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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도 때로 노란색 물이 들때가 있다.
▲ 단풍 단풍나무도 때로 노란색 물이 들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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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단풍은 '안토시아닌'이라는 물질 때문이고, 노란색 단풍은 '카로틴','크산토필'이라는 물질에 의한 나뭇잎의 변색이다.'

이런  단풍의 정의는 얼마나 단조로운가. 빨간 단풍, 노란 단풍 이라는 우리말로 불러야 비로소 가을 단풍이 마음으로 들어오는 걸 보면 음식뿐 만 아니라 말 역시도 '신토불이'가 있는 모양이다.

가을 산이 말 그대로 萬山에 紅葉이다. 그런데 이건 또 얼마나 단풍에 대한 모독인가. 단풍에 대한 오해가 커도 너무 크다. 단풍이란 '기후가 변함에 따라 잎 색깔이 초록색에서 붉은색·갈색 또는 노란색으로 바뀌는 현상'(백과사전)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저 '붉은 단풍'만이 단풍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흔히 단풍하면 붉은 색을 떠올리는 건 아마도 '단풍'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단풍이라는 현상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단풍나무'를 연상시키는 까닭일 것이다. 물론 紅葉이 모든 가을 빛을 통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모를리 없지만, '붉은색'일색인 가을 풍경 속에 노란 단풍도 이야기도 끼워주자. 갈색 단풍이야기는 또 어떤가.

숲이 노란 화환을 둘렀다
▲ 단풍3 숲이 노란 화환을 둘렀다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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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가을 단풍을 검색해 보니 빨간 단풍나무 사진이 압도적이다. 만산홍엽이 말 그대로 '홍엽'에만 쏠린 느낌 없잖아 있다. 붉은색 단풍나무가 압도적인 것은 우선 눈에 띄는 색깔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노란색 보다는 빨간색이 순간적 시선집중에 아무래도 유리할 것이다. 강렬한 붉은 색에 시선을 빼앗겼으니 노란단풍과 갈색단풍은 상대적으로 그리 유혹적이지 못했으리. 

그러나 깊어가는 가을 산 어느 한 자락을 물들이고 있는 생강나무 숲에 들어서 보면 알 것이다. 노란색 단풍의 요염한 색감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노란단풍의 으뜸은 생강나무다.  '크산토필'이니 '카로틴'이니 하는  색소를 나타내는 전문용어를 차지하고도 샛노랗게 숲 한 켠을 물들이는 생강나무 노란단풍 앞에 서면 그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냥 노란색이 아니다. 샛노랗다. 노란색이 흐드러지게 보이는 건 생강나무 나뭇잎이 넓은 까닭도 있겠다.

생강나무 단풍은 그저 노란게 아니다, 샛노랗다.
▲ 생강나무 숲 생강나무 단풍은 그저 노란게 아니다, 샛노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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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봄이 시작될 무렵 가장 먼저 숲에 생기를 부여하며 노랗게 피어나는 생강나무의 앙증맞은 꽃을 상상하면 저 크고도 노란잎은 놀라울 정도다. 늦가을의 어느 오후, 천마산(경기도 남양주시) 을 오르다 생강나무숲을 만났다.

그것은 계단으로 이어진 등산로 초입을 지나, 줄곧 만만치 않은 경사도를 보이는 산길을 휘여휘여 올라 감로수가 철철 흐르는 약수터를 지나서였다. 오르막을 올라 이제 목이 마르다 싶은 그 지점에 약수터가 있다. 사철 시원한 물줄기가 끊이지 않고 품어져 나오는 약수터 뒤쪽이 오후의 가을볕을 받아 노란 후광을 발하고 있었다.

생강나무 숲을 지나면 알싸한 생강맛이 느껴지는 듯
▲ 생강나무 2 생강나무 숲을 지나면 알싸한 생강맛이 느껴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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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온통 생강나무 군락이었다. 생강나무를 따라 왼편으로 나 있는 깔딱고개 가는 방향을 버리고 오른쪽 생강나무가 군락을 이룬 노란단풍 숲으로 들어선다. 생강나무 외에도 노랗게 단풍이 드는 나무가 많다. 거제수나무, 자작나무, 호두나무, 가래나무, 아까시나무 아, 그리고 초여름의 숲을 하얗게 밝히던 함박꽃나무까지... 노랗게 물드는 나무가 생각보다 참 많다.

그런데 우리는 단풍하면 빨간 '당단풍나무'만 떠올렸단 말인지 새삼 제대도 눈길을 주지 못했던 노란 단풍나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올라가는 산길 주변이 온통 노랗다.  그 길을 걷는 나도 노란색으로 물들어 버릴 것만 같은 노랑 세상이다.

나무에 달려 한창 절정을 향해가는 나뭇잎이 하늘이 노랗고 떨어진 나뭇잎으로 바닥 또한 노랗다.  그 생강나무숲에 오후의 늦은 햇살이 비켜드니 세상은 숫제 황금빛으로 바뀐다. 황홀하다. 붉은 단풍나무숲이 주는 감동과는 또 다른 감동이 몰려온다.

이건 뭐랄까, 노란물감을 숫제 숲에 들이 부었는데 그건 수채화물감이 아니고 진득한 포스터 물감이다. 생강나무 군락 속에 키 작은 아까시나무도 노랗게 단풍들었다. 생강나무의 넓은 잎에 비해 아까시나무의 작은 잎은 앙증맞기 짝이 없지만 그 또한 이 숲을 노랗게 물들이는 멋진 가을 단풍이다.

고갯마루에 이르러 숲은 갈빛을 띠어간다
▲ 깔딱고개 고갯마루에 이르러 숲은 갈빛을 띠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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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걸었을까, 노란단풍의 행렬은 줄곧 이어져 깔딱고개에 와서 참나무와 바톤터치를 한다. 약수터와 고개 아랫쪽에 그렇게나 많은 생강나무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와 안다. 넓게 퍼진 오리발자국(?) 같은 생강나무 잎새가 기어이 노랗게 물들어 이 숲을 밝히지 않았다면 나는 오래도록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오른편으로 돌아서 왔지만 깔딱고개를 만나는 지점은 한곳이다. 이곳에 이르는 동안 노란 단풍으로 내 눈은 실컷 호사를 누렸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갑자기 풍경이 바뀌고 주위는 일순 잔잔해 진다.

이제부터 '타닌'이라는 색소를 만나는 지점이다.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하게 하는 색소가 타닌이란다. 타닌 하면 떨떠름함이 먼저 떠오르는가, 맞다, 바로 도토리의 떨떠름한 맛이 타닌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여기는 도토리를 생산하는 참나무 숲인 것이다.

붉은 단풍과 노란 단풍이 우리의 눈을 현혹했다면 이제 좀 차분해질 것을 주문하는 듯한 단풍이 바로 참나무 갈색단풍이다. 어쩐지 늦가을의 정서가 깊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길을 걷는 동안은 사색에 빠질 일인 듯도 싶고.

갈빛으로 잔잔한 참나무 숲을 따라간다
▲ 참나무숲 갈빛으로 잔잔한 참나무 숲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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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가는 능선길인 이곳에 이르러 햇살은 한결 수굿해져 있다. 간간히 가을 억새가 하얗게 피어 손을 흔들어 댄다. 가을과 작별을 고하는 듯. 억새의 하얀 손짓에 문득 쓸쓸함이 느껴진다. 붉고 노란 단풍에 환호했던 가을의 절정은 이제 갔다고 차분히 내면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내게 넌즈시 묻는 듯하다.

참나무 단풍숲으로 이어진 산꼭대기를 걷는다. 붉은단풍이나 노란단풍에서 결코 느낄 수 없었던 평안함이 갈색단풍숲에 있다.  햇살이 비켜 들어와 가끔씩 황금빛으로 일렁이기도 하지만 그건 노란단풍에 햇살이 들 때와 다른 소박함이 느껴진다.

단풍 든 가을 숲을 걸으며 삶에 대해 진지해 졌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참나무 단풍 숲 때문이다. 산 정상에 이르는 동안 줄곧 참나무 숲이 이어진다.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 자락에 갈색 융단이 펼쳐졌다.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진 거대한 갈빛 물결!

가을 숲은 저 참나무 갈빛 단풍에 와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리. 갈빛이란, '가을빛'의 줄임말이 아니던가. 바야흐로 가을의 절정이다. 단풍보러 산을 찾아가는 우리는 부디 붉은색 단풍에만 눈길을 줄 것이 아니다. 노란단풍, 갈색단풍이 함께 어울린 가을 숲이 이룬 조화를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10월 마지막주 일요일의 단풍 숲, 이제 가을이 절정이다.



태그:#노란단풍, , #생강나무 숲, #참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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