이다.

축하의 마음이 아니라 지출금액의 문제이니 본전 생각이 나는 건 당연하다. 쇼핑몰에서 할인도 받고 캐시백도 받는 것도 매력적이고, 내가 낸 돈만큼 뷔페도 괜찮아야 한다. 우리어머니가 결혼 생각없는 내가 남의 결혼식에 다니며 '회수 가능성'이 없는 축의금을 뿌려대는 것을 아까워하시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몹시 씁쓸하고 탐탁찮지만.

'적자' 걱정없는 결혼을 하자

옛날처럼 오신 손님들에게 국수 한 그릇 말아 대접하는 결혼식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처럼 식권 한 장에 까칠한 눈빛을 마주쳐야 하는 건, 내가 돈을 너무 적게 내서 이 밥을 먹는 게 도둑질하는 느낌이 드는 건, 그 밥이 너무 비싸서 그런 건 아닐까?

결혼식을 찾는 사람들도 결혼하는 사람들이 잘 살 건지 못 살 건지에 관심이 없고 결혼하는 사람들도 그들이 진심으로 축하하는지에 상관하지 않는, 그저 번쩍번쩍한 이벤트를 적자없이 치러내야 하는 것만이 문제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한 번은 결혼식에 직접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 축의금만 보냈는데, 나중에 신랑신부가 장부에 적힌 내 이름을 보고 "왔는지 몰랐다. 인사도 못해서 미안하다. 잘 살겠다"고 인사를 하더라.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한편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왠지 '축하'보다는 '돈'을 더 중시하는 요즘 결혼 행태를 목도하는 것 같아서.

그런 까닭에 나는 지인 결혼식에 축의금 대신 몇 가지 종류의 피임기구들을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한 적 있다. 또 빈 봉투에 이름만 적어서 내도 와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신랑신부를 본 적도 있다. 돈 액수가 아니라,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하받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태그:#축의금,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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