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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곳이 있다네.

사람들은 그 곳을 찾아가려 하네.

그 곳은 사계절 항상 푸르고

새들 지저귀고 꽃들 향기로운 곳이라네.

그 곳은 고통, 근심, 걱정이 없는 곳이라네.

그 곳의 이름은 샴발라,

신선들의 낙원이라네.

아, 샴발라는 그리 멀지 않다네.

그 곳은 바로 우리들의 고향이라네.

- 티베트의 한 유행가 중에서

 

티베트인에게 샹그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꿈에 그려오던 이상향이었다. 샹그릴라는 티베트어 '샴발라'(Shambala)에서 유래됐다. 샴발라는 시간이 정지된 지상낙원으로, 생로병사의 고통 없이 살 수 있는 티베트인의 염원이 담긴 극락정토다.

 

샴발라는 단순한 전설로 그치지 않았다. 많은 티베트인은 샴발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대상지는 여러 곳이 있는데, 대표적인 장소는 세계의 중심축으로 여겨지는 성산 카일라스 부근의 다와쫑이었다. 다와쫑은 달빛이 비치는 밤이면 셀 수 없는 바위들이 모두 부처님 형상이 되어버린다는 신비의 계곡이다.

 

샴발라에 걸맞은 대상지는 티베트 본토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도, 네팔, 부탄, 중국 쓰촨(四川)성 등 히말라야산맥의 여러 마을도 유력한 후보지였다. 그 마을들에는 이상향의 설화를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자연조건을 갖추었다.

 

윈난(雲南)성 중뎬(中甸)이 샹그릴라의 신화를 가로챌 수 있었던 것은 저돌적인 '샹글리라 만들기 공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뎬은 무엇보다 자연환경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묘사된 것과 비슷했다.

 

 

 

중뎬은 지역 전체가 자연생태공원과도 같다. 멀리 보이는 그림과 같은 설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초원, 울창한 산림, 푸른 호수, 다채로운 동식물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심에서 동쪽으로 22㎞ 떨어진 푸다쵸(普達措)국립공원은 중뎬 자연생태계의 정수다. 푸다쵸에는 두 개의 큰 호수가 있다. 수두후(屬都湖)와 비타하이(碧塔海)로 불리는 호수로, 물빛은 옥처럼 파랗고 물결은 잔잔하다.

 

수두후는 전체 면적은 15㎢, 수심은 5m에 달한다. 비타하이는 동서로 3㎞, 남북으로 1㎞나 된다. 두 호수는 각각 해발 3705m, 3539m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주변에는 호수보다 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들판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고 키가 나무가 크지 않은 나무도 많다. 야크(牦牛), 말, 돼지 등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3500m 이상 고산에 어떻게 이런 예쁜 호수와 벌판이 생길 수 있는지 신기로울 정도다.

 

수두후는 티베트어로 '치즈가 돌 같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 설화와 관련이 있다. 먼 옛날 한 라마승이 수두후를 지나다가 한 유목민이 전해준 쑤요차(酥油茶)와 치즈를 먹게 됐다.

 

라마승이 보니 치즈 맛이 일품이었다. 이에 치즈 맛이 돌처럼 영원히 변하지 말라고 해서 지금과 같은 호수 이름을 남겼다. 비타하이는 본래 티베트어인 '비타데쵸'에서 비롯됐다. '야크 털로 짠 모포 같이 부드러운 호수'라는 뜻이다.

 

호수 이름에 바다 해(海)를 쓰게 된 것은 한족이 아닌 몽골인의 영향 때문이다. 몽골은 건조한 내륙 초원의 유목민이다. 이들에게 물은 생명처럼 소중하다. 황량한 초원에 작은 호수만 보던 몽골인에게 티베트의 고원 호수는 바다처럼 크고 아름다웠다. 이 때문에 몽골인은 정원처럼 아름답고 큰 호수에 '해' 자를 붙이기 시작했다.

 

두 호수 주변에는 두견화가 많다. 꽃잎이 떨어지면 물고기가 술에 취한 듯 정신을 잃어 수면에 떠오른다고 한다. 이를 현지인들은 '두견취어'(杜鵑醉漁)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호수에 취하다 샹그릴라로 돌아오면, 정겨운 사람과 고풍스런 마을이 여행객을 맞는다.

 

샹그릴라 티베트인은 좀 특별나다. 동부 티베트 캄(Kham)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성격이 거칠고 억세다. 동족인 라싸(拉薩) 사람들에게 업신당하고 이민족인 한족에게 수없이 침탈당해 이방인에게 적대적이다. 이에 반해 샹그릴라인들은 유순하고 외지인에게 친절하다. 멀리서 온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전통도 지녔다.

 

이런 넉넉함은 샹그릴라의 자연조건에서 비롯됐다. 샹그릴라는 티베트인의 주식인 칭커(靑棵)를 경작할 땅이 넉넉하고 토질도 수준급이다. 목초지는 넓고 다양해 야크, 말, 양, 돼지 등 동물을 기르는 데 문제 없다. 하천과 호수가 많아 물도 풍부하다.

 

이 때문에 샹그릴라 티베트인은 전형적인 유목민이라기보다 반농반목의 농사꾼이라 할 수 있다. 토양 좋은 자연환경과 풍족한 물자는 샹그릴라 사람들에게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올드 타운인 고성(古城)에는 티베트인의 넉넉함이 배여 있다. 고성에는 높지 않은 언덕 위에 있는 라마사원을 중심으로 고풍스런 전통 민가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모든 가옥은 티베트식 전통양식으로 때깔 좋게 꾸며졌다. 집 내부도 현대 문명의 모든 이기로 꽉 채워졌다.

 

오늘날 샹그릴라 고성도 리장(麗江)처럼 극심한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다. 대부분 민가는 식당, 상점, 카페, 술집, 여관 등 관광업소로 바뀌었다. 사는 주민도 절반은 한족, 남은 절반만 티베트인이다. 몇몇 술집은 밤늦도록 질펀한 술판으로 샹그릴라의 고요함을 깨운다.

 

밀려든 물질문명은 티베트인에게 돈의 축복을 선사했다. 고성 내 주민들은 세 집 건너 한 집씩 자동차가 있다. 밀려드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장사와 가옥, 차량 렌틀로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샹그릴라와 리장은 중국 내에서 자동차 보급률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다.

 

 

경제적 풍요 때문인지 샹그릴라 티베트인은 중국의 지배를 숙명처럼 여기고 있다.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관광개발에 대한 호응도가 다른 티베트인 거주지보다 훨씬 높다. 정부 시책도 잘 따르고 지역 치안도 안정되어 있다.

 

2008년 3월 14일 라싸에서 유혈시위가 일어났을 때 샹그릴라는 아주 조용했다. 칭하이(靑海), 간쑤(甘肅), 쓰촨의 티베트인들이 라싸에 호응하여 독립시위를 벌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다른 캄 지역은 외국인 출입금지 조처가 내렸지만, 샹그릴라는 오히려 그 기회를 노려 관광객 유치에 힘을 기울였다.

 

샹그릴라의 미묘한 반응은 티베트 망명정부가 중국정부와 벌이는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는 독립을 포기하는 대신 '대(大) 티베트 자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 티베트(Greater Tibet) 자치'는 티베트 본토인 시짱(西藏) 뿐만 아니라 티베트인 거주지 모두를 하나로 묶으려는 의도다.

 

'대 티베트'는 지역적으로 보면 시짱과 칭하이성 전체, 간쑤성의 1/3, 쓰촨성의 1/3, 윈난성의 1/5에 달한다. 20세기 초까지 달라이 라마가 실제로 통치하던 지역으로, 총 면적은 240만㎢에 달한다. 중국 전체 면적으로 4분의 1에 해당하는 광대한 영토인 셈이다.

 

본래 티베트는 인구 600만 명이 훨씬 넘는 대국이었다. 수많은 티베트인은 현재 티베트 본토뿐만 아니라 중국 5개 성 및 자치구, 인도, 네팔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온전한 티베트인 독립국으로 남은 나라는 부탄이 유일하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요구에 대해 중국정부는 들은 척도 안 한다. 게다가 지역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티베트인 거주지에 대한 중국화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식 물질문명을 퍼뜨리고 한족을 이주시켜 내지(內地)화 하고 있다. 샹그릴라만 하더라도 전체 인구에서 한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25%를 넘어섰다.

 

 

 

'대 티베트'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 아무리 자치라 하더라도 중국이 지방정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칭하이, 간쑤, 쓰촨, 윈난 내 티베트인 거주지를 찢어줄 리 없다.

 

달라이 라마도 이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대 티베트 자치'를 요구하는 것은 전체 티베트인의 단결을 도모하고 라마불교 문화권 아래 두기 위해서다. 즉, 티베트를 하나로 묶는 상징적인 수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이런 바람은 캄, 암도 등 티베트인 거주지에서의 중국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샹그릴라에서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티베트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중장년층도 간단한 중국어는 할 줄 안다.

 

최근 샹그릴라 티베트인 사이에는 집안 장식을 한족식으로 꾸미고 중국음식을 맛보는 것이 유행이다. 티베트인이 직접 나서 쓰촨요리 식당을 운영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일부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티베트 주식인 참파를 먹기 싫어하기까지 한다. 참파는 칭커를 볶아 가루로 만든 뒤 야크 젖에 손으로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우리의 미숫가루처럼 고소하지만, 중국음식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맛은 없다.

 

늘어나는 한족과의 통혼(通婚)도 문젯거리다. 10여년 전만 해도 샹그릴라에서 티베트인이 한족과 결혼하는 광경은 보기 어려웠다. 지금은 나이든 노인들도 양 민족 간의 통혼을 반대하지 않는다. 아예 이름 자체를 한족식으로 개명하는 젊은이조차 생겨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10년 후 샹그릴라는 '샴발라'의 전설을 빌린 티베트 민속촌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인들은 다른 캄 지역에 비해 교통이 편리하고 우호적인 샹그릴라에 와서 티베트의 향취를 맛보고 즐길 것이다.

 

고성은 잘 갖추어진 생활 테마파크로, 숨첼링 사원(松贊林寺)은 라마불교 체험장으로, 푸다쵸는 자연 생태공원으로써 각각 민속촌의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방문할 때마다 변화하는 샹그릴라의 모습에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이런 암울한 미래상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 여행Tip 1

 

푸다쵸국립공원의 개방시간은 8:00~17:00로, 입장료는 190위안(한화 약 3만2300원)이다. 여기에는 티베트문화생태촌의 입장료와 공원 내를 오가는 셔틀버스비가 포함되어 있다. 푸다쵸는 상당히 크기 때문에 공원 내는 걸어 다니기 힘들다. 경내를 수시로 오가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효율적으로 다닐 수 있다.

 

샹그릴라 도심에서 푸다쵸를 오가는 대중교통은 따로 없다. 다만, 고성 입구에 위치한 여러 여행사에서 푸다쵸 입장료와 차편을 한데 묶어 하루나 반나절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이 상품을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에 푸다쵸를 다녀올 수 있다. 차량을 렌틀할 경우 하루 기준으로 180~200위안이 소요된다.

 

# 여행Tip 2

 

매일 밤 고성 광장인 쓰팡제(四方街)에서는 한바탕 거대한 춤판이 벌어진다. 샹그릴라에 사는 티베트인들이 와서 둥근 원을 그리며 전통춤을 추는 한마당이다. 춤판은 사시사철 비나 눈이 오고 날을 제외하면 언제나 열린다. 이 춤판은 샹그릴라 티베트인이 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다지는 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샹그릴라는 숙박시설이 다양하고 저렴하다. 고성 내에는 싸고 깨끗한 게스트 하우스가 많다. 숙박비는 한 방당 60~80위안(약 1만200원~1만3600원)으로 저렴하다. 샹그릴라는 고산도시라 추운데, 침대에 전기장판이 깔려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국, #윈난, #샹그릴라, #티베트, #라마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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